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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2월호

시인 이우성 작가에게 선물이 되는 책, 대중에게 위로가 되는 글을
‘패션지 에디터’에 대한 일종의 고정관념이 있다. 드라마나 소설에서 묘사되듯 까칠하고 콧대 높을 것이라는 게 첫째다. 패션, 뷰티, 피처 기사 등 다루는 분야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그들의 공통된 인상을 에둘러 표현하면 ‘각자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이 확고하다는 것’ 정도로 얘기할 수 있겠다. 지난 1월 연희문학창작촌에서 발행한 무크지 <2015 연희>>의 작업에는 남성 패션지 <아레나>의 이우성 에디터가 편집자로 참여했다. 그는 2009년 등단한 시인이다. 그에게도 아름다움의 기준이 확고한 대상이 있다. ‘언어’다.

시인 이우성 사진

이우성 작가는 무크지 <2015 연희>>의 편집 작업을 계기로 연희문학창작촌(이하 ‘연희’)과 인연을 맺었다. 연희에서는 이전에도 소책자 형태의 아카이빙 북을 매년 발행해 창작공간과 입주 작가들, 그리고 그곳에서 한 해 동안 진행된 행사와 프로그램을 소개해왔다. 그러나 <2015 연희>>는 기존의것에서 한 단계 나아가, 작가의 이야기와 문학을 좀 더 비중있게, 멋있게 담아내고자 하는 의도로 기획됐다. 글뿐만 아니라 구성과 리듬, 사진을 고르고 편집하는 일을 비롯해 책의 전반적인 콘셉트를 잡는 데 세련된 감각을 지닌 이가 필요했는데 그에 적합한 이로 이우성 작가가 간택된 것. 그는 문화 트렌드를 다루는 최전선에 있는 에디터이자 문학을 하는 사람, 아는 사람이다. 이우성 작가를 만나 무크지 <2015 연희>>의 작업에 대해, 그가 생각하는 시와 문학에 대해 들어보았다.

무크지 <2015 연희>>의 첫인상은 기존의 연희에서 발행한 간행물과 전혀 다른 책이라는 점이다. 판형이 커서 이미지가 시원스레 눈에 띄고, 문학과 문학의 공간, 작가를 감각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새 매거진을 창간한 것과 다름없는데 타깃 설정부터 고민이 꽤 많았을 것 같다.

우선 작가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책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연희에서 진행된 여러 프로그램을 가능하면 스타일리시하고 멋있게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잡지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문학 행사가 매체에서 보도되는 것을 볼때 ‘더 멋있게 보일 수 없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기에, 사진에도 신경을 많이 썼고 여기에 글을 쓰는 게 작가에게 보람되고 기쁜 일이 되도록 해드리고 싶었다. 참여한 분들께 기분좋은 선물이 될 수 있는 책이었으면, 하는 마음이랄까.

결과물에서 어떤 점이 가장 마음에 드나.

사실 <2015 연희>는 2014년을 정리한 호다. ‘2014년의 대화’라는 자리를 마련해 강정 시인, 장석남 시인, 권여선 소설가를 모시고 이야기 나눴는데, 다들 일상적인 차림으로 오셨음에도 사진이 아주 멋있게 찍혀서 실린 게 마음에 든다.
2014년을 마무리할 때 가장 큰 화두는 세월호였는데, 이 대화를 진행하며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사실 편집자지만 온전히 내 의지대로 만들 수 있는 책은 아니었기 때문에 세월호 이야기를 비중 있게 다루는 데 대한 부담은 없을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충분히 얘기 나누고 대화 내용을 비중 있게 실을 수 있게 됐다. 이 대화가 기록으로서 유의미할 수 있지 않겠나. 10년쯤 지나 단 한 사람이 보더라도 세월호 사건에 대해 돌아보며 ‘그런 사건이 있었고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결론을 맺었고 그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이 있었지’ 하고 생각할 수 있다면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든다. 이렇게 1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책을 내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작가 입장에서 연희라는 공간에도 애정이 있을 것 같은데.

작가가 글을 쓰기에 정말 좋은 공간이다. 순수하게 장소만봐도 서울에선 찾아보기 힘든 숲과 나무가 많은 곳에 공간이있는 게 좋고, 무엇보다 연희의 스태프들이 입주 작가들을 세세하게 지원하며 잘해주시더라. 작가가 치열하게 글을 쓰도록 많은 것이 잘 갖춰진 공간인 것 같다.

