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 새로운 소리의 섬

서도밴드는 서도(보컬)·김성현(건반)·연태희(기타)·김태주(베이스)·이환(드럼)·박진병(퍼커션)으로 구성됐다. 이들의 등장과 열풍에는 그들의 음악을 알리는 방송 미디어(풍류대장)가 있었지만, 창작 국악의 체질 변화도 원인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창작 국악이 국악기를 중심으로 진행되던 2000년대와 달리, 2010년대에는 가사 달린 노래 장르가 더 강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전통음악의 보존과 전승이라는 임무의 쇠사슬을 끊고 나온 목소리의 아이들은 제 목청을 내세운 밴드를 결성했고, 프런트 보컬이 돼 대중 앞에 섰다. 소리꾼 이희문이나 추다혜차지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열린 ‘소리꾼들의 시대’와 흐름을 타고 그들은 인디음악은 물론 가요계와도 직간접적으로 호환됐다. 오디션 프로그램도 새로운 국악을 소재 삼아 방송을 꾸려나갔다. 서도밴드는 이러한 ‘미풍’을 배경 삼아 ‘돌풍’처럼 등장했다.
서도밴드에게 2021년은 너무 바쁜 해였다. 6월 첫 미니 앨범 <Moon: Disentangle>을 발매했다. 9월부터 12월까지는 ‘힙한 소리꾼들의 전쟁’을 내세운 JTBC <풍류대장>에 참가해 이름을 알렸다. 그들의 화려한 출현은 음악계가 ‘조선팝’으로 새롭게 열리는 순간이었다.
밴드의 중심에는 서도가 있다. 그의 학습기와 전력^前歷은 서도밴드의 중요한 정체성을 형성한다. “5살 무렵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국악 학원을 놀이터처럼 다녔습니다. 학원에서 가야금병창·한국무용·사물놀이·판소리 등을 배웠고, 결국 판소리 전공으로 국립국악중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이어 국립국악고등학교 진학을 목표로 준비했는데 입시에서 떨어졌죠. 생각지도 못했는데 인생에 첫 브레이크가 걸린 거였습니다. 이후 검정고시를 거쳐 동아방송예술대 실용음악과에서 작곡을 전공했습니다.”
운이 좋아 해군 군악병으로 입대해 음악으로 일관할 수 있었다. 한국의 남성 음악가들에게 군복무를 어디서 하느냐는 알게 모르게 중요하다. 특히 군악대의 경우가 그렇다. 사회와 단절된 환경이지만, 음악을 전공하는 같은 또래 전우들과의 만남은 때로는 음악의 씨앗이 될 때가 있다. 전역 후에는 밴드나 앙상블 활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해군 군악병으로 복무할 때 마음 좋은 상사를 만나 뜻깊은 군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물놀이와 보컬 활동은 물론 피아노 등 여러 악기를 다루었고, 군악대가 참여하는 다양한 공연 무대에 올랐죠. 경력 단절이 아니라, 음악과 함께 주어진 새로운 환경이었기에 제 음악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
연태희도 서도와 군복무를 함께 하면서 인연을 맺게 됐다. “그때도 서도는 남달랐어요. 노래하면 판소리적인 느낌과 R&B 같다는 느낌이 들곤 했죠. 그래서 전역 후에 서도가 밴드 활동을 제안했을 때 고민 없이 함께했습니다.”

