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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0월호

그라피티 아티스트 심찬양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을 그리는 게 정답 아닐까요?”
부산 해운대 영무파라드 호텔 12층에서 15층, 11m 높이의 벽면에 붉은 치마에 색동저고리를 입은 소녀 그림이 그려졌다.
한쪽 발을 살포시 들어 색동신을 신으려는 그림 속 그녀는 ‘벨라’라는 이름의 흑인 아이다.
이 그림의 제목은 <Walk in Your Shoe 2020>.
사자성어 ‘역지사지’의 영어표현인 ‘Put yourself in one’s shoes(상대방의 입장이 돼보라)’에서 따왔다.
최근 이 작품을 그리고 미국 캘리포니아로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심찬양 작가를 전화 인터뷰로 만나봤다.

올해 국제 구호 기구인 월드비전과 함께한 <World is One> 캠페인 작품

처음엔 그저 멋있어 보여서 시작한 그라피티

이름에서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듯, 심찬양 작가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모두 목사인 ‘목회자 집안’ 출신이자 그 스스로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다. 어렴풋하게나마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걷게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꼭 목회자의 길을 가야 한다는 집안의 압박을 받은 적은 없다. 다소 특수한 직업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직업을 응원해 준 분들도 다름 아닌 부모님이다. 부모님은 매번 심 작가의 선택과 결정을 믿고 지지해 주셨다.
중학생 때 《힙합》이라는 만화책을 보며 그라피티(래커 등을 이용해 공공장소 또는 벽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자 및 기타 흔적을 남기는 행위) 문화에 호기심을 가지게 된 한 소년은 김천예고를 다니던 학창 시절부터 직접 그라피티를 그리러 다녔다. 그 후 대학에서 만화창작을 공부하다가 필리핀으로 신학 공부를 하러 갔지만, 그곳에서 깨달은 것은 내가 진짜 원하는 것,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이 ‘그림’을 그리는 삶이라는 사실이었다.
이후 서울에서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라피티 작업을 했지만 한국에서 그라피티로 먹고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다. 돈이 되는 작업이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그릴 수가 없었고,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은 돈이 되지 않았다. ‘내가 그리고 싶은 것’과 ‘경제적인 문제’ 사이에서 방황했다. 그래도 그는 이 시절을 인생의 암흑기처럼 되새기진 않았다.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며 지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고 되새기면서 ‘돌이켜 보면 가장 재밌었던 시간’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세상에 이름을 알린 <꽃이 피었습니다>

혈혈단신으로 그라피티의 본토인 미국 땅을 밟아야겠다는 생각은 어찌 보면 무모한 선택이기도 했지만 그런 ‘모험’이 있었기에 지금의 그도 있는 셈이다. 심찬양 작가를 세상에 알리게 된 계기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의 교류 공간이자, 작품을 전시하는 복합문화공간인 ‘더 컨테이너 야드’에 2016년 그린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작품이다. 먹색의 저고리에 초록색 치마를 입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흑인 여성 옆으로 멋진 서체의 한글과 단아한 자태의 꽃이 조화를 이룬다. 그가 한복을 입은 흑인을 그린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은 아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도종환 시인의 시 제목에서 영감을 얻은 <흔들리며 피는 꽃>도 그중 하나다. 당시 친구의 소개로 우연찮게 얻은 기회였다. 두 번째로 더 컨테이너 야드에서 초청을 받아 넓은 면적에 그릴 기회를 얻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행운이었을까. 이 그림으로 일약 스타가 됐다. “동서양 문화를 잇는 화해의 메시지 담고 있다”라는 미국 언론의 찬사는 물론 ‘한복을 입은 흑인’을 그리는 그라피티 작가라는 자체만으로 미국 전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의 그림을 본 흑인 여성들로부터 “너무 감동적이어서 눈물을 흘렸다”라는 메시지도 여러 번 받았다고 한다.
“백인과 흑인 간의 인종차별도 문제지만, 한국인에게 상처받은 흑인도 꽤 많이 있었습니다. 사업장을 운영하는 한인들이 흑인을 많이 고용하는데, 아마 그 사이에서 받은 상처인 것 같더라고요, 제 그림을 보자, ‘안아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흑인 여성들이 감동을 받은 이유 중 또 하나는 ‘한복’에 있었다. 어떤 불필요한 노출 없이, 단아하고 단정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한복은 흑인 여성들이 더는 ‘성적 대상화’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위안을 주기 충분했다. 흑인 여성들이 그동안 받았을 온갖 상처를 되짚어보는 계기가 됐다.
그는 이후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여러 건의 작업을 했다. 한반도 평화가 가져온 변화를 주제로 해, 다양한 분야의 젊은 작가들이 참여한 청와대와의 컬래버레이션 전시 <어서 와, 봄>에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처음 만나는 장면을 그린 <환대>와 다문화가정 소녀들을 그린 <어깨동무>로 화제를 낳기도 했다. 작년 11월 경북 안동 성진골 벽화마을 입구에 위치한 동부초등학교 본관에 그린 작품은 안동에서 “한복 입은 흑인 소녀를 그려달라”라는 요청이 와서 한 작업이었다. 최근 전남 순천에서도 그림을 그렸다. 순천종합버스터미널 뒤편 골목 한 건물 벽면에 국내 작업 중 최대 규모(가로 22m, 세로 19m)로 미국계 한국인인 ‘벨라’가 색동저고리를 입은 모습을 그렸다.
최근 여러 도시재생 사업과 공공예술의 범주에서 활용되고 있는 그라피티 작업에 대한 심찬양 작가의 의견이 궁금했다. 그는 이것들은 모두 ‘시선’의 차이라고 말했다.
“낙서에서 시작한 그라피티가 예술이라는 범주로 올라갔다고 언론에서 많이들 보도하더라고요. 물론 개인적으로 제 작품만 생각했을 땐 유리한 지점도 있지요. 비정형의 ‘낙서’ 같은 그라피티 신(scene)에서 저는 ‘회화’로서의 차별성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라피티의 본질 자체가 변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사실 ‘낙서’로 보이는 그라피티도 누구 못지않은 열정과 실력으로 그린 작품이거든요. 결국 그것을 보는 사람이 ‘무엇’으로 규정하느냐 하는 인식의 차이가 아닐까요.”