<2015 연희>에는 ‘시인 이우성’으로서 인터뷰이로도 참여했다. 시쓰는 이우성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은데, 문학 중에서도 왜 시였을까?

시를 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기보다는 어릴 때부터 막연히 문학을 좋아했다. 시나 소설 등 문학을 읽는 것을 좋아했고,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스스로 느껴서, 대학교 국문과에 갔는데 막상 시를 써보니 재미있더라. 예를 들면,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이별의 아픔을 겪었을 때 시를 쓰면 정화가 되는 걸 느꼈다. 그런 정화의 순간을 여러 번 겪게 되면서 이게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이구나, 그래서 이게 근사한 일이구나 하는 걸 알았다. 자기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현상을 그저 바라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안으로 들어가서 경험하는 사람들이다. 그게 좋다. 길을 걷다 꽃을 발견했을 때 ‘꽃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라면 시를 쓰는 사람은 그 꽃을 어떤 방식으로든 재현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데, 그런일이 나에게는 흥미롭다.

인터뷰를 보니 시를 쓰는 일과 잡지 만드는 일에 교집합이 있다고 했던데, 계속 텍스트를 다루면서 자신이 소모되는 느낌을 받지는 않나.

소모된다고 느낀 적은 없다. 나는 이 일들에서 상승효과를 많이 얻는다. 일을 하지 않고 시만 쓸 때의 결과물보다 치열하게 일하면서 시를 쓸 때의 결과물이 훨씬 좋더라. 다만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할 뿐. 등단하고 첫 시집을 낸 지 시간이 좀 흘렀고, 나이 먹으면서 체력의 한계도 느껴서 일과 시 쓰는 걸 잘 조율할 필요가 있단 생각이 든다.

일과 시작(詩作)에 시간 안배를 하면 그 룰을 잘 지키는 편인가?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가급적이면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글을 쓰는 사람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건 엄연히 노동이고 노동은 생산성과 규칙을 무시할 수 없는 속성의 것이니 어렵지만 규칙을 지키겠다는 마음을 갖는다.
박범신 선생님을 뵀을 때 내가 ‘어떻게 40권이 넘는 책을 쓰셨냐’고 물으니 하시는 말씀이 ‘그거 어려운 거 아니다. 하루에 원고지 10~12장만 쓰면 되는 건데 그게 왜 어려우냐’는 거였다. 그런데 작가 대부분은 ‘어떻게 하루에 10~12매를 쓰냐’고 반문한다. 내 생각엔 작가가 직업이라면 10~12매를 매일 써서 1년에 한 권의 책을 낼 수 있는 성실함과 실력을 갖춰야 한다고 본다. 글쓰기는 노동이니까.

외부 활동도 많이 하는 것 같다. tvN <비밀독서단>에도 패널로 출연하고, <한겨레>와 매거진 <Axt>에도 글을 쓰는데, 그런 활동은 궁극적으로 시를 쓰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하는 것인가.

시를 쓰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만 살진 않는다. 나는 자본주의 안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욕망을 놓치고 싶지 않다. 외제 차 타고 싶고, 명품도 비싼 옷도 좋아한다. 그래서 일을하는 거고. 물론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커리어를 쌓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입이 큰 이유가 되는 게 사실이다. 방송도 마찬가지고, 이를 계기로 또 다른 일도 할 수있지 않나. 나에겐 그것이 사소하지 않다.
이렇게 내가 속된 사람처럼 얘기하는 건 그게 이 시대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소비, 욕망, 자본주의 같은 것들 말이다. 내가 그 욕망의 일선에 있는 사람이어야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명품 옷을 사는 건 시와 아무 상관이 없지만 또 아무런 상관이 없진 않다.

<2015 연희>를 만들며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작가와 문학 공간이 각기 지닌 아름다움만큼 멋있게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 바람을 그는 어느 정도 직접 실현했다.<2015 연희>를 만들며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작가와 문학 공간이 각기 지닌 아름다움만큼 멋있게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 바람을 그는 어느 정도 직접 실현했다.

이우성의 시에는 자신이 많이 투영돼 있다. 시를 비롯한 여러 글을 보며 ‘참 솔직한 사람이구나’ 하고 느꼈는데, 쓰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자아가 많이 드러나는 글에 대해 지향하는 바가 있는 것인가.

