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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호

북한 예술 전반의 흐름에 대하여
‘사회주의 문명국 건설’의 의미는?

김정은은 권력 세습 6개월이 조금 지난 시점에 자신이 창단을 주도한 모란봉악단의 시범 공연을 통해 ‘깜짝쇼’를 연출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집권 초기, 체제 공고화의 필요성에 따라 이후 북한 문학예술계는 대체적으로 보수적인 색채가 강화되거나 유지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예컨대, 집권 초기에 제시한 ‘김정일 애국주의’와 ‘김일성-김정일주의’(당의 최고 강령)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문학예술 작품에서 중요한 창작 주제가 되고 있다. 김일성 3대에 대한 우상화 작품과 체제 선전을 위한 작품 창작, 그리고 과업 관철을 위해 전체 당원과 인민군 장병, 인민들을 고무·추동하는 작품을 창작하고, 직접 경제 선동 활동에 나서는 것이 변함없이 북한의 작가, 예술인들에게 부여된 기본 임무이자 사명이다. 현재 남·북·미 간 역사상 유례없는 데탕트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그러나 북한 문학예술계에서는 이러한 분위기에 걸맞은 변화 조짐을 찾을 수 없다. 앞으로 좀 더 예리한 눈으로 북한 문학예술계를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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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수대창작사 전경. (촬영 사진공동취재단)

2 지난 2월 11일 국립극장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패럴림픽 개최 기념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에 가수 서현이 함께했다. (촬영 청와대사진기자단)

김정은 정권 이후의 변화

김정은은 2012년,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일종의 사회·문화 비전인 ‘사회주의 문명국 건설’을 제시했다. 공동 사설은 다른 문화 분야와 함께 문학예술 분야에 대해서도 사회주의 문명국을 이루어 세계 문명을 따라 앞서기 위한 방도를 제시하고 있다. 그 방도는 주체 사실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당의 문예방침을 고수하고, ‘생동하고 통속적인’ 군중예술 활동을 활성화하며, 나아가 생활양식에서 자본주의의 사상문화적 침투를 분쇄하여 이색적인 생활 풍조를 뿌리 뽑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적어도 문학예술 분야에서 만은 기존의 정책 노선을 고수할 것임을 천명한 것이다. 물론 산업미술과 상업미술 육성, 보건 복지와 생활환경 개선, 교육제도 개편, 엘리트 체육 육성 추진 등 타 분야에서의 사회주의 문명국 건설 이슈의 실용적 측면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상화 중점 대상의 변화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젊은 나이에 정권을 승계한 김정은은 집권 초창기 내내 조부인 김일성의 ‘온정적 권위주의’ 이미지를 모방하는 한편, 작가, 예술인들로 하여금 김일성을 중심으로 ‘백두혈통’ 3대 가계(家系)에 대한 우상화 작품들을 쏟아내게 했다. 그러나 점차 우상화 정책에서 조부인 김일성보다는 아버지 김정일의 비중이 더 커지는 경향을 보였고, 김정은 자신에 대한 우상화 선전 작품들도 늘어났다. 특히 2013년 말 자신의 고모부를 전격적으로 처형한 이후에는, 백두혈통의 강조와 ‘유일적 령도체계’ 확립의 필요성에 따라, 그리고 고위층에 대한 잦은 숙청과 당 7차 대회를 통해 자신의 지위가 공고해짐에 따라 김정은 자신에 대한 우상화 작품 창작 비중이 급격히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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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005년 10월, 평양 5.1경기장에서 펼쳐진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

모란봉악단 창작 기풍 따라 배우기

2012년 7월 모란봉악단 창단 연주 이후 ‘모란봉악단 따라 배우기’ 열풍이 2015년 말까지 북한의 전 문학예술계에 거세게 몰아쳤다. 모든 문학예술 장르에서, 모란봉악단이 창조했다는 혁명적이고 전투적인 창조기풍을 따라 배워 명작 창작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 올리자는 것이다. 3년 넘게 휘몰아쳤던 열풍은 2015년 12월 공훈국가합창단과 함께한 중국 친선 방문공연이 공연 직전 취소된 사건 이후 수그러진 상황이다. ‘모란봉악단 따라 배우기’는 2016년도에는 명작 창작 방도 중 하나로 간략하게 언급되는 정도에 그쳤고, 2017년에 들어와서는 언론에서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이후 북한의 공연계 열풍은 2015년 7월 김정은이 새로 창단한 걸 그룹인 청봉악단과 2016년 지방 순회공연을 독점하다시피 한 왕재산예술단으로 옮겨갈 기미를 보이고 있다. 북한 당국은 공연 형식에서나마 인민대중, 특히 젊은이들의 변화된 미감을 달래보려 노력하는 한편, 한류 등 ‘남조선 날라리풍’(자본주의 황색 바람)에 대해서는 여전히 경계심을 보이고 있다.

