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노숙자1이 신문과 소주를 들고 등장. 소주를 한잔하고 옥상에 편안하게 드러눕는다. 엎드려서 신문을 읽는다.

노숙자1

오늘도 이 신문 때문에 따뜻하게 자게 생겼네. 오늘은 무슨 소식이 있는지 한번 볼까? 뭐? 안녕들하십니까? 그래 안녕하다 안녕해! 으이구 할 일 없는 놈들.

아래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한다.

노숙자1

오늘따라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네. 야 저기 정신없이 뛰어가는 것 보니까 완전 샐러리맨이구만. 그렇게 열심히 뛰어봤자 넌 짤려. 조금 있으면 명퇴라고 명퇴.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고? 내가 그렇게 짤렸거든. 하하하 저건 뭐야 토익책 들고 가는 거 보니까 토익준비생이구만. 그렇게 열심히 해도 소용없어. 취직 안 된다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고? 내가 토익 900점이거든. 말을 많이 했더만 좀 쉬어야겠다.

노숙자2, 노숙자1을 타 넘고 옥상 등장. 옥상 아래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노숙자2

드디어 도착했다. 사람들이 참 많이 지나다니네 그렇지 바로 지금이야. (노숙자2 준비해 온 현수막을 꺼낸다. 혼자서 힘겹게 현수막을 달려고 한다. 노숙자1, 갑자기 출현한 노숙자2를 경계하다가 슬그머니 다가온다.)

노숙자1

어이

노숙자1

어이~ (답이 없자) 어이!

노숙자2

네?

노숙자1

지금 여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

노숙자2

아 이것 좀 달려고 왔습니다.

노숙자1

그것만 달고 가는 거죠?

노숙자2

네.

노숙자1

정말이죠?

노숙자2

그렇다니까요.

노숙자1

(웃으며) 그 정도 일이라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노숙자2

아이고 고맙습니다. 옥상에서 이런 좋은 인연을 만나다니.

노숙자1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자 빨리 붙입시다.

노숙자1은 노숙자2를 도와서 현수막을 붙인다. ‘종이신문 안 만드는 오마이뉴스 각성하라!’

노숙자1

보아하니 저랑 비슷한 노숙자이신 것 같은데 무슨 일로 이 옥상까지 올라오셨습니까?

노숙자2

말하자면 길지만 간단히 말해 시위를 하려고 왔습니다.

노숙자1

뭐라고요? 시위?

노숙자2

네 시위.

노숙자1

뭐 데모 이런 거 말입니까?

노숙자2

네 데모 맞습니다.

노숙자1

투쟁 이런 거?

노숙자2

투쟁!

노숙자1 황급히 현수막을 떼어낸다.

노숙자2

(현수막을 붙잡는다.) 저기요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노숙자1

너야말로 뭐 하는 거야? 사람들 몰려들어서 내가 여기서 쫓겨나는 꼴 보고 싶어?

노숙자2

아니 근데 갑자기 왜 반말이세요 이 새끼야!

노숙자1

여긴 내 자리야. 저기 내가 석 달 열흘 동안 소주랑 신문지 쌓아놓은 거 안보여? 알아들었으면 빨리 비켜.

노숙자2

그러니까 지금 니가 석 달 열흘 동안 너 혼자 잘 먹고 잘살았단 말이지? 다른 노숙자들은 추운 길거리에서 살고 있는데 아 진짜 사람 잘 못봤네 저리 비켜! (현수막을 뺏고 자리를 차지한다.)

노숙자1

뭐? 비켜? 니가 비켜라 니가 비켜.

신문지로 서로 싸운다. 노숙자2 의미심장하게 모자를 벗는다. 머리에 스테이플러가 찍혀있다.

노숙자2

잠깐~(싸움을 멈추며) 이게 뭔지 아냐?

노숙자1

그게 뭔데?

노숙자2

지금으로부터 석 달 전. 갈수록 줄어드는 공짜 신문 때문에 노숙자들끼리 신문쟁탈전이 벌어졌지. 우리는 신문을 사수하기 위해 호치키스까지 박아가며 신문을 우리 몸에 고정하고 있다. 이게 우리노숙자들의 현실이다. 나는 이 현실을 바꾸기 위해 여기 올라왔다. 자 이제 니 혼자만의 안락한 주거 공간을 버리고 우리 모두의 광장으로오이라~ (밀어낸다.)

노숙자1

시끄럽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알아? 난 회사에서 짤리고 가정에도 밀리고 심지어 노숙 생활에서까지 밀렸어. 난 캄캄한 암흑 속에서도 빛을 포기하지 않았지. 그리고 결국 이 옥상을 차지하고 있지. 대단하지 않나? 지금이라도 그만두고 차라리 니 살길이나 마련하지 그래. 저길 봐라. 저 수많은 옥상 중에서 니를 기다리고 있는 옥상이 있을 거야. 딴 놈들이 차지하기 전에 빨리 챙기라.

노숙자2

하 진짜 이기적이네. 너 같은 놈들을 우린 가진 자라고 부른다. 에이 가진 자야~

노숙자1

가진 자? 듣기에 나쁘지 않네. 어차피 난 가진 자가 될 테니까. 이 몽상가야.

