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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0월호

역사와 환경을 탐험해가는 시각예술가 한성필 탐험을 확장할수록 작품은 깊어진다
그는 최근 몇 년간 수많은 프로젝트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대륙 간 이동도 빈번했다. 북극과 남극, 인도네시아를 거쳐 쿠바와 이탈리아까지. 인터뷰를 마치고 며칠 후에는 프랑스에서 50일간의 레지던시 참여도 예정돼 있다. 작가로서의 활동을 꽃에 비유한다면 올해는 만개(滿開)가 아닌가. 그는 파사드(facade, 건물의 정면, 건축 요소들과 벽면 위의 그 조직을 기술하는 데 사용되는 용어) 프로젝트로 잘 알려진 시각예술가 한성필이다.

한성필 작가

한 작가는 지난 1월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남극권과 북극권의 모습이 담긴 경이로운 사진과 영상 전시 <지극의 상속(Polar Heir) 展>을 열었다. 그동안 주로 찍었던 파사드와 달리 2013년부터 2년에 걸친 북극과 남극에 관한 이야기를 최초로 공개해 주목받았다. 이 프로젝트 제목인 ‘지극’에 관해 그는 “양쪽 팔을 수평으로 벌려 좌우 손가락 끝에서 끝까지 가장 긴 직선거리를 뜻하는 지극(至極)과창을 지니고 있음을 뜻하는 지극(持戟)을 의미한다”고 설 명했다. 사람들 대부분이 북극과 남극을 눈과 얼음만 있는 곳으로 오해하고 있지만, 사실은 포경과 탄광산업이 이루어진 곳이다. 한 작가는 경제, 산업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벌어지는 광산 개발, 극점 정복의 환경파괴 책임을 우리가 짊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극과 남극을 다녀온 사람들은 ‘나는 그곳을 정복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북극과 남극은 정복된 장소가 아니다. 늘 그곳에 있었고 단지 그들이 거쳐갔을 뿐이다. 자연을 정복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대자연이다.”
체 게바라(Che Guevara)의 나라 쿠바. 지난 7월 미국과 수교 정상화로 인해 향후 한국과도 긴밀한 문화교류가 기대되는 국가다. 이를 기념해 지난 5월에 한 작가는 세계 주요 비엔날레 중 하나이자 쿠바의 대표 미술 축제인 아바나 비엔날레(Havana Biennale)에 초대돼 의미 있는 작품을 선보였다. 쿠바 아바나의 카피톨리오(옛 국회의사당) 건너편에 한국의 대표 문화유산 ‘감은사지 3층 석탑’ 이미지가 설치된 것. 이 작품 사진은 쿠바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Granma)> 1면에 게재되기도 했다. 한 작가는 “작품 속 감은사지 석탑이 삼국통일 이후 통일과 안정이라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에 주목했다”며, “북한과 긴밀한 쿠바에서 우리의 통일 염원을 알리고, 한국과 쿠바의 수교에 이바지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파사드를 다루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이렇게 파사드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현대미술에서 사진과 미술의 경계가 무엇인지 고민했다. 영국의 세인트 폴 대성당(Saint Paul’s Cathedral)을 지나가면서 보수공사에 사용된 가림막을 보게 됐다. 가림막이 평범한 흰 천이 아니라 17세기 중반의 설계도 이미지를 이용해 만들어짐으로써, 이미지가 실제 건물을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것은 나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실제와 이미지의 경계. 그 경계를 다시 사진으로 작업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작가로서 사진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처음에는 과연 회화나 사진의 영역이 무엇이냐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회화에 비해 사진이라는 것은 ‘어떤 사건이 실제로 행해졌음을 증거로 나타낸 것’이다. 사진은 작가가 공간을 해석해나가는 과정이다. 반대로 내가 최근 관심 있게 진행하는 설치 작업들은 작가가 공간에 직접 개입함으로써 만들어가는 인터페이스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초기에는 주로 유럽에서 작업했는데, 최근에는 한국적인 것을 자주 선보이고 있다.
어떤 작품들이 있나?

2009년 7월, 설치 작업으로 서울 계동 공간 사옥에 가림막을 설치했다. 많은 사람은 공간 사옥에서 ‘공간’이라는 단어에 대해 실제 사전적 의미(앞, 뒤, 좌, 우, 위, 아래로 끝없는 범위 또는 빈 곳이나 빈자리) 내지는 공간 사옥을 뒤덮은 담쟁이나 빨간 벽돌로만 기억한다. 그러나 한국 현대 건축을 상징하는 공간 사옥의 의의는 외부보다는 내부가 더 중요하다. 이 때문에 ‘내부를 밖으로 끌어내는 작업을 하면 어떨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 건축물은 실제 만들어진 것이고 도면이 필요하다. 그래서 상상력이 들어간 도면을 가지고 스캔을 받아 건축물을 올려놓은 것이 나의 작업이다. 이 작품을 멀리서 보면 실제처럼 보인다. 마치 공간사옥의 외벽을 허물어 내부가 보이는 것 같은 착시 때문에 얼마 동안은 문화유산을 왜 허물었냐고 항의도 많이 받았다.(웃음)

올해 5월 쿠바에서 진행한 프로젝트가 화제다. 실제로 쿠바에서 이 프로젝트를 선보였을 때
한국적 정서를 알려준다는 것이 의미 있었다. 현지 반응은 어땠나?

한성필 작가 관련이미지한성필 작가는파사드를 이용한 인상적인 작품을 선보여왔다. 숭례문 복원 공사가 한창일 때 공사장 가림막에 복원 전 숭례문의 모습을 투사한 < No More Plastic Surgery>(2012, 위 사진)도 그중 하나며, 지난 5월 쿠바아바나에서는 ‘감은사지3층 석탑’ 이미지를 설치해 호평받았다.

