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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토크

7월호

국악을 무기로 ‘지금의 음악’ 하는 사람들
새로운 국악을 이끈 주역들

신대륙을 찾아 떠난 사람들이 있다. 국악을 주종목으로 활동하던 음악인들이 두려움 없이 ‘새로운 땅’을 밟고 있다. 무가巫歌(무속인이 굿을 하며 구연하는 사설과 노래)는 밴드(추다혜차지스)와 결합했고, 판소리는 팝(이날치)과 만났다.
활로 켜는 거문고는 EDM(무토MUTO)과 어우러졌다. 고된 항해 중에 발견하는 신대륙엔 장르의 구분도, 음악의 정의도 없었다. 규칙은 사라지고, 문법은 깨졌으며, ‘발칙함’이 남았다.

새로운 땅을 밟은 음악인

2017년 미국 공영 라디오 NPR <Tiny Desk>에 한국 뮤지션 최초로 출연해 주목받은 민요 록밴드 씽씽은 대중에게 ‘조선팝’ ‘조선의 이단아’로 불린 첫 사례로 꼽을 만하다. 이후 전통을 재해석해 자신들의 이정표를 세우는 무토·악단광칠·이날치·추다혜차지스를 비롯한 여러 팀도 이름을 알렸다.
전통의 경계를 넘나든 시도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았다. 이미 1980년대부터 국악과 대중음악의 긴밀한 만남이 이어졌다. 1990년대 어어부프로젝트·황신혜밴드 등 국악의 정서를 받아들인 홍대 인디 신을 중심으로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2010년대에 들어서자, 국악의 지평을 넓힌 팀이 한꺼번에 등장한다. 잠비나이·고래야가 대표적이다. 2009년 결성해 2010년 첫음반을 낸 잠비나이는 피리·거문고·해금 등의 국악기와 드럼·베이스·기타 등의 양악기를 혼용한다. 2010년 데뷔한 고래야도 국악에 대중음악을 접목한 밴드로 주목받았다. 국악기인 대금·거문고와 함께 기타를 사용하고 보컬을 입혔다. 2020년 씽씽에 이어 <Tiny Desk>에 출연했다.
이 무렵 국악의 변주가 주목받아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잠비나이 멤버 김보미(해금)는 “이전에도 다른 장르와의 협업은 지속적으로 시도됐다. 다만 그 방식이나 장르적 한계가 명확했다. 우리는 우리 세대의 방식으로 음악을 해석하고 취향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경계를 지우는 시도로 이들은 종종 ‘선구자’로 불리기도 한다. 경계를 밟든, 경계를 넘어서든 국악의 테두리 안에서 자생한 음악인에게 장르의 조화는 의도가 아닌 시도에 가까웠다.
국악을 전공했지만, 대중음악을 들으며 자란 경험은 새로운 음악을 시도하는 자양분이 됐다. 잠비나이의 이일우(피리·기타)는 중학교 때부터 국악을 전공하고, 대학에선 록밴드를 하며 국악과 밴드음악을 겸한 경험이 자연스럽게 몸에 녹아 경계를 넘나들 수 있었다. 씽씽의 여성 보컬로 활동한 이후 추다혜차지스를 결성한 추다혜는 다양한 활동과 시도를 통해 지금의 길을 찾은 사례다. 그는 씽씽 활동을 통해 자신의 에너지가 양악기와 어울림을 알게 됐다. “내가 가진 민요에 대한 애정과 정서가 밴드와 접목될 때 새로움을 발견하고 가사가 가진 진정성도 잘 풀어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전통의 ‘대중화’ ’재해석‘을 기치로 내걸고 뛰어든 팀도 있다. 국악단체 정가악회의 기획 그룹으로 결성된 악단광칠이다. 악단광칠은 다른 그룹과 달리 오직 국악기와 우리 소리만으로 국악의 한계를 넘어 지금의 음악을 만든다. 이들은 국악계에서도 낯설고 생소한 두 장르, 황해도굿과 서도민요를 결합했다. 보컬 홍옥은 “낯선 두 장르의 결합은 문학적·음악적으로 가치가 있는 만큼 여기에 강렬한 사운드를 더해 대중음악적으로 풀어낸다면 새로운 가능성과 경쟁력을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잠비나이

