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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9월호

‘오토픽션’과 사생활 침해소설가 김봉곤 사적 대화 무단 인용 논란
지인과 나눈 문자메시지가 소설의 한 부분을 차지했다. 당사자의 동의 여부도 문제였지만, 개인의 사생활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내용을 과연 소설에 그대로 싣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논란으로까지 논의는 확대될 수 있었기에, 쉽게 넘어갈 수만은 없는 문제였다. 지난여름, 출판계를 뜨겁게 달군 소설가 김봉곤의 사생활 무단 인용 논란은 출판계를 넘어 창작 윤리의 문제로까지 번졌다. 사건의 발단과 오토픽션 논란을 함께 알아본다.

김봉곤은 커밍아웃한 최초의 게이 소설가로 유명해졌다. 그는 첫 소설집 《여름, 스피드》(2018)에서부터 남성 동성애자의 사랑과 이별을 격정적인 문장에 담아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비슷한 무렵에 첫 소설집을 낸 박상영과 함께 한국에서 게이 문학의 장을 본격적으로 연 작가로 평가받는다.

‘오토픽션’ 그리고 ‘사소설’

김봉곤이 커밍아웃한 게이 소설가라는 사실에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독특한 소설 작법이다. ‘오토픽션(autofiction)’이라는 방식이 그것인데, 영어로 자서전을 뜻하는 ‘autobiography’와 소설을 가리키는 ‘fiction’을 축약·결합한 표현이다. 그러니까 ‘자전소설’이라고 풀이할 수도 있겠지만, 여느 자전소설과 구분되는 모종의 극단성을 특징으로 삼는다. ‘내가 경험한 것만 쓴다’는 원칙이 그것.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중편 <auto>에서 그는 이렇게 쓴 바 있다.
“전적으로 나에 기대어, 나를 재료 삼아 쓰는 글쓰기, 나를 모르는 사람은 배려하지 않는 배타성, 그 배타적임으로 생기는 내밀함을 나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사실 엄밀히 말해서 오토픽션이라는 말은 형용모순이다. 픽션이란 정의상 허구적 글쓰기를 가리키는데, 그 앞에 ‘자전(적)’이라는 말이 붙는 게 어색해 보이는 것이다. 말하자면 허구적 자서전이라는 것. 이러할 때 ‘허구’와 ‘자서전’은 서로 충돌한다. 오토픽션과 비슷한 것이 일본에서 특히 성행한 장르 ‘사소설(작가 자신의 체험을 그대로 그려낸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많은 소설이 어느 정도는 자전적 요소를 지니게 마련이라 해도 일본의 사소설은 정도가 심한 편이다. 가령 나쓰메 소세키의 문하생이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친구였던 소설가 구메 마사오는 사소설이야말로 소설의 정수라고까지 주장했다.
“결국 모든 예술의 기초는 ‘나’에 있다. 그렇다면 그 나를 다른 가탁 없이 솔직하게 표현한 것, 즉 산문 예술에서는 ‘사소설’이 명백히 예술의 본도(本道)이자 기초이며 진수이어야 한다.”(<‘사’소설과 ‘심경’소설>)
구메 마사오의 이런 주장은 어쩐지 앞서 인용한 김봉곤 소설 <auto>의 한 대목을 떠오르게 한다. 두 사람의 소설관은 거의 흡사해 보인다. 구메가 말하는 “가탁 없이 솔직하게”는 곧 김봉곤이 추구하는바 “배타적임으로 생기는 내밀함”과 같은 게 아니겠는가. 김봉곤의 이 말에 앞서 나오는 표현이 “나를 모르는 사람은 배려하지 않는 배타성”이거니와, ‘모르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것이야 그렇다 쳐도 ‘아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데에서 불거진 문제가 얼마 전 문단 안팎을 뜨겁게 달구었다.

예술을 앞세우기보다는 다각적이고 신중한 접근 필요

사태는 자신을 출판 편집자라고 밝힌 트위터 이용자명 ‘다이섹슈얼’이 7월 10일 트위터에 올린 글로 시작됐다. 그는 김봉곤의 단편 <그런 생활>에 자신이 작가에게 보낸 개인적 문자메시지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며 작가의 사과와 함께 이 작품을 수상작으로 뽑은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의 수상 취소 등을 요구했다. ‘다이섹슈얼’의 트위터 글에 대해 김봉곤은 자신이 소설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그와 충분한 협의를 거쳤고, 문자메시지를 소설에 쓰는 데 대해서도 동의를 얻은 것으로 생각했노라는 요지의 해명문을 올렸다. 젊은작가상을 주관하는 출판사 문학동네 역시 문제가 된 문자메시지를 삭제한 버전으로 심사위원들의 의견을 다시 들어본 결과 수상 취소까지 갈 문제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다이섹슈얼’은 김봉곤의 행위로 인해 자신이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며 수상 취소 요구 등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트위터를 비롯한 사회관계망서비스 공간에는 그의 고통에 공감한다며 문학동네와, 해당 작품이 수록된 소설집 《시절과 기분》을 낸 출판사 창비를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사태는 자신을 김봉곤의 첫 소설집 표제작인 단편 <여름, 스피드>의 등장인물 ‘영우’라고 밝힌 이가 7월 17일 트위터에 글을 올려 김봉곤이 자신의 문자 역시 허락 없이 소설에 인용했으며 그 때문에 강제로 자신의 성 정체성이 까발려지는 ‘아우팅’ 피해를 당했다고 밝히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김봉곤은 해당 사실을 인정했고, 문학동네와 창비는 김봉곤의 두 소설집과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판매 중지를 결정했다. 김봉곤은 7월 21일 올린 사과문에서 “부주의한 글쓰기가 가져온 폭력과 피해” “고유의 삶과 아픔을 헤아리지 못한 채 타인을 들여놓은 제 글쓰기의 문제점”을 반성한다며 두 피해자와 독자 및 출판 관계자, 동료 작가들에게 사과의 뜻을 밝혔다.
이로써 상황은 일단락됐지만, 이번 사태는 소설 창작과 사생활 침해의 관계를 둘러싸고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남겼다. 오토픽션의 선배 격이라 할 수 있는 노르웨이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가 대표작 《나의 투쟁》에서 아버지 등 주변 인물들을 부정적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송사에 휘말리고 가족과 절연했다는 사실은 오토픽션이라는 글쓰기 방식에 내재한 위험성을 보여주는 셈이다. 이번 일로 작가에게 주어진 창작의 자유가 위축돼서도 곤란하겠지만, 예술의 이름으로 타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인격과 존엄성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만큼은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글 최재봉_《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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