쿠바의 아바나 비엔날레에서 제안이 왔을 때 어떤 것을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뭔가 그쪽의 역사와 한국의 역사가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현재 쿠바는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유지하는 가난한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공산주의 혁명 전 쿠바는 사탕수수로 라틴아메리카에서 최고의 경제적 부와 번영을 누렸다. 일제강점기 멕시코 이주 한인인 에네켄(Henequen)이 더 나은 삶을 위해 쿠바의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장으로 옮겨갔지만 가격이 폭락해 다시금 어려운 삶을 살았던 슬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쿠바 혁명으로 공산주의 체제가 확립되고 현재는 우리와 정치적 이념도 다르지만 6·25전쟁 당시 남미에서 남한에 경제적 원조를 가장 많이 한 나라도 쿠바였다. 쿠바에서 흔히 보는 건물 양식 또한 과거 역사를 보여주는 스페인식이 주를 이룬다. 건물과 자동차들이 지금은 오래돼 빛이 바랬지만 반대로 쇠락해가는 아름다움이라는 역설도 보여준다.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과 쿠바가 아직 수교되지 않았지만 현재 쿠바에서는 K팝이나 한국 드라마가 대단히 인기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꿈꾸는 K팝이나 드라마는 하나의 표상만을 보여줄 뿐이다. 따라서 기본적인 정서와 상징을 담을 수 있는 것을 고민하고 쿠바와 한국 간에 앞으로 가장 필요한 것이 평화와 안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신라가 삼국통일 이후 체제의 안정과 왜구의 침략에 대한 평화의 상징으로 건립한 것이 바로 ‘감은사지 석탑’이다. 쿠바 아바나에 33m×28m의 감은사지 석탑의 이미지가 들어섰을 때 그 나라 사람들도 동양의 이국적인 낯섦 안에 공존하는 아름다움과 의미에 대해서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내가 의도한 바를 그들이 느끼고 이해해줘서 예술에 대한 또 다른 의미를 생각하게 됐다.

작업이 국내로만 국한되지 않고 글로벌하다. 젊은 작가들은 해외 작업에 대한 로망이 있다.
정보를 얻기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작가가 해외에서 작업하려면 경제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10여 년 전에 유학을 끝내고 한국에 들어올지 말지를 고민했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해외 레지던시에 관해 조사하던 차에 유네스코에서 기금을 마련해 전 세계 작가 중 소수를 선정하는 유네스코 아시버그(UNESCO-Aschberg)를 알게 됐다. 높은 경쟁률이었지만 운 좋게 선정되어 인도네시아에 가게 됐다. 이를 계기로 해외에 눈을 돌려 다양한 정보를 얻는 기회를 가졌다. 작가에게는 재정적인 해결 방안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처한 익숙한 문화를 벗어나 다른 문화와 부딪쳐 상생하며 극복하는 과정이 더 나은 작업을 창조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본다.

한성필 작가 관련이미지한성필 작가의 작품 (Chromogenic Print, 186×310cm, 2014).

올 1월, 아라리오 서울에서 열린 극지에 관한 전시도 인상적이었다.
북극과 남극을 간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떻게 가게 됐나?

남극과 북극 여행에 대한 열망으로 10여 년 전부터 조사했다. 하지만 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한국에는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에 해외 리서치를 통해 뉴욕 파운데이션에 제안서를 제출해 극지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갖고 있는 극지에 대한 고정관념을 벗어나 과거부터 관심 있었던 포경과 탄광산업의 역사를 중심으로 제안서를 제출했다. 그쪽에서도 나의 제안서에 대해 상당히 관심을 가졌다. 물론 극지에 가는 것은 고단하고 힘든 여정이다. 하지만 작가는 탐험가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 단 일반 탐험가와 다른 점은 육체적인 탐험이 아니라 정신적인 탐험이라는 것이다. 극지 여행을 통해 몸은 힘들었지만 관념적인 부분에서는 한층 깊어졌다.

작가들은 보통 평생 가져가는 주제가 있는데, 당신 작품의 주제는 무엇인가?

작품이란 것은 결국 사람과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역사,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제시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것들이 소재인 동시에 주제다. 작가는 자기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을 계속 창작해나가는 사람이고 이론가는 작업을 통해 미적으로 또한 의미적으로 정리하는 사람이다. 작가들이 좋아하는 관심사는 계속 변하기 마련이다. 지금 작업하고 창작하는 것은 현재 가장 나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며 동시대를 살아나가는 것들의 역사, 환경 그리고 사람 사이에 관한 이야기와 관심사다. 문화+서울

작가 한성필
1972년 서울 태생.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런던 킹스턴 대학교에서 큐레이팅 컨템포러리 디자인 석 사 졸업. 국립현대미술관, 국회도서관, 서울시립미술관, 휴스턴 현대미술관, 미국 뉴멕시코미술관, 상하이 현대미술관, 도쿄 사진미술관, 아르헨티나 국립미술관,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하바나 비엔날 레, 주한미국대사관, 주한프랑스대사관 등 주요 미술관, 비엔날레와 기관 등에서 전시 참여 및 작품 소장. 그의 대표 파사드 설치 프로젝트는 서울 계동 공간(空間) 사옥, 수원 남한산성, 쿠바 아바나 등 유수 문화재에서 시행됐으며, 한 작가의 작품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미술 교과서에 수록됐다.
인터뷰 김영호
서울문화재단 경영기획본부장
정리 이규승
서울문화재단 홍보팀장
사진 김창제
작품 사진 제공 한성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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