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처럼 학력 인플레가 심하고 사교육이 넘치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어떤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그것을 배우기 위한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는 것이 점점 당연시되고 있다. 일터를 잡기 위한 면접을 대비한 학원, 입시를 치르기 위해 다닐 유명한 학원에 들어가려고 다니는 학원, 회사 내 사원들을 위한 교육, 자격증을 위한 학원 등 마치 스스로 배울 수 있는 능력 자체가 없다는 전제를 깐 듯 여러 가지 교육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는 작곡가에게도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클래식음악을 전공하기 위해서는 예전부터 좋은 학교의 훌륭한 스승에게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는 것이 필수적인 조건이 되어왔고 이제는 그렇지 않은 영역이었던 가요나 실용음악도 많은 대학에 전공으로 개설되어 있다. 이런 현실에서 오로지 독학으로 세계적인 작곡가가 되는 것이 가능할까? 20세기 이후 작곡가 중 정식 음악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으면서도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며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사람들이 있다. 그중 세 명을 소개하고자 한다.
은행원에서 작곡가로, 아놀드 쇤베르크
현대음악의 대표적인 어법인 무조음악을 가능하게 한 작곡가 중에 아놀드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를 빼놓을 수 없다. 12음 기법을 개발한 것 하나만으로도 쇤베르크는 역사에 남을 작곡가이지만, 교육자로서도 후세에 남아 베르크, 베베른과 함께 ‘신 빈 악파’(오스트리아 빈을 중심으로 활동한 작곡가 3인방)로 음악사에 기억되고 있다. (‘빈 악파’ 또는 ‘빈 고전파’는 하이든, 모짜르트, 베토벤이다)
오스트리아 빈의 음악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8세에 스스로 바이올린을 켜면서 곡을 쓰기 시작했다. 잠시 은행원으로 근무하다가 오케스트라 지휘자 젬린스키와 개인적인 친분을 맺게 되고 그의 도움으로 피아노 소품들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건축가를 꿈꾸던 이아니스 크세나키스
이아니스 크세나키스(Iannis Xenakis)는 그리스 출신의 현대음악 작곡가로 건축의 원리를 음악에 적용하며 혁신적인 소리를 구축했다. 학창 시절 건축가가 꿈이었고 수학과 천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크세나키스는 어릴 때 어머니에게서 받은 레코드 기계를 틀면서 음악에 관심을 가졌다고 스스로 밝힌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그리스를 위해 싸우다 한쪽 눈을 다친 후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던 음악에 본격적으로 매진하게 되었으나, 그를 정식 제자로 받아들이려는 스승이 아무도 없었다. 좌익 레지스탕스를 잡아들이던 당시 전후 그리스 사회에서 도망치고자 프랑스 파리에 체류하면서 당시의 유명한 작곡가들에게 작곡의 기초를 배우려고 시도한다. 처음에는 막스 오네거에게 자신의 작품을 보여줬으나, 화성학의 기본 원칙에서 금지된 진행이 너무 많은 데다 곡의 첫 세 마디 이후는 아무것도 음악적이지 않다며 타박을 받은 후 다시는 상종하지 않았고, 이후 나디아불랑제를 찾아갔으나 기초가 부족해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대답만 듣게 된다. 결국 올리비에 메시앙에게 찾아갔는데, 이제까지의 작품을 본 그는 크세나키스에게 기초를 따로 다질 필요가 없으니, 음악을 듣고 곡을 쓰는 것에 매진하라고 충고한다. 그의 음악은 세월이 지난 지금 우리의 귀에도 매우 독특한 에너지를 풍기며 혁신적인 소리로 들려온다.
“내 스승은 라디오” 도루 다케미쓰
서양 현대음악가들 사이에 비서구권 출신으로 유명한 첫 일본인 작곡가 중 하나인 도루 다케미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인 1944년에 소년병으로 복역한 영향으로 고국 일본의 전통음악을 몹시 증오하게 된다. 전쟁이 끝난 직후 미군 부대에서 일하면서 서양음악을 접하게 되었는데, 이때 자신의 삶의 유일한낙이자 목적을 음악에 두기 시작하며 16세의 어린 나이에 진지하게 곡을 쓰기 시작한다. 다케미쓰 본인이 “라디오가 나의 스승이었다”라고 밝힐 정도로 음악에 관련된 교육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고, 전통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음에도 수십 년이 지난후에는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일본 음악을 받아들이며 그토록 추구하던 서양 모더니즘에 융합시키기 시작한다. 한국의 윤이상이 그러하듯, 다케미쓰 역시 동양의 전통음악을 서양음악에 도입한 작곡가로 후세에 기억되고 있다.
한국의 음악계, 실력보다는 학력?
우리나라에서 예술가로 원활하게 활동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이상의 학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 기준점이 갈수록 높아져서 악기 전공자들도 박사 과정을 마쳐야 하는 시대다. 이제는 쇤베르크의 독창적인 정신을 갖추거나, 크세나키스의 융합적인 사고로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예술가, 혹은 다케미쓰와 같이 고유의 전통음악이 몸에 배어 있는 작곡가가 세상의 주목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일까. 남들과 다른 그 무엇을 가진 자야말로 예술가로서 손색없는데, 이런 사람들은 정식 교육기관에 적을 두지 않아서 소위 말하는 학연이 없다보니 굉장히 불리한 위치에 서 있다. 당장 내가 아는 사람이 대학을 가지 않고 작품 활동을 하겠다고 하면 일단 최소한 학부 졸업은 해서 선후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서라고 충고할 것이다. 예술도 중요하지만 먹고사는것이 우선이다 보니 이런 아이러니한 견해를 갖게 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재능과 열정만을 가지고 요즘 같은 세상을 헤쳐나가는 방법을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 글 신지수
- 음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유학을 마친 후 현재 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현대음악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음악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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