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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정
늦게 발견한 꿈을 위해 용기를 내고 싶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미술만 공부해 미대를 나와 미술 분야로 취직까지 했습니다만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요즘 제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서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돈이 중요한 것일까, 꿈이 중요한 것일까. 사실 돈을 모으지 못해 다시 학업을 준비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제 생계를 책임지면서 원하는 분야를 공부하고 싶거든요. 제게 요즘 그 분야는 뮤지컬입니다. 그런데 이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제가 꿈꾸던 것과 전혀 다르기도 하고, 생계 문제에서는 많이 힘들어 보입니다. ‘취미로 해라’ ‘그냥 즐겁게 보기만 해라’ 이런 말을 듣는 저는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친구들은 대리 달고 진급하는 와중에 저만 잘못된 길을 가는 걸까요? 꿈을 똑바로 응시하며 용기를 내고 싶습니다.
꿈을 찾는 게 꿈인 베짱이의 삶
꿈을 향해 정진하고자 하는 박현정 님 안녕하세요, 저는 음악극 연출가 박정봉입니다.
박현정 님의 고민을 읽고 어떤 답변을 해야 할까 고민한 끝에 하고 싶은 일만 하며 배짱 좋은 베짱이처럼 사는 저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을 공부했습니다. 타고난 예술적 재능은 없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 수만 있다면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배우의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연극에 미쳐 살다가 운 좋게 대학에 진학했고, 대학에서 음악극을 전공하며 여러 장르를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삶은 기대만큼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저와 함께 공부하던 동기들은 국·공립 예술단체에 취직하기도 했고, 오디션을 통해 뮤지컬 배우로, 가수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 모습에 저는 연극에 대한 용기도 설렘도 점차 잃어만 갔습니다. 그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행복하다고 믿고 살아왔던 내 삶이 경쟁만을 추구했음을, 그리고 그 경쟁에서 승자가 된 것을 자랑스러워하기만 하며 살았음을 말입니다. 결국 저는 제 자신을 세상에 맞추는 대신 세상을 제 자신에게 맞춰 예술이 목적인 삶을 살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판소리 공연을 접했습니다. 유명한 서양 작가의 작품만 탐독하던 저에게 판소리는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경이롭게 다가왔습니다. 이후 저는 독창적인 한국형 뮤지컬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판소리에 몰두하며 소리꾼의 삶을 좇았습니다. 하지만 군대를 갓 제대한 학생 신분인 저에게는 돈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돈을 벌기 위해 전국에서 매년 열리는 150여 개의 판소리 경연대회에 가리지 않고 참여했고, 그렇게 받은 상금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간신히 면할 수 있었습니다.
자연스러운 인간으로 아름답게 살기
그렇게 고독한 시간을 보내며 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저는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큰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와 같은 일을 하는 예술가들을 찾아 의견을 구하고, 여러 기관에서 주최하는 워크숍, 강연 등 여러 프로그램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분야의 종사자들과 소통했습니다.
박현정 님도 뮤지컬 분야에 종사하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면 관련 분야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배우가 되려면 노래, 연기, 작품 해석 등 다방면으로 뛰어난 역량이 필요하기 때문에 뮤지컬이 아닌 다른 주제의 워크숍이라도 분명히 도움이 될 것입니다. 대학에서 이론과 실기를 통해 배우는 것보다 현장에서 경험을 통해 얻는 것이 더 큽니다. 직장인 뮤지컬 동호회나 극단에서 신인배우 단기 연수에 참여하는 것도 노래와 연기 실력을 늘리는 데 보탬이 될 수 있습니다. 실력이 향상되거든 오디션에 참가해 더 큰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노려보기 바랍니다.
미술 전공자의 감각과 역량을 살려 뮤지컬 무대미술이나 소품 제작에 전문성을 갖는 것도 좋은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제작 체계와 자본이 제대로 뒷받침된 대형 뮤지컬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뮤지컬에서는 노래와 연기는 물론 조명, 음향, 무대 제작 등 폭넓은 범위를 소화할 수 있는 만능 예술인을 요구합니다. 이때 본인이 가진 색다른 능력을 발휘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나중에 박현정 님이 배우에서 창작자로 성장하길 바란다면 이러한 예술창작지원사업에도 관심을 갖기 바랍니다. 사실 이 지원금을 받으려면 무수히 많은 단체와 경쟁해야 합니다. 저도 매번 지원하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다가 예술가와 기관의 입장 차이를 직접 경험해보고자 공공기관에서 5년동안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낮에는 기관의 직원으로, 밤에는 예술을 창작하는 예술가로 살며 고달픈 이중생활을 했지만, 결국 지금은 다시 제가 꿈꾸던 예술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안정된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느냐고요? 아닙니다. 저는 아직도 꿈을 찾는 게 꿈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박현정 님이 관련 분야 사람들로부터 들은 것처럼 언제 위기가 닥칠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선택이 옳았다고 믿으며 자연스러운 인간으로 아름답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ver tried. Ever failed. 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
이 문구는 제가 가장 존경하는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명언입니다. 실패도 계속하다보면 좀 더 나은 실패를 하겠지요. 박현정 님이 원래 하던 일을 포기하고 새로운 길에 들어선다면 분명 저와 같은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 일이 옳고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의 선택을 믿고 도전하기 바랍니다. 언젠가 무대에서 만날 수 있길 기원합니다.
- 답변 박정봉
- 음악극 연출가. 중앙대학교에서 음악극과 노래, 연기를 공부했다. 전통과 현대의 감성을 경계 없이 음악극으로 담아내는 예술가로, 대표작으로 음악극 <출세가> <사도세자 그리고 이선> <적벽> <판소리 畵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