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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0월호

국악 공연 <꼭두> 김태용 감독·방준석 음악감독 국악, 영화를 만나다
국악과 영화가 만났다. 10월 4일부터 22일까지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리는 국립국악원 국악 공연 <꼭두>는 김태용 감독과 방준석 음악감독이 참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화제가 됐다. 오래전부터 국악과 인연이 깊은 두 사람이 꼭두를 어떤 식으로 해석해 무대에 올릴지 무척 궁금했다. 꼭두란 죽은 사람이 저승으로 떠나는 마지막 길을 인도하고 위로하는 존재를 말한다. 무대와 영화가 공존하는 이번 공연을 미리 엿보기 위해 지난 9월 19일 진행된 리허설 현장을 찾았다. 리허설을 보니 <꼭두>는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은 국악 공연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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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리허설에는 (김)수안이와 (조)희봉 선배가 촬영 일정 때문에 참여할 수 없게 됐다. 배우들은 내일 리허설에 참석할 예정이다.” 10월 4일 개막을 코앞에 두고 연일 리허설이다. 국립국악원 예악당에 도착하자 김태용 감독이 변경된 정보부터 공유해준다. 넓은 무대 위로 스크린이 스르륵 내려오더니 영상이 스크린에 맺힌다. 김태용 감독이 전남 진도군에 내려가 찍은 영화로, 이번 공연의 한 축이다. 그런데 스크린을 보니 웬걸, 스크린 뒤의 무대가 비친다. 영화 속 수안과 무대 위의 배우들이 겹치는 풍경이 아이러니하다. 김태용 감독은 “스크린 테스트를 하고 있다. 무대 조명이 켜진 상태에서 영상이 스크린에 잘 맺히는지를 중점적으로 체크한다. 출연진은 연습실에서 따로 연습하고 있다”고 알려준다. 시선을 무대 앞쪽으로 옮기자 방준석 음악감독이 국립국악원 단원들과 전통악기를 두고 논의하고 있다. 방준석 음악감독은 “국립국악원 스태프들과 함께 음악을 짜고 있다”며 “처음에는 기존의 방식대로 영화를 만들거나 테마를 정한 뒤 연주를 의뢰할까 생각했는데 이분들과 함께 지내며 몸으로 겪어보니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접근해서 되는 성격의 작품도 아니고. 지금은 페이스가 서서히 올라오면서 음악이 구체화되고 있는 상태다”라고 설명했다.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1, 2 영화 촬영 모습.
3 <꼭두> 출연자들.
4 공연 리허설 중 의견을 나누고 있는 김태용 감독과 방준석 음악감독.

상여라는 판타지 속 꼭두들의 쇼

<꼭두>는 국립국악원이 김태용 감독에게 연출을 제안하면서 성사된 프로젝트다. “국립국악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처음에는 영화를 준비하고 있고, 국악을 잘 몰라서 고사했다. 적임자를 찾지 못했는지 한두 달 지난 뒤 다시 연락이 와 추석 공연 개막이 10월 4일로 잡혔으니 맡아달라더라. 공연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국악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다가 꼭두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예전에 준비했던 <신과 함께>가 꼭두를 다루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이야기를 쓰면서 꼭두가 자연스럽게 내 안에 자리 잡은 것 같다.” 김태용 감독이 연출을 수락하면서 방준석 음악 감독을 <꼭두>로 끌어들였다. “감독님이 같이하자고 해서…(웃음) 제주도 본태박물관에서 처음 꼭두를 접했는데 재미있는 주제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죽어 저승으로 가는 길에 꼭두의 안내와 위로를 받는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국악도 매력적인 음악이고. 무엇보다 김 감독님이 뭘 만들건 인간 중심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꼭두가 잘 어울리는 소재라 생각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국악과 관련된 작업을 해왔다. 김태용 감독은 지난해 무주산골영화제에서 신상옥 감독의 영화 <성춘향>(1961) 을 판소리 공연과 접목한 바 있고, 올해는 강태웅 감독의 한국 최초 스톱모션 인형 애니메이션 <흥부와 놀부>(1967)를 바탕으로 레게와 판소리를 엮어낸 음악극 <레게 이나 필름, 흥부>를 연출한 바 있다.
방준석 음악감독이 이 얘기를 듣다가 “김태용 감독님이 뮤지션인 걸 모르셨네(웃음)”라고 농을 던진다. “하하. <레게 이나 필름, 흥부>는 <흥부와 놀부>를 레게 밴드로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 작업이다. 이번 공연처럼 국악을 본격적으로 시도하는 건 처음이다. 국악에 대한 관심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단편 <그녀의 연기>(2013)를 찍을 때 공효진 씨가 <춘향가>의 한 대목을 짧게 부르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그때 이상한 기운을 느꼈는데, <꼭두>를 통해 그 기운의 정체가 무엇인지 찾고 싶다”며 김태용 감독이 설명을 덧붙였다. 방준석 음악감독 또한 어어부 프로젝트, 방백을 거치며 국악의 일부분을 자신의 음악에 접목시킨 적 있고, <사도>(2015) OST를 작업하며 국악을 시도한 바 있다. 하지만 국악 자체를 다루는 건 이번 공연이 처음이라고 한다. “<꼭두>의 음악은 <사도>와 접근 자체가 달랐다. <사도>는 테마를 가지고 음악을 만드는 거니까. 국립국악원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는데 와보니 모두 인간문화재시고, 고수도 이런 고수가 없다. 이 안에서 발견하는 게 굉장히 많다.”
두 사람이 도전하는 꼭두는 재미있는 존재다. 꼭두는 우리나라의 전통 장례식 때 상여를 장식하는 나무 조각상이다. 상여는 망자를 운구하는 도구로, 죽은 사람이 저승으로 떠나기 전에 잠시 머무는 공간이다. 꼭두의 어원은 불분명하다. 꼭두새벽처럼 가장 이른 시간이나 사물의 가장 윗부분을 뜻하기도 하고,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순수 우리말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서양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꼭두의 종류는 사람꼭두와 원숭이, 사자, 용, 봉황 등 다양한 동물꼭두가 있다. 꼭두의 역할도 재미있다. 사람이 죽으면 꼭두 넷이 한 조를 이뤄 각자의 역할을 다해 망자를 위로해주고 저승까지 안내한다. 길잡이꼭두는 세상의 모든 길을 탐색해 망자에게 가장 행복한 길을 제공한다. 이들이 길을 가다가 불온한 기운을 만나면 무사꼭두가 나타나 망자를 호위한다. 망자가 저승으로 가지 않겠다고 하면 광대꼭두가 힘들고 슬픈 망자를 춤과 노래로 위로하고 즐겁게 해준다. 시중꼭두는 망자를 위해 요리하고 청소하며 필요한 일을 처리해준다. 김태용 감독은 “상여라는 판타지 공간에서 꼭두가 망자들을 안내해 다른 세계로 보내준다는 게 일종의 공연이고 쇼이지 않나”라며 “꼭두의 역할 분담도 매력적인 까닭에 꼭두 얘기를 해보면 어떨까 하고 연출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이승과 저승의 공존

