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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1월호

웹 전용 콘텐츠의 문화적 영역 확장 영향력에 걸맞은 여과 장치가 필요하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영화가 대중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는 지금, 웹 전용 콘텐츠는 웹소설, 웹드라마, 웹예능으로 문화적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 9월 초 시작한 웹예능 <신서유기>는 최근 총 재생 횟수 5000만 건을 넘어서며 방송가에서 화제가 됐다. 이제 기존 방송의 문법을 비트는 웹 전용 콘텐츠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아직 이런 영향력에 걸맞은 최소한의 여과장치가 없다는 건 아쉽다.

방송프로그램 관련이미지

<1박 2일> <꽃보다 할배> <삼시세끼> 등을 만든 나영석 프로듀서가 새롭게 선보인 웹예능 <신서유기>가 최근 총 재생 횟수 5000만 건을 넘어섰다. 제작사인 CJ E&M과 콘텐츠 유통을 맡은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손잡고 만든 이 프로그램은 인터넷에서만 볼 수 있는 ‘인터넷 온리(only)’ 예능을 내세웠다. 네이버의 동영상 서비스인 TV캐스트를 통해서만 일주일에 한 번 10분 내외의 동영상이 공개될 뿐 TV를 통한 재방송은 전혀 하지 않았다. 지상파나 케이블TV 위주의 기존 예능의 문법을 벗어난 신선한 시도라는 평가가 많았다.

방송가에 신선한 돌풍을 일으킨 웹예능 <신서유기>

<신서유기>는 강호동, 은지원, 이수근, 이승기 등 예전 <1박 2일> 멤버들이 다시 모여 중국 여행을 떠나는 단순한 설정에서 출발했다. 네이버를 통해 ‘독점 선(先)공개’된 예고편은 예상외로 파격적이었다. 몰래 카메라 형식으로 촬영된 예고편에는 멤버들과 제작진의 술자리가 그대로 노출됐다. 테이블 위엔 특정 상표의 소주병이 뒹굴었다.
9월 4일 첫 공개된 본편은 기존 방송이 줄 수 없는 차별화된 재미를 노린 듯했다. 문법에 맞지 않는 자막과 비속어가 속출하고 이승기는 불법도박으로 자숙 중인 이수근을 ‘상암동 베팅남’으로, 이혼한 은지원을 ‘여의도 이혼남’이라고 스스럼없이 불렀다. 40도 가까운 더위에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의 내복(히트텍) 입기를 벌칙으로 삼고, ‘담배 브랜드 7개 대기’와 ‘치킨브랜드 이름 대기’ 등이 게임으로 나왔다. 특히 특정 브랜드가 웃음의 소재로 쓰이는 부분에서는 대중이 느끼는 쾌감이 꽤 큰 것 같았다.
나영석 PD는 지난 9월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이 프로그램에 대해 “허리띠 한 칸 풀고 만든 예능”이라며 “예능의 깊이는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망하면 조용히 잊혀질 것”이라는 강호동의 예상과 달리 <신서유기>는 갖가지 기대와 논란 속에 초유의 기록을 세우며 방송가에 신선한 돌풍을 일으켰다.

영역 확장 중인 웹 전용 콘텐츠

이 프로그램의 성공으로 기존 방송의 문법을 비트는 재기발랄한 웹 전용 콘텐츠가 넘쳐날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과 모바일용으로 제작되는 10분 내외의 웹드라마 또한 방송 산업의 새로운 ‘먹을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2013년 2월 한국 시장에 처음 등장한 웹드라마는 초창기엔 기업들의 홍보 영상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 들어 신선한 소재의 작품들이 인기를 끌며 네이버, 다음 등 대형 포털 사이트를 비롯해 지상파 방송사, 연예기획사, 영화제작사 등이 속속 뛰어들고 있다. 시장 전망이 밝자 웹드라마 관련 스타트업과 중소콘텐츠 제작사들도 웹드라마 제작에 나서고 있다.
한 방송업계 관계자는 “결정적인 히트작이 없어 웹 전용 콘텐츠에 대한 협찬을 주저하던 광고주의 관심이 이번 <신서유기> 성공을 계기로 웹예능에 쏠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신서유기>는 중국을 촬영 장소로 고르고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인 QQ와 콘텐츠 독점 공급 계약을 맺었다. <런닝맨> <나는 가수다> <아빠 어디가> 등 중국에서 불고 있는 예능 한류도 기대해봄 직하다.
동시에 인터넷상에 욕설과 비방이 넘치고 노골적인 광고를 담은 콘텐츠가 웹예능이라는 외피를 쓰고 쏟아질 수 있다. 나 PD는 “이번에는 제작 기간이 짧아 협찬받을 시간이 없었지만 다음 프로젝트에는 대기업 중소기업(광고를) 다 받겠다”고 말했다. 그러니 치킨 이름 대기 게임에서 언급된 ○○치킨이 다음 편 주요 소재로 등장하지 말란 법도 없다. 요즘 쏟아지는 웹드라마에 대해서도 간접광고(PPL)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매회 다른 제품의 PPL을 하는 PPL 기반의 웹드라마 ‘올씽즈컴퍼니’가 제작되기도 했다.

방송과 통신(인터넷)을 융합한 콘텐츠의 심의 기준 필요

그런데 <신서유기>처럼 많은 사람이 찾아보고 그에 걸맞은 영향력을 갖는 콘텐츠에 최소한의 여과장치가 없다는 건 아쉽다. CJ E&M은 <신서유기>에 대해 ‘전 연령대 시청 가능’이라고 스스로 등급을 매겼지만 이 프로그램을 유통시키는 네이버는 방송사업자가 아니어서 방송법상 심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 ‘방송 프로그램의 외피를 썼지만 인터넷에만 유통돼 방송은 아닌’ 방송과 인터넷의 융합 콘텐츠는 방송법이 아닌 정보통신망법의 규율 대상이다. 이럴 경우 음란물이나 불법성을 띤 정보가 들어 있지 않은 이상 규제하기 어렵다. 인터넷상에서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 때문이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류지영 새누리당 의원이 <신서유기>를 예로 들며 “지상파 방송에서 접할 수 없는 비속어나 광고 등을 내보낸 웹 전용 콘텐츠에 아동, 청소년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방통위는 웹 전용 방송 콘텐츠에 대한 심의 대책을 강구하기로 했다. 이를 계기로 방송과 통신(인터넷)을 융합한 콘텐츠를 심의한 명확한 기준이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웹툰의 성공을 잇는 웹소설, 웹드라마 등이 등장하며 짧은 시간에 즐기는 문화 콘텐츠를 뜻하는 ‘스낵 컬처(snack culture)’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기기가 보급되면서 언제 어디서나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된 덕분이다. 이제 대중문화는 출퇴근길 버스를 기다리는 잠깐의 시간을 때우기 위해 가볍게 소비되고 있다. 두뇌를 자극하기보다 감성을 건드려야 하고 재미에 충실하지 않으면 ‘핵노잼(정말 재미없다는 뜻의 인터넷 용어)’으로 외면당한다. 어느 날 맛있는 스낵처럼 포장돼 인터넷에 등장한 <신서유기>를 비롯한 웹 전용 콘텐츠가 백해무익한 패스트푸드로 전락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문화+서울

글 염희진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사진 제공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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