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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1월호

연희문학창작촌 <1박 2일 문학캠프: So, 통하다> 작가의 방에서 나누는 이야기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번의 끝자락 즈음, 작품 집필을 위해 문인들이 머무르는 연희문학창작촌은 새로운 입주작가를 맞을 준비로 일주일간 텅 빈다. <1박 2일 문학캠프>는 이 ‘텅 빈’ 창작촌 풍경에 착안해 시작된 프로그램이다. 연희동 조용한 주택가 안 소나무 숲과 한데 어우러진 창작촌의 매력적인 자연환경, ‘작가들의 집필실’이라는 신비로운 공간, 그리고 다양한 문학적 경험, 이 모두를 시민들에게 온전히 개방할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인 것이다. 9월 한 달간 문학을 매개로 상호 깊은 소통을 희망하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참가 신청 접수가 진행되었고, 이들의 신청 동기를 바탕으로 총 9쌍의 커플이 선정되었다. 10.8(목)~9(금) 이틀간 참가자 18명은 연희문학창작촌 집필실에 머무르며 문학이 어우러진 ‘1박 2일간의 소통의 문학캠프’를 시작했다.

연희문학창작촌 연관 이미지

“당신의 무거운 짐을 이제 내려놓고 창문을 열어주시기 바랍니다. 마음의 짐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봐주시기 바랍니다. 한 호흡에 숲 내음이 몸속으로 스며들어갈지도 모르겠지요. 내 짝꿍의 마음의 방문을 똑똑, 두드려볼 준비가 되셨나요?”
- 집필실 내 참가자 환영편지 中

<1박 2일 문학캠프: So, 통하다>에는 매일 잔소리 때문에 싸우는 엄마와 딸, 마음과 다른 언어 표현으로 오해가 쌓여가는 연인, 마음속 숨은 이야기까지 함께 나누고 싶은 단짝친구 등 다양한 커플이 참여해 문학을 매개로 상대방의 속마음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인문상담연구팀(지도교수: 시인 진은영)은 성찰과 치유라는 공통의 힘을 지닌 ‘문학’과 ‘상담’을 접목해 더욱 내밀한 소통과 이해를 경험할 수 있는 세 개의 ‘문학 소통여행’을 준비했다.

첫 번째 소통, “내 안에 숨어 있는 너의 메타포: 내 짝을 소개합니다”

자신의 짝에 대해 평소 느낀 감정을 문학적 은유와 상징을 활용해 비유적으로 표현해보는 시간이다.
“침대 위에 앉아 있는 곰 인형과 닮아 있습니다. 언제나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그 포근한 품을 내어줄 나의 짝입니다.”
“내 짝은 깜깜한 하늘에 반짝이는 샛별이었어. 내 짝은 아주 작은 초승달이 조금씩 차오르는 희망이었어. 내 짝은 텁텁한 일상을 상큼하게 씻어주는 잘 익은 사과 맛이었어. 내 짝은…”
문학 언어를 빌려 표현한 상대방의 이미지는 우회적이지만 모호하지 않고, 은유적이지만 예리한 관찰력이 담겨 있다. 일상의 언어를 통한 그것보다는 조금은 더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인문상담연구팀은 문학을 통한 이러한 은유와 상징의 표현법은 사람과의 관계망 속에서 한 박자 쉼을 주는 ‘보다 안전한 방식의 표현’이라고 말한다.

두 번째 소통, “감정의 미학: 내 마음을 맞혀봐”