2019년 4월 괌에서 열린 <Pow! Wow! Guam 2019>에서 그린 작품
주변 광경과 어우러지는 것을 중시하는 작가는 조망하는 시선에서 찍은 사진을 선호한다.

커뮤니티에 선사하는 하나의 근사한 ‘선물’이 되려면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여러 도시에서 작업해 본 그에게 그라피티를 그리는 데 주변의 지형지물이나 동네의 분위기 같은 외부 요소들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물었다. 심 작가는 “작업 의뢰를 받으면, 작품을 직접 그릴 건물 벽면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사진도 함께 받아 시안을 준비합니다. 현장에서 다시 시안을 보며 체크해요. 그 커뮤니티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동네와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 좋은 그라피티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며, 무작정 벽면에 아무 그림이나 그리는 건 기술적인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는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생각해 보니 그의 말이 맞다. 많은 사람이 보게 될 그라피티를 그린다는 건 그가 말한 대로 그 커뮤니티에 하나의 ‘선물’을 주는 셈인데 그 지역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림을 그린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까. 주변의 경관과 조화되고 그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요소를 활용해 그리는 것.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가치를 줄 수 있는 것. 그것이 핵심이었다.

부산 해운대 영무파라드 호텔에 그린 <Walk in Your Shoe 2020>

고유한 아름다움을 끌어내는 과정

흑인 모델이 한복을 입고, 그것을 직접 사진으로 담는 작업부터 심찬양 작가의 작업은 시작된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모델은 모두 실제 인물로, 그가 가장 좋아하는 흑인 모델인 8살 미국계 한국인 ‘벨라’와의 작업은 항상 즐겁고 본인에게 동기부여가 된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자신의 그라피티 작품을 처음부터 창작한다는 자부심. 그 시작은 바로 ‘사진’을 찍는 작업에 있었다. 이는 작업의 독창성 면에서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는 절차이자 작품에 일종의 예술성을 부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일단 한복을 입은 흑인의 모습을 사진을 찍어서 가지고 있다가, 이 구도에 맞는 분위기의 공간이나 벽이 생기면 그 사진을 참고해 작업을 시작한다. 그다음엔 벽에 밑그림을 그리고 채색하는 과정을 거친다.
한 작품에 쓰이는 래커의 양도 어마어마하다. 색을 섞을 수 없는 래커의 특성상, 점 하나를 표현할 색이라 하더라도 그 색의 래커가 필요하다. 컬러 작품의 경우 보통은 40가지 이상의 색이 필요하다. 면적에 따라 다르지만, 100통에서 많게는 300통의 래커를 사용한다. 페스티벌에서 몇 시간 만에 작품을 완성하는 퍼포먼스를 할 때도 있지만, 넓은 면적에 작품을 그릴 때는 열흘 정도가 걸리기도 한다. 방독면을 쓰고 크레인에 올라가 래커로 쉴 새 없이 그림을 그리다가 지상으로 내려와 전체를 바라보기를 반복하는 그의 모습에서 화가, 기술자, 행위예술가, 건축가, 조각가 등 여러 면모가 보이는 듯했다. “그래도 전 손이 빠른 편이에요. 붓으로 그리는 것보다 빠르기도 하고 래커가 물감보다 빨리 마르기도 하고요.”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준 작업의 방향성