영화가 활동 무대인 두 사람이 국악 공연을 맡았다고 했을 때 무대와 영화, 영화와 무대가 어떻게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할지 궁금했다. 사실 <꼭두>의 이야기는 전혀 복잡하지 않다. 수민과 동민 두 남매가 할머니의 꽃신을 찾기 위해 시장을 헤매다가 환상의 세계로 빠지게 된다. 그 낯선 세계는 꼭두들이 저승에 가는 망자들을 인도하고 위로하는 세계다. <부산행>(2016), <군함도>(2017)에 출연한 배우 김수안이 수민을, 최고와 최정후가 동민을 번갈아 연기한다.
<청춘의 십자로>에서 변사를 맡았던 조희봉이 시중꼭두를, 연극배우 심재현이 길잡이꼭두를 연기한다. 국립국악원 무용단 소속인 이하경과 박상주가 광대꼭두와 무사꼭두를 각각 맡는다.
김태용 감독은 큰 틀은 정해놓았지만 지금도 계속 대본을 쓰고 있다. 그는 꼭두의 어떤 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 것일까. 그가 들려준 대답은 흥미로웠다. “이승과 저승이 공존한다, 스크린은 이승이고 무대는 저승이다, 무대가 현실적인 공간이라면 스크린은 환영이다, 상여가 사람이 죽은 공간인 동시에 아직 살아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다소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상여를 재연한다고 했을 때 극장 전체를 상여라고 보면 어떨까 싶었다.” 극장(상여) 안에서 스크린이라는 창을 통해 이승을 보고, 무대를 통해 저승을 보는 발상이 재미있다. “무대가 저승이니 관객이 오면 무대 위의 꼭두가 “아이고, 오시느라 힘드셨죠?”라고 안내한다. ‘현실에서 힘들게 살았고, 여기서는 우리(꼭두)가 잘 모실 테니 같이 여행을 떠나시죠’ 하는 것 같은 느낌을 관객에게 주고 싶다.” 그는 꼭두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흥미롭다고 한다. “하나는 살면서 받는 호강을 죽어서도 받을 수 있다는 거다.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는 저승에 다다른 뒤에 알 수 있지만 무죄추정의 원칙이라고, 저승으로 가는 마지막 길만큼은 망자를 위해 길을 안내하고, 밥도 해주며, 싸워주는 존재가 꼭두다. 또 한 가지는, 꼭두에게는 초월적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게 과거이기도, 현실이기도, 미래이기도 한데 분명한 건 (꼭두의 세계에서) 시간의 경계는 무의미하고 모든 게 하나가 된다는 거다. 방준석 음악감독님이 이 부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곁에 있던 방준석 음악감독이 말을 이었다. “재미로 시작했다가 너무 고민이 많아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난다. (웃음) 죽음을 슬프고 무겁고 부정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꼭두>에서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그런 게 아니다. 내가 가는 길에 누군가가 항상 함께한다는 점에서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굉장히 깊다. 음악도 그러한 개념에서 접근했다. 단어를 쓰기가 좀 조심스러운데 ‘사이키델릭’(psychedelic)이라는 말이 그리스어로 정신이라는 뜻의 ‘사이키’(psyche)에서 나온 말이지 않나. <꼭두>가 사이키에 대한 얘기고, 국악은 사이키가 나눌 수 있는 지점이 매우 많은 음악 장르라고 생각한다. 공연에 이 같은 메시지가 녹아 있다.”
김태용 감독이 연출했던,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무성영화 변사 공연 <청춘의 십자로>는 국악과 영화가 한 무대에서 충분히 공존 가능하다는 사실에 확신을 준 작품이다. 1934년에 만들어진 영화를 김태용 감독이 편집한 판본으로 다시 상영했고, 배우 조희봉이 변사를 맡아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하며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게 만들었다. “스크린이 가지고 있는 판타지가 있지 않나. 영화 매체의 2D 세계가 진짜라고 믿게 하는 데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고, 동일시하는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필요하다. 그런데 누군가가 무대에 올라오면 그 판타지가 무너질 수 있다. 스크린과 무대를 동시에 보면 관객이 이야기나 정서를 제대로 따라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막상 <청춘의 십자로> 변사 공연을 해보니 재미있더라. 변사가 스크린 속 세계에 개입해 이야기를 마음대로 조절하면서 관객이 이야기를 믿도록 하는 게 흥미로웠다. 때로는 소격효과를 주기도 하면서 말이다. 이 공연도 그렇게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될 것 같기도 하고,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웃음)” 아직은 리허설을 하고 있는 까닭에 김태용 감독은 조심스러운 반응이었지만, 그의 정확한 설명을 들으니 더욱 믿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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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이 되는 국악