국악기로 현재의 음악을 하는 사람들

새로운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국악은 이들에게 하나의 도구이기도 하고, 주체이기도 했다. 악단광칠은 황해도굿과 서도민요를 혼합해 대중음악을 지향하면서도 두 가지 원칙은 고수했다. 전통의 형식을 갖출 것, 국악기를 버리지 않을 것. 대중적 사운드를 만드는 것과 대중이 대중음악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하며 그 접점을 찾으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국악기·미디어아트를 결합한 무토는 음악과 시각예술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공연예술을 선보인다. 무토의 박우재(거문고)는 전통은 소재라고 생각한다. 장르의 소재를 잘 다루는 기술자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하면서도 예술 작품의 차별성을 추구한다. 그는 “장르의 균형을 맞추는 고민을 하며 음악적 실험을 하”고 있다. 고래야의 경이(퍼커션)의 시작은 거창하지 않다. 국악을 기반으로 그와 함께 무언가를 결합하자는 생각으로 밴드를 시작하지는 않았다. 그는 음악을 만들 때 이것이 국악인지 아닌지 고민하면서 만들지 않는다. 다양한 장르와 음악적 표현을 하는 데 전통악기가 잘하는 장단을 사용할 뿐이다. 국악과 대중음악의 만남을 시도하는 밴드의 음악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본질’과 ‘원형’을 지킨다는 점이다. 고래야의 멤버 김초롱(퍼커션)은 “음악을 만들 때 중심은 한국의 전통 장단을 변형하지 않는 것”이라 했고, 이날치 멤버 이철희(드럼)도 “판소리를 해치지 않으면서 음악이 잘 어우러지도록 작업한”다. 악단광칠 김약대 단장(대금)은 “국악을 기반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선 누구보다 국악을 잘하면 된다. 이를 바탕으로 여러 시도를 하고, 경계를 넘어 음악에 차용하면 그것 나름의 차별성을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10여 년간 새로운 시도를 이어온 잠비나이도 마찬가지다. 음악에 사용되는 전통의 재료가 근거 없이 사용되지 않도록 의미를 찾고 주의를 기울이며, 국악기와 국악을 현재와 어색하지 않게 녹이며 음악을 만들고 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변화를 시도한 이들의 음악은 각기 다른 길을 제시한다. 무토 박우재는 오롯이 새로움을 추구하기 위해 규칙 없이 ‘기존’을 따르지 않는다. 그가 음악적으로 실험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차별성이다. “같은 이야기를 다른 관점으로 생각하고 바라보면서 다양한 시각이 있음을 염두에 둔”다. 추다혜는 “내가 하고 있는 민요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전통음악으로 분류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 각자가 내는 고유의 소리가 있고, 만드는 음악이 있는데 틀에 가두기를 바라는 시선이 있다. 무가를 기본으로 두되 틀에 맞추기보다 새로운 틀을 만드는 일을 추구한”다. 잠비나이의 이일우는 실험이나 새로움을 추구하는 방식에서 머물지 않고 대중에게 설득력을 갖는 결과물을 만드는 방향을 바라본다. “실험적이고 독특하지만 어렵지 않은 음악, 실험에서 끝나지 않고 설득력을 갖는 음악이 잠비나이가 추구하는 음악이다”라고 말했다. 요즘 국악판에서는 이미 장르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무가를 요소로 둔 추다혜차지스는 지난해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알앤비 & 소울’ 부문 상을 수상했다. 음악인 스스로도 자신의 음악을 전통음악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국악을 ‘무기’로 ‘지금의 음악’을 하는, 조금은 새롭고 독특하고 특별한 길을 가는 사람들의 작품일 뿐이다. “전통적 악기와 소재로 현재의 음악을 한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악단광칠의 그레이스박(아쟁)은 “악단광칠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각자의 악기와 목소리로 퓨전도 무엇도 아닌 우리가 할 수 있는 현재의 음악, 지금의 정신을 꺼내고 있는 것”이라며 “전통적 악기와 소재를 가지고 현대인들이 살아가면서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1 추다혜차지스
2 악단광칠

다양성을 받아들일 준비된 대중

오랜 시간 이어온 다양한 시도는 많은 사람을 변화의 길로 이끌었다. 잠비나이를 비롯해 지금의 이날치·추다혜차지스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성장과 성취는 ‘대중의 변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문가들은 “이전과 달리 현재의 음악 신은 굉장히 다양하고, 관객의 다양성이 성장한 시대”이자 “세상에 없는 새로운 음악을 찾는 다양한 취향을 가진 마니아가 두각을 나타내는 때”라고 본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이들의 음악을 ‘조선팝’이라고 하거나, 악단광칠을 ‘접신록’ ‘작두록’으로 부르는 것 역시 대중의 선택이었다. ‘특정 가수나 장르’로만 편향된 것이 아니라 어떤 새로운 음악에도 귀를 여는 ‘준비된 대중’은 대중음악계에 다양성을 부여하는 밑거름이 됐다. 불씨가 타오를 새로운 음악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업계에선 국악과 대중음악의 만남은 더 늘어나고, 국악을 중심으로 한 여러 장르가 끊임없이 파생되리라 본다. 악단광칠의 김약대는 “국악의 형식이나 문법이 아니라도 국악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 많다. 국악의 특성을 표현하고 드러내면 장르에 묶이지 않는 다양한 음악이 나올 것”이라고 봤다. ‘한때의 흐름’으로 그치지 않도록 더 많은 시도가 이어져야 한다. 몇몇 팀의 등장으로는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김보미는 “더욱 많은 팀이 나와야 하고 다양한 음악을 표현해야 국악계도 성장하고 발전한다”라고 강조한다. 이들 역시 지금의 행보를 이어갈 생각이다. 새로움을 추구하고, ‘현재’의 음악을 들려줄 계획이다. 그 과정에서 예전의 기준으로 규정된 장르를 넘어 오로지 음악으로서 공감과 위로를 주고, 누군가에게 특별한 순간을 선사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통해 그려낼 미래는 지금의 또 다른 모습이다. 무토의 박우재는 “지금의 이 들끓는 실험 열기는 결국 미래의 전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3 이날치
4 고래야

고승희 《헤럴드경제》기자 | 사진 제공 더 텔 테일 하트, BELLA UNION, 추다혜, 플랑크톤 뮤직, 국립극장, 하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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