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손’ 희곡 공개 모집 ‘현장감상’ 동료 작가의 사심을 담아서
‘다른 손’ 희곡 공개 모집 포스터
희곡을 읽을 수 있는 전시장 내부
웹진 [연극in] ‘희곡’ 코너의 주제는 ‘다른 손; hands/ guests’이다. 이전 또는 자신과는 다른 손으로, 다른 누군가의, 다른 무언가의 희곡을 쓸 수는 없을까. ‘인간’과 ‘비인간’은 누구(무엇)인가의 질문으로부터 그동안 희곡 쓰기의 중심에 두지 않던 바깥의 이야기를 탐구한다. 2020년과 2021년, 같은 주제로 희곡 릴레이를 이어간다. ‘다른 손’ 희곡 공개 모집 ‘현장감상’은 지난 6월 16일부터 19일까지 총 3일간 서울연극센터에서 진행됐다. 나는 그중 첫째 날 첫 번째 회차에 참여했다. 서울연극센터 로비에 도착하자 간단한 기획 의도와 관람 방식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하반기 [연극in]에 게재될 희곡을 뽑기 위해 독자와 동료들을 초대했다. 각 작품을 읽고 간단한 감상평을 익명으로 남길 수 있다. 최다 네 작품에 사심을 담아 투표할 수 있다.” 빈틈없는 안내를 들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스스로 명확한 상을 그리지 못했다. ‘아, 이런 느낌이구나.’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시장 안은 밖과는 딴판으로 어둡고 고요했다. 드문드문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었고, 딱 그 범위를 밝힐 정도의 스탠드 불빛이 켜져 있었다. 책상 위에는 꼭 대학가 술집의 방명록 같은 메모장이 놓여 있었다. 자리에 앉아 한숨 돌리자, 어느새 작은 음악 소리도 들려왔다. 글에 집중할 수 있는 차분한 연주곡이었다.
현장감상 선정작을 읽다 보니 새삼 작품의 주제가 눈에 들어왔다. 희곡은 모두 같은 주제 ‘다른 손’을 고민한 글이었다. 같은 주제의 희곡을 하루 안에 살펴보는 경험이 내게는 거의 처음이었다. 소설집과 다르게 희곡집은 앤솔러지로 접할 기회도 없었다. 독자이자 동료의 입장에서 그 낯선 경험이 반가웠다. 우리가 함께 고민한다는 감각 때문이었다. ‘다른 손’이라 명명될 수 있는 타자의 이야기, 전에는 희곡의 주역이 될 수 없던 존재들의 대사, 혹은 타자성 자체에 대해 고민하는 작가의 시선까지. 특히 내가 아직 인식이 부족한 ‘동물권’에 관해 다양한 작품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 안에 담긴 동료 작가의 깊은 고민을 엿보며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나의 투표가 게재 작품의 선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과도하게 책임감을 느꼈다. 그래서 아예 벽을 바라보는 자리에 앉아 작품 읽기에 집중했다. 25편의 작품을 골고루 읽기에 주어진 시간이 좀 짧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되도록 모든 작품에 구체적 장점과 아쉬운 점이 하나씩 담긴 감상평을 남기고자 노력했다. 감상평을 남기는 용지에 지금 읽고 있는 희곡들이 ‘작가 분들의 소중한 작품’임을 상기시키는 문구가 적혀 있는 점도 좋았다. 다른 어떤 행사에서 참여자들의 솔직한 의견을 듣는다는 명목으로 아예 주제 선정자체나 희곡을 창작하는 시도 자체에 대한 비방을 들은 적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표정 없는 평들에 상처 입는 작가들이 생길 수 있으리라. 다시 한번 밝히지만, 내게는 참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두 훌륭한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부담스러운 것은 최다 네 개의 작품에 표를 행사하는 과정이었다. 스스로 공정성에 관해 끊임 없이 질문했던 것 같다. 가나다순으로 읽은 탓에 뒤쪽 작품에 상대적으로 덜 집중하지 않았을까? 결국 방역을 위한 10분 쉬는 시간 이후에 두 번째 회차에도 참여해 뒤쪽 작품을 다시 한번 읽었다. 특히 내게 더 와닿아 작은 표시를 해둔 작품 중 네 개를 골라 투표용지에 기재했다.
투표용지는 꼭 접어 투표함에 넣었다. 그 옆으로 누군가 한 번 사용한 희곡집이나 옷·장난감 등을 나눠 주는 공간이 있어서 좋았다. 인간이 아닌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고민하는 전체 기획 의도와도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장감상에 참여한 분들에게 제공하는 기념품도 튼튼한 에코백과 비건 간식이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역시 감상 시간이 조금 빠듯했다. 심사위원들은 최대한 많은 작품을 독자에게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었겠지만, 1차 선정작이 좀 더 적은 수였다면 어땠을까? 혹은 감상 시간이 애초에 더 길게 계획됐다면, 아마 더 다양한 감상의 양상이 펼쳐졌을 것 같다. 현장감상 참여자가 모여 작품에 대해 함께 대화하고, 같이 소리 내 읽어볼 수 있는 짬이 존재하는 제2회, 제3회 행사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좋은 작품을 써준 작가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작은 스탠드 불빛 아래, 꼭 내가 글을 쓰 는 환경과 비슷한 공간에서 여러분의 작품을 읽으며 함께 웃고 감동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내 글도 누군가 에게 닿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다지기도 했다. 우리는 이처럼 익명으로 만났지만, 결국 서로의 이야기 를 알게 될 것이다.
글 서동민 웹진 [연극in]에 <세상에서 가장 효율적인 소개팅> <혜수와 올퓌>를, 웹진 [비유]에 <우아한 연주>를 게재했습니다. 주로 퀴어 이슈에 관한 글을 쓰고, 과학 소설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