둘 다인 것 같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라고 말하는 걸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인 것 같다. 내가 느낀 것, 나를 중심으로 한 것을 쓰는 게 나에겐 정직하고 편한 일이다. 더불어 문학은 아주 독특한 개인의 상태를 보여주는 일이라고 본다. 다른 사람에 대해 쓸 수도 있지만 그건 ‘나와 다른’ 타인이어야 하고, 누군가에 대해 ‘나쁘다’라고 가치 판단할 때엔 ‘내가 보기에’ 나쁜 것이다. 나는 그걸 정직하게 ‘내 입장’에서 쓴다는 거다. 그게 때로는 창피하고, 욕 먹을 걸 감수하는 순간도 있겠지만 내겐 그걸 하려는 의지가 있다.
글을 쓰다 보면 나를 욕하는 댓글도 아주 많이 본다. 이 시대 사람들은 ‘나’가 돼서 이야기하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쟤 뭔데 저렇게 쿨한 척해?’ 라는 반응이 많다. 사실 동의하기도 하는데, 얼마나 외로우면 그랬을까 하는 감정적인 동의와, ‘비판의 절반 이상은 수용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오는 동의다. 물론 힘들다. 그래서 때로는 글을 쓰는 걸 그만두고 싶기도 하고 굉장히 많이 생각한다.

외부에서 보는 이우성은 ‘트렌디한 글을 쓰고 감각적으로 책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문학의 좌표에서 이우성은 어느 쯤에 있는 시인인 것 같나.

내가 2009년에 등단했는데 2010년 즈음 등단한 시인의 과제란 게 있다. 그 이전의 소위 ‘미래파’라고 하는, 예를 들어 김경주·김행숙·황병승 등의 시인 이후 세대이기 때문에 그들과 다른 지점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이 없지 않은 거다. 누군가의 ‘아류’라고 불리지 않는 게 그 과제랄까. 그 포지션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는데, 우리 세대가 그 일을 잘 해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아직 현재진행형이기도 하고.

요즘 ‘시가 다시 읽힌다’는 기사들이 눈에 띄는데, 이를 체감하나.

굉장히 크게 체감한다. 시집의 판매 부수도 다른 책의 부수가 떨어진 것에 비하면 오히려 조금 증가했다. 예를 들면 문학동네 시인선이 모두 50여 권인데 그중 재쇄를 찍지 않는 책이 두 권밖에 안 된다더라. 그나마 그 두 권도 우수문학도서에 선정돼 재쇄를 찍었고. 그 말은 출간된 시집이 기본 2쇄고 3쇄, 4쇄 가는 시집이 많다는 뜻이다.
이 현상을 분석해봤는데 SNS로 시를 소비하는 방식이 생기기 시작한 데서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예전에는 혼자 시를 읽고 좋아했는데 요즘에는 시를 찍어서 SNS에 공유하고 그걸로 자기 글을 쓰기도 하며 전파된다. 시를 읽는 게 패션처럼 트렌디한 일로 보인다는 걸 자각한 이들이 생긴 건 맞다. 시인들끼리 있을 때도 그런 얘길 종종 한다.

그럼 시인이자 잡지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대중에게 시는 어떤 존재가 되면 좋겠나.

나는 그런 면에서 고지식한 부분이 있는데, 문학은 숭고하고, 독자에게 영감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면 문학이 존재할 이유가 없지 않겠나. 안 팔리더라도 문학이 존재한 이유는 한두 사람일지언정 독자에게 영감을 주었기 때문이고, 시는 더더욱 그렇다고 본다. 시가 소비재의 측면을 가질 수 있지만 결국 모국어로 할 수 있는 가장 진지하고 숭고한 것임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인류가 발전하는 계기를 몇몇 예술 장르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학이 가벼운 소비재가 되는 건 종말에 가까운 일이라고도 본다. 물론 소비재가 아니라고 해서 또 재미가 없는 건 아니지않나. 그걸 재미있게 쓸 이유가 시인에게 있다.

다음 시집은 언제쯤 낼지 궁금하다. 더불어 지금 하는 여러 일의 궁극적인 목적이 문학인지, 혹은 문학을 통한 또 다른 목적이 있는지도.

시집 계획은 아직 없다. 문화예술계에 빛나는 사람이 수없이 나오고 있는데 자꾸 거론되는 검열 논란도 그렇고, 시대는 자꾸 뒷걸음질 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어찌됐건 내게 재주가 있어서 시를 쓰고 다른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데 이게어떤 식으로든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을 외롭지 않게 하는 일, 소외받는 사람에게 단 한줄이라도 위로가 되는 문장이었으면 한다. 시든 산문이든 이 ‘헬조선’에서 그나마 좀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었으면, 거기에 내가 일조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화+서울

글 이아림
사진 김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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