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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호

국악, ‘오늘’을 먹고 진화한 오래된 음악
자유를 품은 현대의 국악

국악이 우리에게 한발 다가올 때는 관상용 음악이 아니라 체감형 음악으로 단단히 무장할 때다. 사물놀이가 대표적 예다. 많은 이는 조선에도 사물놀이가 있던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 음악은 1978년에 김덕수를 비롯해 남사당패의 후예들이 현대식으로 만든 ‘창작 국악’이다. 농촌사회에서 연주하던 농악이 전신이다. 이후 사물놀이는 국악을 대표하는 음악이 됐고, 지금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우리 곁에 있던, 이제야 들리는 소리

이렇듯 시대마다 튀어나오는 국악이 있다. “국악은 지루하다” “국악은 재미없다”라는 대중의 고정관념을 뚫고 나온다. 오늘날 많은 이가 좋아하는 소리꾼 이희문이나 그룹 이날치·추다혜차지스·악단광칠·고래야 등이 그러하다. 관객은 지켜만 보며 ‘관상’하던 국악이 아니라, 그동안 몰랐던 국악의 재미를 ‘체감’ 중이다. 이들은 우리가 잘 모르던 국악판을 띄우는 부력浮力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사실 국악만큼 대중에게 지독한 고정관념과 시선을 받는 음악도 없다. 장르 불문하고 음악을 애호하는 소설가 장정일도 저서 《악서총람》에서 “국악은 한국인의 음악이지만, 한국인과 가장 거리가 먼 음악이다”라고 했다. 이러한 고정관념이 국악의 발목을 잡는 자충수가 됐지만, 국악의 부상에 지렛대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평소 ‘말없는 사람의 한마디’와 ‘말없던 사람의 한마디’가 달리 느껴지듯, 우리가 한 켠으로 멀리 밀어둔 음악이 어느 날 작은 변화를 안고 나오니, 변신의 폭이 어떤 음악보다도 크게 보인 것이다. 그래서 인기 비결을 묻는다면 나는 “당신의 시선”이라고 답하고 싶다.
앞서 말한 대로 관상용 음악에서 체감형 음악으로 바뀐 데에는 장르의 전환도 큰 이유다. 우리가 지금 선호하는 창작 국악은 민요나 판소리 등 성악류가 많다. 국악에는 그 외 가야금·대금 같은 악기가 중심인 기악 장르도 많다. 하지만 음악이 대중에게 다가가는 방식을 보면 기본적으로 악기로만 구성된 음악보다, 목소리와 가사가 있는 성악 장르가 더 강세를 보인다. 흔히 ‘대중음악’이라 하는 음악이 ‘가요’와 같은 의미로 통용되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해가 빠르겠다.
시대마다 기존의 국악을 새롭게 도금하는 음악가와 그룹이 있는데, 통계를 봐도 그러하다. 2000년 대에는 기악 중심의 앙상블이 많았다. 하지만 2010년대가 되면서 ‘소리꾼의 시대’가 열렸다. 전통 소리꾼을 보컬로 앞세운 그룹이 활약하기 시작했고, 대중매체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소리꾼들은 우리가 전혀 모르던 ‘새로운 소리’를 들려줬고, 우리가 관심도 두지 않던 ‘모르던 소리’를 들려줬다.

다시, 다양한 옷을 껴입고 나타난 한때의 대중음악

국악을 대하는 예술가들의 생각과 자세도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국악 자체가 대중화를 위해 수술대 위에 오른 음악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국악이 다른 예술 장르에 변화를 주는 수술 용품이 되기도 한다. 소리꾼 이희문과 나눈 인터뷰에서 이러한 느낌은 더 짙게 다가온다.
“‘전통음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할 때가 많아요. 우리는 지금 현대라는 시대와 도시라는 공간에 살고 있잖아요. 전통이 없는, 없어진 시공간입니다. 그래서 나는 ‘전통’이란 역사적 산물이라고, 또 그래서 잘 보존해야 하는 것이라기보다 어떤 새로운 예술의 개념을 추구할 수 있는 무기, 혹은 어떤 예술의 현대성을 도모하는 숨은 무기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이처럼 국악 예술가들은 자신의 창작물에 국악이라는 음악을 전면화하지 않는다. 국악의 대중화 작업이 한창이던 1980~1990년대에는 창작 국악에도 ‘전승’과 ‘보존’이라는 강령이 강력히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교훈도 똬리를 틀고 있었다.
지금의 예술가들은 자유롭다. ‘전면화해야 하는 국악’보다는 ‘요소로서의 국악’을 선택해, 대중이 좋아할 만한 틀에 국악을 부분적으로 넣는다. 치밀하고 전략적이다. 예를 들어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도 도입부는 귀와 몸의 리듬감을 잡아끄는 베이스기타의 라인이 판소리 가락보다 먼저 나온다.관객의 취향 변화도 중요했다. 2000년대부터 인터넷의 발달은 전 세계에서 독특한 음악을 찾아 듣는 ‘월드뮤직 청취족’의 성장을 도모했다. 최근에는 21세기의 DJ, 우연성의 DJ라 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 우리를 국악의 길로도 안내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평론을 하는 나에게 이러한 변화가 문화계에 주는 영향을 말해 달라고 하지만, 오히려 나는 이러한 세속의 원리와 흐름이 지금의 국악계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사실 국악은 세속의 음악이었다. 속세의 풍경이 담겨 있고, 인간이 세속을 살아가며 느끼는 희로애락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이 음악은 ‘한때의 대중음악’이었다. 하지만 잊히고 멀어졌다. 그 음악이 새로운 옷을 입고 다시 세속으로 나오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 각광받는 국악은 고정관념과 싸워온 음악 투사들, 새로운 문화를 찾고 즐기는 관객의 움직임이 지은 21세기 새로운 음악의 집이 아닐까 싶다.

송현민 음악평론가,월간《객석》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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