노숙자2

뭐 몽상가? 그래 니 같은 가진 자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몽상으로 보이겠지. 하지만 두고 봐라 지금은 내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지만 오직 한 사람만 설득시킨다면 그 한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설득시키고 두 명이 네 명 되고 네 명이 여덟이 되고 8이 16이되고 16이 32가 되어서… 칠천만 국민이 내 말을 믿게 될 것이다. 자! 당신은 모든 것을 뺏길 것인가! 노숙자의 해방을 함께 할 것인가!

노숙자1

이런 순진한 몽상가들 너희 같은 운동권들은 하나같이 허황된 꿈을 꾸고 있다. 그래서 너희들은 안 되는 거야. 난 이 옥상을 발판으로 새로운 시작을 할 거야. 내가 지금은 비록 이 옥상에서 숨어 있는 신세지만 앞으로 가꾸고 청소하면 언젠가 인정 많은 빌딩 주인이 나에게 이 빌딩의 관리를 맡길 것이다. 그런데 때마침 빌딩 주인에게는 아들이 없어. 그리고 때마침 빌딩 주인이 죽을병에 걸리는 거야. 그리되면 난 자연스럽게 이 빌딩을 물려받게 되지. 그럼 난 이 빌딩을 발판으로 주변의 모든 빌딩을 사들이게 되고 결국 대한민국 최고의 빌딩왕이 될 것이다. 어떠냐, 나의 이 현실적인 꿈이. 너도 그런 꿈을 만들어라.(밀어낸다)

노숙자2

야 이 가진 자야. 니는 사회의 악이다. 저 더러운 도시가 바로 니 무덤이 될 것이다. 떨어져라

노숙자1

이 고집스러운 몽상가. 너야말로 사회를 어지럽히는 존재들이야. 저 위대한 도시의 무서움을 맛보게 해주겠다.

자리를 차지할 때마다 노숙자1은 빌딩왕! 노숙자2는 ‘노숙자 해방!’을 외치며 서로를 떨어뜨리려 한다. ‘즐거운 나의 집’ 노래를 부르며 잠시 후 지쳐서 쓰러진다. 두 사람 지쳐서 옥상에서 아래를 바라본다. 노숙자1 건물을 유심히 바라본다.

노숙자1

어 저기 저. 사람들 모여 있는 거 보니까 데모하는가 보네. 그래봤자 소용없어, 느그들은 전부 직위해제라고.

노숙자2

(웃다가 무표정으로 바뀌며)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

노숙자1

어 저기 저 여학생. 종이에다가 열심히 뭐 적고 있네. 그래 공부할 때가 좋을 때야. 열심히 해 파이팅!

노숙자2

파이팅!

노숙자1

점점 추워지네. 조금 있으면 겨울 오는데 옥상에 박스라도 좀 주워놔야겠다. 근데 박스를 어떻게 몰래 옮기지?

노숙자2

그러게 나는 종이라도 좀 많이 구해놔야겠어. 근데 종이를 어디서 구하지…

노숙자1

(아래를 바라보다) 저기 저 아까 그 대학생. 벽에다가 종이를 붙이는데? 야! 니 저거라도 챙기면 되겠다.

노숙자2

어? 근데 딴 놈들이 벌써 몰려드네…

노숙자1

종이를 막 찢으려고 하는 것 같은데?

노숙자2

야! 안 돼 내 이불!

노숙자 2 부리나케 내려간다.

노숙자1

그래 어서 가 어서. 잘 가. (숨겨놨던 신문지를 꺼낸다.) 나는 이 신문지 덮고 따뜻하게 자면 되니까 하하하. 어? 종이 때문에 막 싸움이 일어나네. 저 저 몽상가 니는 왜 싸우고 난리야. 내가 신문지 한장 줄게. 으이구 종이 한 장 때문에 싸우고 할 일 없네, 할 일 없어. 나는 신문지 덮고 쉬어야겠다.

건물주 등장.

건물주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노숙자 놀라서 어쩔줄 모르자) 아 편하게 있으세요, 편하게. 제가 이 건물 주인입니다.

노숙자1

아 예 안녕하십니까.

건물주

이곳에 참 오랜만에 올라오는데 아주 보기가 좋군요. 소주병과 신문지들(노숙자1 갑자기 청소를 하기 시작한다.) 아 괜찮습니다 선생님. 그냥 놔두세요. 어차피 조금 있으면 정리할 테니까.

노숙자

아… 예….

건물주

여기 경치 좋죠?

노숙자1

예 아주 좋습니다.

건물주

그래서 저는 이 옥상을 공원으로 만들어서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좋은 경치도 보고 차도 한잔 하면서 삶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그런 안락한 옥상! 이것이 저의 꿈이죠. 그래서 말인데 선생님께 죄송하지만 이 옥상에서 내려가 주셔야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어이 시작해.

공사하는 효과음

노숙자1

예… 안녕히… 안녕은 무슨 안녕 못하다 안녕 못해! 왜 하필 겨울에 공사야! 나는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노숙 생활에서도 심지어 이 옥상에서도 쫓겨나야 돼? 내 자리는 어디 있는 거야.

공사소리 점점 커지며 암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