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서울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문화+서울

문화+서울

  • 지난호 보기
  • 검색창 열기
  • 메뉴 열기

SOUL OF SEOUL

7월호

‘<깡> 열풍’으로 본 미디어 흐름의 지각변동당신은 어디에서 <깡>을 접했나요?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라면 비의 <깡> 신드롬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을 거라 생각된다.
깊은 산속에서 자연인이 돼 의도적으로 스마트폰과 TV를 차단한 채 살지 않고서야 비의 <깡>이라는 노래와 안무가 새삼 인기라는 것 정도는 풍문으로라도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구시대적인 가사와 과장된 의상, 안무를 조롱하는 댓글이 유머로 박제돼 대중에게 확산된 이 특이한 유행은 2020년의 미디어 활용 방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사례다.

유튜브발 새로운 신드롬의 주인공이 된 가수 비의 2017년 발표곡 <깡>

당신이 <깡>을 만나게 된 경로

과거 발매된 곡이 뒤늦게 진가를 인정받거나 드라마 OST 등을 통해 발굴돼 역주행하는 경우는 있지만 비의 <깡>은 좀 다르다. 시대를 앞서 나간 명곡이라기보다는 유튜브에서 놀림을 받다가 유머 ‘밈(meme)’(온라인상에서 패러디되는 요소)이 된 경우다.
일단 당신이 <깡>을 어디에서 언제 처음 접했는지에 따라 미디어 활용도를 짚어볼 수 있다. 2017년 12월 발매된 비의 앨범 <MY LIFE愛>에 수록된 <깡>이 ‘숨듣명’(숨어서 듣는 명곡)이라며 인기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에 소개되고, 유튜버들이 비의 ‘꼬만춤’을 패러디한 영상을 업로드하고, 비의 무대 영상에 놀리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한 것은 벌써 1년도 더 된 일이다. 그 전설의 시작에는 <깡>보다 먼저 발매된 불세출의 명곡 <차에 타봐>가 있다. 감히 ‘내 여자’를 탐한 상대 남성을 때리고 싶으니 차에 타보라고 협박하는 이 폭력성 짙은 곡의 가사가 <깡>보다 먼저 화제가 됐다. <차에 타봐>와 <깡>을 유튜브에서 1년 전에 접했다면 당신은 아마도 구독자가 20만 명 이상인 인기 유튜브를 여럿 구독하는 헤비유저일 가능성이 높다. 알고리즘을 통해 현재의 인기 영상을 AI에게 추천받았을 것이다.
혹은 당신은 ‘1일1깡’ 나‘비’효과와 같은 유행어를 인스타그램에서 카드뉴스를 통해 접했을 수도 있다. SNS에는 언론사와 광고대행사들이 운영하는 계정이 많은데 그들은 요즘 유행하거나 화제가 되는 이슈들을 카드뉴스 형식으로 만들어 발행한다. 그 계정을 팔로잉하지 않더라도 ‘돋보기’ 아이콘을 누르면 광고비가 책정된 ‘트렌드 짚어주는 뉴스’ 계정들이 상위 노출된다. <깡>이라는 노래 제목도 생소한데 거기에 ‘1일1깡 하시나요?’ ‘여고생이 따라 한 비의 꼬만춤’ ‘비의 영상에 김태희가 남긴 댓글’ 등 호기심을 유발하는 제목을 본 당신은 홀린 듯 그것을 읽게 된다. 유튜브와 SNS가 아니라면 그 다음은 인터넷 포털 뉴스가 있다. 포털 인기 뉴스에는 ‘비 드디어 새우깡 모델 된 사연’ ‘비의 <깡> 3년 만에 역주행?’ 등의 기사가 올라오고, 인기 검색어에는 ‘1일1깡’ ‘놀면뭐하니’ 등이 순위권에 있다. MBC TV <놀면 뭐하니>에 비가 출연해 유재석·이효리와 함께 꼬만춤을 춘 사연 등의 기사도 도배돼 있으므로 이제 당신은 비의 <깡>이 무엇인지, 그가 왜 뜬금없이 옛날 노래로 <놀면 뭐하니>에 나왔는지, 어쩌다 새우깡 광고모델로 발탁됐는지 알게 된다.
자, 그리고 너무 바빠서 포털 뉴스조차 보지 않는다면 이제는 가장 올드미디어인 TV를 통해 <깡>을 접하는 수가 남아 있다.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이 직접 비의 회사까지 찾아가 <깡>의 역주행에 대한 감상을 물으며 그를 놀리는 댓글들을 면전에서 읽어주기까지 했다. <놀면 뭐하니>를 보지 않더라도 다수의 예능에서 꼬만춤이나 <깡>의 춤을 패러디하기 때문에 그 노래의 존재를 알 수밖에 없다. 유튜브, SNS, 포털 뉴스조차 보지 않고 TV도 안 본다? 그런데 매일 접속하는 음원사이트의 차트에 갑자기 박재범과 식케이, 김하온 등 힙합가수들이 리믹스한 <깡>이 1위로 올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전 우주가 “이 노래 좀 들어보라”고 추천하는 것 같다. 디지털 사회 속 당신은 ‘유행’이라는 이름의 그물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
또한, 어디에서 언제 해당 콘텐츠를 접했느냐에 따라 그것에 대한 인식도 달라진다. 시대착오적인 가사와 과장된 마초이즘 때문에 조롱받으며 유행이 된 비의 2014년 곡 <차에 타봐>나 <깡>을 유튜브에서 접했다면 놀리는 댓글들까지 함께 유머로 소비하게 된다. 당시에는 멋지다고 생각하며 만들었을 그 노래가 지금 들으니 왜 부끄럽고 웃긴지 유튜버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뒤늦게 방송에서 순화된 버전의 무대와 멋지게 리믹스한 노래만 접한 사람들은 그게 정말 좋은 노래인데 뒤늦게 가치를 인정받은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모든 뉴스가 ‘밈’의 탄생 배경을 자세히 설명하진 않는다. 더구나 원본 영상 밑에 달린 조롱 댓글들을 자세히 읽어주는 것은 실존 인물에게 미안한 일이다. 유머는 설명되는 순간부터 재미가 휘발된다.