명작 창작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

김정은은 문학예술 분야가 심각한 침체 상태에 빠져 있다는 인식하에 2014년 5월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에 문학예술인들을 크게 질타하는 ‘시대와 혁명 발전의 요구에 맞게 주체적 문학예술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나가자’라는 제목의 서한을 보냈다. 이 서한에서 김정은은 문학예술 부문 부진의 근본 원인을 모두 ‘지도일군’(지도간부)들과 창작가, 예술인들의 자질 문제로 돌리고, 문학예술을 ‘수령의 문학예술’로, ‘당 정책화된 문학예술’로, ‘인민의 문학예술’로, ‘전투적인 문학예술’로 발전시켜 나갈 것을 주창(主唱)했다. 한편으로는 ‘명작폭포로 당의 선군 령도를 받들자!’를 문학예술 부문의 전투적 구호로 제시했다.‘명작 창작’은 김정은의 등장 이후 신년 공동 사설과 신년사 등에서도 언급되긴 했으나, 서한에서 이를 전투적 구호로 제시한 것이 명작 창작 열풍의 계기가 되었다. 이후 북한의 문학예술계에서는 온통 ‘명작을 창작하자’, ‘명작폭포를 이루자’는 구호가 난무했고, 언론 매체 문예 관련 기사의 화두는 단연 ‘명작폭포’로 바뀌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북한 문학예술 정책의 방향은 “침체를 불사르고 백두의 칼바람 정신으로 시대의 명작들을 더 많이 창작하자”는 말로 요약할 수 있겠다.
김정은이 정치 전면에 등장한 직후 새로운 주제로 떠오른 것은 ‘김정일 애국주의’, ‘김일성-김정일 주의’였다. 이후 ‘명작폭포’, ‘명작대풍’, ‘명작 창작의 전성기’ 등의 구호 아래 명작 창작의 주제 방향과 전략적 방도가 제시되었다. 김정은 정권 출범 이래 거론된 명작을 창작하기 위한 주제와 소재의 방향으로는 ①김일성·김정일의 혁명 역사, 업적, 풍모 형상, 김정은의 위인상, 영도 업적, 사상과 의도, 김정은을 따르는 인민의 사상감정 구현, ②‘선군 령도’, ‘자강력 제일주의’ 등 당의 사상과 5대 교양1) 등 당의 의도 구현, 당 노선·정책 관철에 나선 천만군민의 생활 반영, ③강성국가 건설 주제(사회주의 정치사상 강국의 불패의 위력 강화 주제)2), 군사 강국의 위력을 떨치기 위한 투쟁 주제, 과학기술을 앞세우고 사회주의 경제 강국, 문명국 건설에서 전환이 이룩되는 현실 주제, ④“백두의 혁명 정신, 백두의 칼바람 정신이 나래치는” 혁명전통 주제, 혁명의 사상 진지를 철통같이 다지는 데 이바지하는 작품, 승리의 신념과 의지를 심어주는 작품, 정신력의 강자들·시대적 전형들의 사상정신세계 구현, ⑤과업 관철에 나선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대, 과학자·기술자들, 근로자들, 체육인들, 교육자들의 영웅적 투쟁 형상, ⑥통일을 주제로 한 명작 창작 등이다.
한편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명작 창작의 전략적 방도로 제시된 것은 ①사회주의 문명국 건설에서 자기의 사명과 책임을 다할 것, 당의 사상과 의도를 작품에 철저히 구현할 것, ②명작에 대한 창작적 야심과 열정을 가질 것, 백두의 혁명 정신, 백두의 칼바람 정신으로 무장할 것, 정치적 식견과 창작적 기량을 높여 실력 경쟁에 나설 것, ③굳어진 도식과 틀을 깨고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끊임없이 새것을 탐구하고 혁신하는 창작 기풍을 세워 나갈 것, ④주체적 문학예술 건설 원칙(수령의, 당 정책화된, 인민의, 전투적인 문학예술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확고히 틀어쥐고 나갈 것, ⑤시대정신이 나래치는 현실 체험을 통해 의의 있는 인간 문제를 발견하고 약동하는 시대의 숨결을 작품에 담을 것, ⑥소재와 종자, 형상세계를 틀어쥐고 속도전을 벌일 것 등이다. 굳어진 도식과 틀을 깰 것과 주체적 문학예술 건설의 원칙을 지켜나갈 것을 동시에 제시한 것은 내용적 측면 보다는 형식적 측면에서의 혁신을 요구함을 의미한다. 이후 2016년 5월 김정은은 당 7차 대회 사업총화보고를 통해 문학예술 모든 부문이 “위대한 수령님들의 영광 찬란한 혁명 력사와 불멸의 업적, 고매한 풍모를 깊이 있게 형상한 명작, 력작들을 창작”할 것을 주문했다.