흑인 소녀가 한복을 입은 콘셉트의 그의 그라피티를 두고, ‘인종차별’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는 평가가 많아 보였다. 이에 대한 작가 본인의 생각이 궁금했다. “인종차별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이런 그림을 그리는 건 아닙니다. 제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룰 만큼 많은 지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요.” 그는 겸손하게 답했다. 사실 한복 입은 흑인 그림을 그리기 전부터 심찬양 작가는 흑인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실제로 그가 2016년 <꽃이 피었습니다>로 널리 알려지기 전에도 흑인을 그린 그림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본인의 그림이 ‘인종차별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읽히는 것에 대해서 포용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제 그림을 그렇게 봐주시는 분들 덕분에 저도 그런 시각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할 수 있고, 제 작품에 대해서 일종의 책임감 같은 것도 더 생기는 것 같아요. 인종차별 문제, 남녀평등 문제, 그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든 제 그림이 그들을 ‘지지’한다고 느낀다면 저는 그런 에너지를 부정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이 그림을 애초에 시작한 이유는 누구에게든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고 싶어서였거든요. 그런 면에서는 그들이 생각한 것이 맞는 셈이죠.”
관심이 있고 재미있어 그렸을 뿐인데, 사람들이 ‘인종차별’에 대한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각자의 사연을 견주어 감동을 받았다. 한복도 마찬가지였다. ‘한복을 세상에 알려야겠다’라는 원대한 목적을 가지고 한복을 그린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단순히 예뻐서 시작한 한복 그림이지만, 보는 사람들은 긍정적인 에너지와 감동을 받았다. 그런 피드백은 심 작가로 하여금 한복에 대해 더 알고 싶게 하고 어떤 한복이 어떤 사람에게 더 잘 어울리는지 공부하게 했다. 사람들이 ‘이유’를 주고 하나의 방향을 제시해 준 셈이다.
“한복을 입은 외국인들을 그리다 보니, 제 그림을 통해 한복에 대해 처음 알게 되는 외국인이 많아요.” 그에겐 우리나라의 고유 의상인 ‘한복’에 대한 부담감과 나름의 책임감이 있었다. “한복 입은 외국인 작업을 계속할 거면 제대로 된 한복, 가장 전통적인 디자인의 한복이 필요했어요.” 그는 이런 생각을 한복 명인인 박술녀 선생께 전했고, 그의 진심이 통했는지 박술녀 명인은 흔쾌히 그의 작품에 한복을 협찬하고 있다. 화려하면서도 고급스러운 한복 디자인을 보는 것 또한 그의 작품에서 하나의 감상 포인트라 할 만하다.

힙합의 한 요소로서의 그라피티

비보잉(B-boying), 디제잉(DJing), 엠싱(MCing)과 함께 그라피티는 힙합의 4대 요소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서 ‘힙합’이라 하면 흔히 비트에 맞춰 랩을 하는 ‘음악’을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힙합이라는 문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저항성, 사회참여적인 목소리 등의 요소는 그라피티가 가지고 있는 특성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함께 거론되는 경우가 많다고. 이외에도 레터링, 태깅(Tagging) 등등 그라피티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요소 중 하나다. 그라피티에 흥미를 가질 독자를 위해 몇 가지 팁을 달라는 부탁에 그는 뱅크시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와 비보이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플래닛 비보이>를 추천하며 “이제 벽만 보고 다니시게 될 거예요.”라고 웃었다.
마지막으로 한복을 입은 흑인 그라피티 작업을 언제까지 할 작정인지 물었다. “아마 당분간은 계속하겠죠. 아직 이 그림을 못 본 사람이 더 많은 것 같거든요. 제 그림에서 한 분이라도 긍정적인 희망의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면, 최대한 이 그림을 오래 그리고 싶어요.” 그는 일약 스타가 된 것 같지만, 생각보다 꽤 오랫동안 꽃을 피울 터였다.
글 전은정_객원 기자
사진 제공 심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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