유행의 생산 주체, TV에서 유튜브로

과거에는 유행이 TV 방송에서 비롯했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방송 장면을 SNS가 퍼 나르고, 유튜브가 패러디하는 식이었다면 이제는 유튜브에서 발굴된 영상들이 인기를 얻어 뒤늦게 TV에 소개된다. 구독자 수 100만 명 이상을 거느린 유튜버들은 이제 방송 제작진에게 섭외 0순위의 출연자다. 공공재인 전파 송출을 이용해 전방위적인 파급력을 갖고 있던 올드미디어 TV가 트렌드를 가장 뒤늦게 쫓아가게 된 것은 오래된 일이다. 하지만 TV에서 시작된 유행은 세대를 불문하고 쉽게 전 국민에게 주입되는 반면, 유튜브에서 시작된 유행이 TV까지 오는 데에는 약간의 시간이 걸린다. TV는 같은 영상을 일방향으로 대중에게 송출하지만 유튜브는 다르다. 유튜브는 구독자 개개인마다 다른 채널의 홈이나 영상을 보고 있다. 개인 성향을 반영해 AI가 영상을 추천하기 때문에 나이와 취향이 다른 사람에게 같은 영상을 노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미디어는 ‘유행’을 만들고 싶어 하며, 끊임없이 ‘요즘 뭐 재미있는 거 없는지’ 찾는다. 시대에 뒤쳐진 듯한 허세 가득한 가사를 재미삼아 놀리던 것이 댓글놀이가 되고, 네티즌들의 유희가 되어 TV에 소개되며 비의 새우‘깡’ 광고로까지 이어지는 미디어믹스 시대. 유튜브-인스타그램-TV-광고가 밀접하게 연결돼 있으며 그들 모두 트렌드라는 미망을 좇는다.

글 김송희_《빅이슈코리아》 편집장
위로 가기

문화+서울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