두 사람과 국립국악원의 협업 또한 <꼭두>의 주요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김태용 감독, 방준석 음악감독은 국립국악원과의 작업이 꽤 만족스러운 눈치다. 특히 방준석 음악감독은 <꼭두>를 준비하고 있는 시간이 “황홀하다”고 한다. “국립국악원의 모든 콘텐츠를 다 듣고 녹음했다. 그러면서 발견한 게 우리가 어릴 때부터 익혀온 선율이 있다는 사실이다. <강강술래>를 처음 들었는데, 어릴 때 들었던 자장가와 비슷했다. 몇 개 되지 않는 음으로 구성된 자장가인데 여기도 저기도 다 있으니 우리 삶에 녹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유전자에 맞는 선율이나 소리가 있다. 그렇게 접근하다 보니 엑기스로 나오는 음악들이 있다.” 이 얘기를 들은 김태용 감독이 “국악원 분들도 이런 식으로 작업을 안 해봤다며 방준석 음악감독이 작업한 음악이 좋다고 하셨다”고 전했다. 아마도 그 음악들이 <꼭두>의 소리를 담당하게 될 것이다.
방준석 음악감독은 관객에게 “공연을 편하게 즐겨달라”고 당부했다. “감독님, 악장님과도 얘기하고 있는데, 음악감독으로서 가장 주의하고 있는 지점은 음악이 들리면 안 된다는 거다. 국악이 하나의 체험으로 관객에게 다가가야 한다. 이 공연을 보고 ‘국악이 어쩌고저쩌고’ 같은 반응이 나오면 우리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국악원은 국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이 공연을 기획했지만 그 의도에 부합하기 위해서라도 음악만 따로 들리면 안 된다.”
오랜만에 무대 연출을 하는 김태용 감독도 <꼭두>가 꽤 즐거운 작업인가 보다. “대학생 때 연극을 했지만 이렇게 큰 무대는 처음이라 너무 재미있다. 제작이 될지 안 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태에서 온 힘을 다해 시나리오를 쓰는 영화와 달리 공연은 무조건 올라가니까. ‘공연 날짜를 포함해 모든 게 정해져 있고 국악만 가지고 영화를 만드세요’ 그러면 ‘예, 알겠습니다’ 하며 자유롭게 작업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순응적인 사람이고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뚫고 나가는 성향이 아닌 까닭에 그걸 깨기 위해 그간 많이 노력했는데 지금은 내 성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영화는 감독으로서 작업하는 환경이 자유롭지 않다. 많은 시도를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10월 4일에 공연이 반드시 올라가야 한다는 긴장감이 좋다. 또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에너지가 엄청나다. 방준석 음악감독님을 포함해 많은 예술가들로부터 받는 힘이 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꼭두>가 어떤 공연일지 더욱 궁금해졌다. “올해 잘해야 내년에도 할 수 있고, 올해 못해도 내년, 내후년, 계속하고 싶다. (일동 폭소)” 두 아저씨의 넉살이라면 <꼭두>를 믿고 봐도 좋을 듯하다.

글 김성훈_ 씨네21 기자
사진 최성열
사진 제공 국립국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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