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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OF SEOUL

7월호

이경자의 서울 반세기, 공간을 더듬다 20여자라는 자연 속엔 무엇이 살까

1980년대 내내 ‘여자란 누군가’ ‘왜 여자만?’ 이런 질문에 신들린 듯 사로잡혀 살았다. 여자로 태어나서 주어진 환경에 따라 살면 될걸, 왜 이런 질문에 시달리며 해답을 찾겠다고 설쳐야 했을까.
‘뭐, 팔자소관이었겠지….’
지금은 이렇게 할머니다운 기분으로 생각한다. 그땐 앞뒤 살펴볼 줄도 모르고 무언가 치닫다가 자빠지곤 하던 30대 중반이었으니까.
지금 사뭇 애틋한 기분으로 그 시절을 돌아보면 이해는 간다. 나름으로 ‘균형’을 맞추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들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내가 느끼는 불행감이나 열패감, 불안감 따위가 모두 깨지고 일그러지고 비틀린 균형에서 비롯된다고, 나 나름대로 진단했었다. 하여간 무엇이 되었건 깨진 건 망가진 것이고 망가진 건 고쳐야 하지 않을까. 감히 고치고 싶어 비장하게 설쳐댔던 때의 이야기다. 1980년대 중반쯤, ‘가난한 여성’을 찾으러 사방을 돌아다녔다. 서울 서쪽 변두리에서 살다가 반대편인 동북쪽, 수유리로 이사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맘땐 아직 아파트가 들어서지 않았고, 당시 ‘개발’의 흔한 모습은 빈터에 서양식 다세대주택을 짓거나 낡은 집 몇 채를 사서 부순 뒤 높지 않은 건물을 짓는 것이었다.
그날은 장미원 시장을 지나 건너편 우체국 옆으로 난 골목으로 해서 새로 뚫린 길로 쏘다녔다. ‘가난한 가정에서 가장 가난한 건 여성’이라고, 속으로 말하면서 그 가난을 현실에서 확인하고 싶었다. 더군다나 나로 말하자면 부자였던 적이 없어서 부자들의 가정 내 위계는 상상을 못하고 그저 중산층 이하의 가정으로만 상상력이 가닿는 처지긴 했다.
이런 나의 눈에 확 끌리는 집이 보였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건물들 사이, 맨 아래 칸에 자리한 초라한 밥집이었다. 간판은 없고 가게 앞에 커다란 갈색 고무 대야에서 물이 흘러넘치고 양념이 붙은 그릇들과 냄비들이 그 옆에 쟁여 있었다. 일손이 부족해 보였다. 그렇지 않다면 설거짓거리를 저리 둘 리는 없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나보다 좀 어려 보이는 헝클어진 파마머리의 여자가 안에서 나왔다. 피로가 덕지덕지 붙은 표정이었다. 우리는 처음인데도 서로에게 미소 지었다.
“뭐 드시려고요?”
내게 물었다. 나는 무턱대고 고개를 끄덕였고 여자는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했다. 그는 고무 대야 앞에 허리를 접고 앉아 빠르게 그릇을 씻었다. 나는 냉큼 그 옆에 앉아 비누칠이 된 그릇들을 헹궈 소쿠리에 얹었다. 여자가 미안하고 고마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심심해서 그런다고 말했다. 대야 옆에는 대충 신문지를 덮어놓은 대파가 있었다. 물어보지도 않고 뿌리를 자르고 다듬어 씻었다.
“아이고 일을 잘하시네요.”
여자가 말했다.
“이런 건 일도 아니죠.”
그가 나를 밀어내지 않는 게 좋아서 마냥 기뻤다.
가게는 작았다. 문을 열면 긴 나무 탁자가 두 갠가 세 개 놓였고 탁자 앞뒤로 여러 명이 같이 앉을 수 있는 나무 의자가 있었다. 가스레인지가 놓인 주방과 주모가 움직이기 빠듯한 공간 옆에 칸을 막지 않은 구들방이 보였다. 탐정이나 형사처럼 재빨리 현장을 살핀 내게 순진하고 마냥 착한 표정의 여자가 국밥 드시지요? 물었다. 마주친 눈길에 대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구들방이 마주 보이는 곳에 앉았다. 이불을 둘둘 말아 벽에 붙여놓은 것 같은 크고 긴 것이 보였다. 그것이 사람일 것이라는 상상은 하지 못했다. 나는 의자 한 귀퉁이에 앉아서 갓 칠한 듯 하얀 회벽에 가슴골이 깊게 파인 수영복 차림의 여자가 거품이 인 맥주잔을 들고 활짝 웃는 모습이 인쇄된 광고에 여러 마리의 파리가 붙었다 날곤 하는 걸 바라보았다.
이때 중년쯤의 아저씨가 들어와 의자에 앉았다. 초췌하고 주눅 든 인상이었다. 그는 단지 소주 한 병만을 시켰다. 소주 한 병을 비우는 동안 깍두기를 두세 번, 국물도 얻어먹었다. 여자는 종종걸음을 치며 순댓국을 커다란 냄비에 담고 밥도 퍼서 고무 대야에 담았다. 빈 국그릇 밥그릇들이 대야 속에 엎어져 있는 속에 수저와 젓가락을 와르르 던져 넣었다. 밥그릇을 앞에 두고 여전히 깨작거리는 내게 근처 집짓는 곳에 새참을 가져다줘야 한다고 빠르게 말했다.
“금방 와요. 바로 옆이니까요.”
덧붙였다. 남자 손님은 계산을 하고 나갔다.
“저는 그냥 있을게요.”
내가 말했다. 여자가 순진하고 단순한 웃음을 웃어 보였다.
오후 서너 시 무렵의 국밥집은 한가했다. 구들방의 커다란 이불더미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 미궁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다행히 여자가 맨손으로 금방 왔다.
“야아! 이년아! 밥 줘!”
갑작스러운 고함이었다. 이불더미가 꿈틀하는가 싶었는데 잠긴 목소리가 먼저 공간을 흔들었던 것이다. 곤혹스러움에 두려움까지 끼쳤다. 여자가 밥을 차리는 동안 예닐곱 살은 넘어 보이는 남매가 들어와 책가방과 신발주머니를 마루 위로 내던졌다.
“아빠 또 술 마셨지!”
딸아이가 소리쳤다. 아빠가 딸을 향해 눈을 부라리는 것 같았다.
나는 다음 날부터 이 집으로 거의 출근을 하다시피 했다. 식당 일을 배우려는 거냐고 여자가 먼저 물었고 나는 그냥 웃었다. 가서는 설거지를 도와주고 근처 공사장으로 새참을 나르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남자는 일하지 않았고 아내를 이년저년 불렀으며 내겐 더러 의뭉스러운 눈빛을 보냈고 말도 걸었다.
《절반의 실패》에 실린 <목숨앗이>는 이곳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글·사진 이경자_서울문화재단 이사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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