1) 5대 교양이란 위대성 교양, 김정일 애국주의 교양, 신념 교양, 반제계급 교양, 도덕 교양을 말한다.

2) 이를 위해서는 김일성 3대의 “위대성을 형상한 작품들”과 “혁명의 사상 진지를 철통같이 다져나가는 데 이바지하는 혁명적인 작품들”을 창작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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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002년에 열린 8·15 민족통일대회에서 북쪽 공연단이 민속무용 ‘물동이춤’을 추고 있다. (촬영 사진공동취재단)

5 기념비적 작품은 북한 미술에서 중요한 부문이다. 만수대창작사 작품인 주체사상탑 앞의 조각군.

시각, 전통, 영화 분야의 동향

북한에서 우상화 건조물은 선전화, 우표와 마찬가지로 시각예술 분야의 주요 영역 중 한 부문을 차지하고 있다. 즉 우상화 건조물은 기념비미술(기념비회화, 기념비조각, 기념비건축으로 분류)의 한 부문이다.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한 후 북한 전역의 영생탑 글귀를 교체하는 작업은 2012년 3월 이전에 완료되었다. 이후 북한사회 전반에 모자이크 벽화, 동상, 사적비, 표식비 등 우상화 건조물이 각 도·시·군, 기관·기업소·공장 간에 경쟁적으로 건립·조성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북한 전역의 수려한 자연 경관을 여지없이 망쳐왔던 초대형 ‘천연바위 글발’ 사업이 2012년 4월 개성시 박연폭포 부근에 조성한 것을 끝으로 더 이상 조성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모자이크 벽화와 동상 조성의 경우에는 매년 일정한 수준을 유지(연평균 73건, 언론보도 기준)하고 있으며, 혁명사적관, 혁명사적비, 혁명사적 표식비, 현지지도 표식비 등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연평균 16건)에 있다.
북한은 2000년 초부터 “제국주의자들의 반동적인 부르죠아(부르주아) 사상문화 전파 책동”에 대한 대응책으로 주민에 대한 사상 교양사업 강화와 함께 사회 전반에 ‘군인문화’의 확산·정착, 그리고 민족문화(전통문화)의 일상 생활화를 시도해왔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와 같은 간접적인 방식보다는 주민사상 교양과 더불어 강압적인 감시·통제 등 직접적인 차단 방식을 강화하는 추세이다.
한편 문화유산 정책에 있어 김정은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비물질적 문화유산(즉 무형문화재)에 대한 발굴·관리 의지와 민족유산의 세계화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비물질적 문화유산에 대한 북한 당국의 관심은 두 차례에 걸친 관련 법 폐지와 신설, 그리고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노력을 통해서 확인할수 있다. 북한은 현재 2건의 세계문화유산(2004 고구려 고분군, 2012 개성역사유적지구), 1건의 세계기록유산(2017 무예도보통지), 그리고 2건의 인류무형문화유산(세계비물질문화유산, 2014조선민요 <아리랑>, 2015 김치 담그기 풍습)을 보유하고 있다.
영화는 별도의 지식이나 사유(思惟)가 필요하지 않은 ‘직관예술’(直觀藝術)이므로, 대중성은 물론 호소력과 전파력, 즉 선동성이 강하다는 특성이 있다. 구 공산권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북한은이러한 영화의 특성이 인민대중에 대한 사상 교양과 선전 선동에 매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건국 이래 여타 예술 장르보다 중요시해왔다. 그러나 북한 영화계는 전성기라 할 수 있는 1980년대 이후 국제적인 고립과 경제난, 기자재의 노후와 함께 주제나 소재가 매너리즘에 빠졌으며,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크게 위축되어 있는 상황이다. 북한은 특이하게도 예술영화(극영화)가 제작되면 <로동신문> 등이 그 줄거리를 빠짐없이 소개하는데,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 언론 매체에 소개된 예술영화는 연 평균 2편에 불과하여 영화계의 위축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반면에 방송 드라마는 활발히 제작되고 있어, 영화 부문의 장비와 인력이 드라마 쪽으로 투입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고 있다. 한편 국제적인 제재와 어려운 경제 상황하에서도 격년제인‘평양국제영화축전’은 꾸준히 개최되고 있다. 다만 해외 단체의 참가 규모가 다소 축소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양열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초빙석좌연구위원,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민화협 정책위원. <남북한 문예정책의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근무했으며,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사진 제공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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