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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월호

책 <찰리 브라운과 함께한 내 인생>과 <앙-단팥 인생 이야기> 균형 있는 삶을 위한 참고서
1월에 어울릴 책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살펴보고, 서점도 둘러보고 최근 읽은 책 리스트도 떠올려봤다. 새해 전망, 새로운 계획, 원대한 출발… 이런 것들을 생각하다 자기 삶을 잘 살아가는 법을 이야기하는 사랑스러운 책 두 권을 골랐다. <피너츠>의 만화가 찰스 슐츠의 산문집 <찰리 브라운과 함께한 내 인생>과 영화 <앙>의 원작 소설인 두리안 스케가와의 <앙-단팥 인생 이야기>다.

새해라는 말, 참 좋다.
지난해 풀지 못한 고민과 숙제는 그대로지만 그래도 새로운 마음을 가져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생이 되고 새내기 직장인이 되고 새로운 부서에서 일하게 된, 눈에 보이는 변화가 생긴 상당히 축복받은 사람뿐 아니라 입시에 실패했거나, 직장을 잃었거나, 당사자가 아니면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깊은 좌절과 슬픔에 빠진 이들도 새로운 출발에 마음을 열고 기꺼이 신발 끈을 다시 맬 수 있는 시간이다. 비슷비슷한 하루하루가 끝없이 이어지는 삶 속에서 만약 새해가 없었다면 우리 인류는 꽤 우울한 족속이 됐을 것이다. 태양에게 감사를.
<찰리 브라운과 함께한 내 인생>과 <앙-단팥 인생 이야기>, 이 두 권의 ‘인생 이야기’를 고른 이유는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올렸지만 개인의 삶이 역대 최고 수준으로 올라갈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회는 사람들의 능력과 시간을 최대한 이용하려 하고, 개인들은 만성피로를 안고 사는 이곳에서 자기 삶을 균형 있게 잘 살아내는 것이 올해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찰리 브라운과 함께한 내 인생 책 표지

승자보다 패자에 공감한 슐츠의 인생관
<찰리 브라운과 함께한 내 인생>, 찰스 슐츠 지음, 유유

<찰리 브라운과 함께한 내 인생>은 세상 모든 일이 걱정인 찰리브라운, 순진하면서도 고귀한 정신세계를 가진 스누피가 주인공인 만화 <피너츠>의 작가 슐츠의 기고문, 책 서문, 연설문 등을 엮은 것이다. 작가의 성장기, 피너츠 탄생 일화는 물론 만화에 대한 생각, 아이디어 만드는 법 등 그의 삶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넘치게 들어 있다. 슐츠가 친근하게 들려주는 그의 전기 같다. 무엇보다 마음을 끄는 부분은 삶에 대한 슐츠의 인식과 신념이다.
전 세계 75개국, 4억 명 가까이가 본 <피너츠>의 빛나는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는 승자보다 패배자에게 공감했다. 그는 세상은 승자의 것이 아니라 패배자들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모두 삶에서 끊임없이 패배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그래도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자기 길을 걸어가는 것이 삶이라 여겼다.
새해부터 힘 빠지게 패배자 소리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성공한 사람, 비싼 물건이 넘쳐나는 시대에 우리는 빛나지 않으면 패배했다고 쉽게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삶에는 어두운 시절도 있고, 기쁨만큼 피할 수 없는 슬픔도 있다. 게다가 슬픔은 아프지만 힘이 있다. 슐츠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가장 밑바닥에 있을 때, 모든 것에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느낄 때, 뜻밖의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다. 행복한 상태에는 재미있는 요소가 전혀 없다. 유머는 슬픔으로부터 나온다.”
다만 슐츠는 이런 인생 속에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소명은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에겐 코믹 스트립이 소명이자 종교였다. “코믹 스트립을 그리는 일이 나에게 종교와 매우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일은 내가 매일을 살아내도록 한다. 모든것이 절망적인 상황일지라도 작업실에 와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나는 내 공간에 있어. 여기서 그림을 그리는 게 내 일이라고.”
책을 읽으며 부러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자신의 일이 소명이자 종교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인생의 소명이자 종교가 꼭 일이나 직업일 필요는 없다.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취미일 수도 있고, 세상에 대한 관심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자신이 인생에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 하나쯤은 가져야겠다는 생각이다. 당신에겐 인생의 소명이 무엇인가요?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책 표지

다른 세 사람이 발견해가는 인생의 의미
<앙-단팥 인생 이야기>, 두리안 스케가와 지음, 은행나무

<앙-단팥 인생 이야기>는 단맛을 싫어하면서도 어쩌다 보니 도라야키 가게를 열게 된 무기력한 중년 센타로, 50년간 단팥소를 만들어온 일흔여섯의 요시이, 가족에게 사랑받지 못한 여중생 와카나, 세 사람의 이야기다. 벚꽃이 아름다운 날 요시이가 센타로의 가게를 찾아와 단팥소를 만들게 되고, 와카나가 이 도라야키를 먹으면서 세 사람 사이에 온기가 돌기 시작한다. 하지만 요시이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가게를 떠나게 된다.
소설은 호의적이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는 세 사람이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고, 그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해가는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간다. 소설의 정점은 평생 고통과 편견 속에 살던 요시이가 센타로에게 남긴 편지에서 자신이 인생의 의미를 발견한 순간을 전하는 부분이다.
“숲을 홀로 걸으며 휘황하게 빛나는 보름달을 봤던 순간입니다. 그 숲길에 서서 홀로 달과 마주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넋을 잃은 채, 성가신 질병과 투쟁한다는 사실이나 울타리 밖으로 나갈 수 없는 현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들은 것 같았습니다. 달이 나에게 조용히 속삭이는 것 같았습니다. ‘네가 보길 바랐어. 그래서 빛났어’라고. 그때부터 모든 것이 달라 보였다. 내가 없으면 이 보름달도 없다. 나무들도 없다. 바람도 없다. 그렇다면 살아갈 의미는 있다.”
가끔 이 말을 생각한다. 보름달보다 아름다운 것은 그 보름달을 아름답게 보는 나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많다. 2016년 한 해,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발견하는, 그래서그것들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그런 한 해가 됐으면 한다.문화+서울

글 최현미
문화일보 기자
유유,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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