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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상담소

2월호

별자리 운세도 신통치 않을 때예술적으로 상담해드립니다
“똑똑똑… 여기가 ‘예술적 상담소’ 맞나요?”
여러분의 어떤 고민도 예술적으로 상담해드리는 ‘예술적 상담소’. 온라인으로 별도 공간을 마련해 고민 상담을 위한 만반의 채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올려주신 고민에 대한 예술적 대책을 찾아 답변을 달아드립니다. 서울문화재단 페이스북 탭에서 ‘예술적 상담소’를 찾아주세요! 다른 사람의 고민에 댓글을 달 수도 있답니다. 채택된 질문은 [문화+서울]에 게재되며, [문화+서울]을 1년 동안 보내드립니다.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사용합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몸을 움직이지요. 그런데 특정 사람들에게는 이런 행위가 예술 활동이 되곤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예술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아닌 것이 되는데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드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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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정의할 수 없는 개념

결론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예술(행위)에 대하여 어떤 기준을 정해두고 ‘예술이다 혹은 아니다’라고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예술은 고정관념을 깨고 파격적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설정된 기준을 넘어버리는 유기체와 같습니다. 내일 또다시 예술의 정의를 바꿀 만한 혁명적인 일들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특정한 사안에 대하여 예술(행위)에 대한 기준을 정하는 것보다 그것이 예술인지 아닌지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그 답에 가까이 도달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해보겠습니다.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예술이 아닌가를 분별하려면 결국 예술이란 무엇인가부터 정리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오랫동안 예술은 다양하게 정의되어왔습니다. 먼 과거에는 ‘기예’와 ‘학술’을 아우르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영어 ‘Art’는 ‘기술’, ‘재주’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술은 처음에는 ‘종교의례’나 ‘기록’ 등의 목적을 가지고 좁은 의미로 존재했지만, 차차 그 본래의 기능과 목적이 희미해지는 대신 특정 형식의 미를 창조하고 표현하려는 전반적인 인간 활동으로 확대되어 정의되었습니다. 이렇게 영역이 넓어지면서 예술을 단순하게 정의 내리기는 쉽지 않아졌습니다. 특히 오늘날 예술에 대한 담론은 더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이러한 결정적 계기를 보여준 사례를 통해 문제를 푸는 단서를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바로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프랑스 태생의 앙리 로베르 마르셀 뒤샹(Henri Robert Marcel Duchamp, 1887~1968)입니다. 오늘날의 현대예술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예술가 중 한 명이지요. 그가 1917년 미국 독립미술가협회에 남성용 변기를 <샘>(Fountain)이라는 제목으로 출품한 사건은 예술에 대한 관념을 모두 뒤집어놓았습니다. 이로 인해 예술에 대한 많은 논란이 일어났고 결국 현대미술의 개념도 바꾸어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는 기성 변기에 글자를 써넣은 작품을 당당히 출품하고서 “예술가는 계획이나 발상을 세우는 게 중요하고, 자기 발상에 맞는 오브제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며, 기교나 기술은 단지 작가의 발상을 전달할 때 필요한 요소에 불과하다. 작가의 생각이나 사상을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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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토론과 질문에 해답이

오늘날 ‘예술’이라는 단어만큼 다양하게 정의 내릴 수 있는 개념도 없습니다. 예술은 다양한 얼굴로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결국 예술은 ‘개개인의 의견’이 존중받는 분야라는 반증으로 보입니다. 예술은 개인이 자신의 경험에 의거해, 경험에 기초한 학습에 의거해, 자신의 취향에 의거해, 목적을 위해, 감상하려는 의지에 따라 수없이 다양한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숭고한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고, 어떤 이는 그저 ‘재미’의 대상이라고 볼 수도 있으며, 또 어떤 이는 ‘가치가 없는 하찮은 것’이라며 폄하할 수도 있겠지요. 처음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럼 과연 예술의 범주는 어디까지이며, 그 가치는 어떻게 기준을 정할까요? 예술에 대한 정의가 다양한 만큼 무수한 의견이 존재할 것입니다. 최우선으로 두는 기준과 가치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반인륜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지 않은 이상, 이 기준들은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개인이 내리는 판단은 누군가가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있는 범위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무엇을 예술로 볼 것인가로부터 자유롭다고 해도 인간의 본성, 사회적으로 학습된 가치에 따라 다수가 공감하는 ‘좋은 예술’이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다수가 말하는 ‘좋은 예술’이 꼭 나에게도 좋은 것으로 보장되지는 않는다는 점, 그리고 우리에게는 좋아할 자유가 있는 만큼 싫어할 자유 역시 있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우(Abraham H. Maslow, 1908~1970)는 인간의 5대 욕구 중에서 ‘자아실현의 욕구’를 가장 최종적인 욕구라고 했습니다. 예술은 이러한 욕구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가치, 존재 이유, 추구하는 이상, 삶의 흔적들을 각종 수단과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감하기 힘든 예술이라 하더라도 무조건적인 적대감으로 대하기는 어려우며, 가능한 한 열린 마음으로 감상하고 향유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오늘날 예술가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관람객 또는 비평가들에게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예술이 아닌지를 가늠하게 하는 비평적 판별 기준이 무너졌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상식입니다. 존 카레이(Jone Carey)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그것이 지상의 단 한 사람에게 예술로서 인정되고 감상되는 한, 그것은 예술인 것이고 가치 있는 예술인 것이다”라는 극단적 상대주의예술론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들이 ‘쓰레기’라고 말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구원의 작품이 될 수 있다면, ‘구원의 작품으로서의 의미’는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술상대주의적인 관점이 사회적으로 보편화되었다고 해서, 모든 예술 형식을 표방하는 것에 너무 관대한 문화가 반드시 바람직한지 되물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예술가)이 ‘내가 내놓은 이것은 예술(행위)이다’라고 주장했을 때 더 이상 의문 없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예술로 인정하는 것은 많은 문제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예술이다 혹은 예술이 아니다’라는 단순한 물음으로 정리하기는 어렵습니다. 주지했듯이 타인의 취향은 전적으로 존중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그 예술작품(행위)이 왜 가치가 있는지 또는 왜 가치가 없는지 서로 논의하며 그 과정에서 예술에 대한 기준을 공동으로 정립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너와 나의 취향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토론함으로써 예술에 대한 심미안을 높일 수 있습니다. 끝없이 토론하며 ‘지금 우리 삶에 좋은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 우리가 품고 있는 예술에 대한 철학적인 의문을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답변 김영호 서울문화재단 혁신감사실 혁신기획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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