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 감독의 <좋은 사람> 가면의 민낯
사실 우리는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표정 변화를 멈추고, 진심을 가려야 하는 때를 매일 매 순간 만나기 때문이다. 가면 뒤에 가려진 진심을 찬찬히 들여다볼 시간이 없기 때문에 정작 가면을 벗으면 보이는 얼굴은 어쩌면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이상한 일이다. 선입견을 깨고 싶어서 가면을 쓰고 TV 프로그램에 나와 노래를 불렀다는 한 가수의 기묘한 이야기가 묘하지 않다. 민낯이 아니라 가면이 본심에 가깝다는 아이러니, 그러니 진짜 얼굴이, 그 표정이 말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자신도 모를 일이다.
너는 나와 다르냐는 질문
친절한 말투와 선량한 표정의 고등학교 교사 경석(김태훈)의 반에서 지갑 도난 사건이 발생한다. 담당 반 학생 세익(이효제)이 범인이라 의심하는 경석은 그를 불러 어떤 말을 해도 믿을 테니 진실을 이야기하라고 한다. 세익은 자기는 아니라고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날 밤 학교에 데려왔던 경석의 딸 윤희(박채은)가 교통사고를 당하는데, 이게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는 정황으로 미루어 경석은 세익을 다시 의심한다.
희한한 일이다. 스스로는 온전히 자신 마음의 주인인 것 같지만, 마음은 시시각각 바뀌는 표정처럼 순식간에 주인을 바꾼다. 스스로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위해 정의로운 체하지만, 가면을 벗겨낸 민낯은 늘 가장 비열한 표정을 끝내 감춘다. 하지만 양심이라는 강직한 마음의 표정과 죄의식은 마음을 등지더라도 쉽게 감춰지지 않는다.
‘선의’라는 명사에 따르는 동사는 ‘주다’가 아니라 ‘베풀다’이다. ‘베풀다’가 내포하는 것이 희생·포기·관용이라는 점에서 타인에게 선의를 요구하거나 바라는 일이 쉽지 않다. 정욱 감독의 장편 데뷔작 <좋은 사람>은 선의를 가장한 표정과 삶이 지긋지긋한 진짜 표정 사이의 간극에 대해, 좋은 사람의 표정과 사실은 나쁜 사람에 가까운 가면 뒤 민낯, 어떤 것이 진짜 ‘나’인지에 대해 계속 되묻는다.
경석의 시점과 경석의 마음을 따라 진행되는 이야기라 사람 좋은 표정 뒤에 숨겨둔 어두운 눈빛과 칼바람을 맞은 민낯을 시시각각 바꿔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주인공의 연기가 영화의 절반 이상이다. 김태훈은 질문을 꾹꾹 눌러쓴 시험지 자체가 돼 계속해서 관객들에게 되묻는다. “너는 나랑 좀 다른 사람인 것 같냐. 보암직도 하고 믿음직도 하게.”
너는 나와 같을 거냐는 질문
진실에 관한 질문의 답은 꽤 장황하고 길게 풀어야 하는 복잡한 방정식 같다. 반면 <좋은 사람>이 진실을 대하는 방식은 날카롭고 짧다. 선의와 진심, 진실과 거짓 사이의 딜레마를 파고들어 분석하는 방식 대신,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한 사람이 말려든 사건에 동참해 답안을 숨겨둔, 혹은 답안이 없는 질문지를 계속해서 들이민다. 과연 늘 선의를 우선 드러내는 경석은 좋은 사람인가? 경석은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고 말하는 좋은 선생 같지만, 실제로 어떤 일에도 책임 지지 않는다. 도난 사건도 사비를 털어 무마하려하고, 파탄이 난 자신의 가정과 그 사이에서 괴로운 아내와 딸의 마음은 언제나 외면한다. 그런 비겁함을 감추기 위해 술에 빠졌고, 헤어나지 못한다. 진짜 민낯인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무서워서 외면하는 듯하다.
묵직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품었지만, 세익을 둘러싼 의심과 사건의 미스터리를 팽팽하게 당겼다 푸는 연출 덕분에 끝을 향하는 시간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사실 모두가 선한 사람이기 힘들다. 언제나 좋은 사람이려면, 누군가는 계속 악역을 맡아줘야 한다.
그래서 <좋은 사람>의 마지막 질문은 “너를 위해 악역으로 만들었던 그 사람이 악인이 아닐 때 너는 어떻게 할 거냐”이다. 선명하게 찍힌 질문 아래 마음의 종이가 거칠다. 그래서 누구도 매끈하게 답을 써 내려가기 어려울 것이다.
<좋은 사람>(2021)
감독 정욱
출연 김태훈(경석 역), 이효제(세익 역), 김현정(지현 역), 김종구(형섭 역), 박채은(윤희 역)
글 최재훈 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