‘짝짝 짝짝짝, 짝짝짝짝 짝! 짝!’ 혼자서는 누구든지 쉽게 할 수 있는 손뼉 박자. 누구에게나 쉽고 익숙한 리듬이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이 박자를 완성해야 한다면? 시작과 동시에 참가 커플들의 엇박자 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운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소통이다. 서로의 박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상대방의 소리에 응해 적절한 타이밍에 반응할 때 비로소 둘의 소리는 조화로운 리듬으로 완성된다. 눈과 귀로 상대의 소리를 들어보는 간단한 워밍업 프로그램으로 몸과 마음이 조금은 열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몸을 통한 소통과 이해의 시간이 시작된다.
일렬로 늘어선 참여자들은 자신의 앞에 선 사람의 등에 종이를 대고 선다. 그리고 맨 뒷사람에게 미션이 주어진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든 기분은 무엇이었나요? 앞사람의 등 위에 아침의 감정을 표현해보세요.” 잠시 후 완성된 그림이 공개된다. 아침으로 먹었던 따끈한 빵의 온기를 표현한 첫 번째 사람의 둥근 선은 한 사람 한 사람을 거쳐가며 조금씩 변해간다. 둥근 선은 두 번째 사람에게 다다르자 즐거운 미소를 띤 둥근 얼굴로 변하고, 그다음 사람에게서는 새벽 내 따스하게 온몸을 감싸주던 보일러의 따뜻한 온기로, 그리고 마지막 사람에게서는 다시 마음 흐뭇한 미소로 변한다. 그림들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 ‘온기와 따스함’만은 각자의 등 감각을 통해 모두에게 전달된 듯하다. 몸의 촉감을 통해 상대의 마음을 읽어보는 소통의 시간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1, 2 <1박 2일 문학캠프: So, 통하다>의 참가자들은 작가의 집필실 등 연희문학창작촌의 공간에서 문학으로 마음을 여는 데 함께했다.3 연희문학창작촌 집필실 앞 복도에는 이 공간을 거쳐간 작가들의 캐리커처가 걸려 있다.1, 2 <1박 2일 문학캠프: So, 통하다>의 참가자들은 작가의 집필실 등 연희문학창작촌의 공간에서 문학으로 마음을 여는 데 함께했다.
3 연희문학창작촌 집필실 앞 복도에는 이 공간을 거쳐간 작가들의 캐리커처가 걸려 있다.

세 번째 소통, “문학 프락시스: 느린 우체통”

이번 프로그램의 가장 중요한 시간이 시작된다. 각 커플들은 그동안 상대에게 차마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나의 언어가 아닌, 작가의 언어를 빌려와 표현한다. 참여자들은 문학미디어랩에 꽂혀 있는 수많은 시집 중 오늘 이 시간 자신의 마음과 가장 잘 통하는 시집 한 권을 선택한다. 이바라기 노리코의 <어린 딸이 생각하는 것>, 칼릴 지브란의 <사랑과 결혼의 시>, 월트 휘트먼의 <열린 길의 노래>, 박준의 <환절기>,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의 노래>, 네루다의 <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 진은영의 <멜랑꼴리아> 등 선택한 시집은 다양하다. 각 참여자들은 선택한 시집에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단어들을 오려내고, 자신의 짝에게 콜라주 편지를 쓴다.
“밤바람은/당신에게/나를 데리고 갔/다”
다 쓴 편지는 고이 접어, 편지봉투에 넣어 미리 준비된 ‘느린 우체통’ 속에 넣는다. 우체통 속의 편지들은 일상 속에서 오늘의 말랑했던 이 감정들이 무뎌질 때쯤. 아마도 한 달쯤 후, 각 참여자들에게 실제로 우편으로 도착하게 된다. 가장 느슨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서로에게 터놓은 오늘의 마음은, 한달 뒤 어느새 조금은 굳었을지 모를 그날의 마음에 가 닿아 두 사람에게 또 하나의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줄 것이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편지가 도착하기를 기대하는 참여자들의 마음과 함께 ‘느린우체통’은 문을 닫는다.
<1박 2일 문학캠프>는 내년에도 마음을 터놓기 좋은 어느 가을날, 시민들을 위해 창작촌의 문을 활짝 열어놓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문학캠프까지 1년을 기다리는 것이 아쉽다면, 연희문학창작촌의 다양한 다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방법이다.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문학미디어랩에서는 시민들을 위한 독서클럽 <이웃문학다방>이 진행된다. 책읽기가 아직은 어색한 분들을 위한 입문 과정인 ‘맛있는 책다방’에서 브런치와 함께 그림책을 읽어보자. 그림책이라고 어린이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림책 속에 얼마나 다양한 세상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확인하게 될 것이다. 조금은 어려운 책읽기에 도전해보고 싶다면 ‘느리게 책읽기’ 모임에 참여해보자. 마음먹고 도전했다가 지금은 냄비받침으로 쓰고 있는 어려운 인문학·철학 서적 등을 사람들과 함께 느리지만 끝까지 읽어보는 가족적인 소규모 독서 클럽이다. 마지막으로 조금은 독특한 문학적 경험을 기대한다면, 11월 12일 오후 7시에 진행하는 <연희목요낭독극장>에 참여해보자. 홍사용의 산문시 <나는 왕이로소이다>가 낭독극장을 통해 시극으로 소개된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시구들의 입체적인 움직임을 새롭게 경험하며, 어제와는 또다른 늦은 가을 밤이 당신과 함께 저물어 갈 것이다.문화+서울

글 배소현
서울문화재단 연희문학창작촌 매니저
사진 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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