바다. 조선팝의 파도를 몰고 오다

서도밴드의 결성 시기는 2018년이다. 국악방송이 주최하는 ‘21C한국음악프로젝트’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국악계에는 국악을 응용해 만든 창작곡을 격려하고 알리는 경연의 장이 꽤 많다. 이를 통해 전통음악은 오늘의 음악과 함께 호흡하고, 젊은 국악인들은 대중적 활동의 터를 닦는다. 특히 21C한국음악프로젝트가 그러하다. AUX·고영열·강태관· 이상 등도 <풍류대장>에 출전하며 전력을 쌓았다.
2021년 서도밴드가 <풍류대장>에서 선보인 ‘바다’도 ‘21c한국음악프로젝트’ 출전곡이었다. 서도는 프랑스 서부 해변에서 얻은 영감으로 이 곡을 빚었다. 바다에 묻고 싶은 말, 또 바다가 그에게 할 것 같은 말들을 가사로 만들었다. 당시 장려상에 그쳤지만, 이를 계기로 서도밴드는 본격적으로 박차를 가하게 된다. 퍼커션을 맡았던 박진병은 대회 이후 서도에게 본격적으로 밴드 활동을 제안했다.
밴드 뱅크와 싱어송라이터 신지훈과 함께해 온 김태주, 가야금 밴드 아야금과 블랙가스펠그룹 디아코니아의 연태희가 함께했다. 서도는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고, 대한민국 대학국악제를 준비하다 합류한 김태주는 “새롭고 멋진 음악을 하는 같은 학교 동기들인 그들을 멀리서만 바라보다가 박진병의 권유로 본격적으로 함께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환은 “원래 멤버가 입대하면서 합류”했다. 박진병은 “멤버들의 음악 취향이 이처럼 각기 다른 밴드가 있을까 싶다”며 “곡 작업할 때 다양하게 시도하고 생각하는 기회와 시간을 늘 함께 갖는다”고 한다.
2019년 제11회 대한민국 대학국악제에서 대상을 차지한 서도밴드는 같은 해 KBS국악신예대상에서도 대상의 영예를 안는다. 김성현은 “대부분 그렇듯 호기심과 재미로 시작했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 과정과 결과를 하나씩 쌓다 보니 지금의 서도밴드가 있게 된 것”이라고 한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서도밴드는 지금처럼 주목받지 못했다. 국악의 소리와 악기를 이용한 밴드나 앙상블의 운명이 늘 그렇듯 잠깐의 주목을 끝으로 영원한 고별을 고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JTBC 프로그램 <풍류대장>에서 ‘바다’를 부르고 있다.

조선팝. 시대의 음악을 디자인하다

오늘날 음악의 장은 이종교배의 현장이다. 여러 음악이 섞여 만드는 혼선과 혼돈은 오히려 정리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닌, 오히려 새로운 음악을 위한 연료가 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새로운 소리의 전사들은 자작곡의 제목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음악관을 부력화하는 장르명을 고안하기도 한다.
서도밴드의 등장은 ‘조선팝’이라는 장르명의 등장이었다. 서도의 목청은 우리가 잊고 있던 ‘조선’ 소리에 닿아 있고, 멤버들이 구성하는 소리의 구조물은 ‘팝’의 동시대성을 담보한다. 이처럼 국악적 요소와 함께 태어난 음악은, 한때 각 음악의 특성과 무관하게 ‘퓨전국악’이나 ‘크로스오버 국악’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오늘날 새 음악과 함께 등장하는 새로운 장르명은 음악가들과 음악을 대변하는 브랜드이자, 음악계의 물줄기와 갈래를 세련되게 확장하는 명사가 되고 있다.
“‘조선팝’이라는 단어에 대한 댓글이 인상 깊게 다가와요. 서도밴드를 연상시키며 캐릭터를 부여하기 위해 조선팝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해 왔는데 그 빛이 조금씩 나타나는 것 같아요.”(김성현) 조선팝에 대해 김태주는 “세상 어디에도 없던 장르를 대변해 주는 말”이라 하고, 이환은 “서도밴드만의 장르”라 한다. “때로는 ‘조선팝이 뭐냐’라며 비난 섞인 댓글도 있긴 한데, 어느 팬이 ‘서도밴드의 음악은 조선팝 말고는 표현을 할 수 없다’라고 써서 변호해 주기도 하더라고요.”(연태희)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장르의 지대를 탄탄하게 하기 위해 짓는 그들만의 음악이다. 서도밴드는 각자의 느낌을 모아 공동으로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음악을 만든다. 대체로 음악의 뼈대를 잡는 이는 서도다. 그러고 나면 멤버들의 색과 콘셉트에 맞춰 수차례 편곡 과정을 거친다.
연태희는 “먼저 콘셉트와 느낌에 대해 소통하고 걸맞은 구조를 잡아가며 덧입히는 과정을 거친다”고 말한다. “재미 삼아 ‘이건 어때?’ 하고 던진 아이디어가 선택돼 무섭게 곡을 쓴 적도 있어요.” 늘 그렇듯이 “더 좋게 쓰고 싶은 욕심”(연태희)으로, “원석을 세공하는 듯한 과정”(김태주)으로 음악의 구조를 짓고 부수기를 반복한다.
“지금까지 서로가 가진 음악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고 만든 시간이 많아져서 이러한 과정이 가능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가사를 지을 적에는 주제에 100% 몰입하고 우러나오는 감정들로 풀어내려 합니다. 제가 느낀 공간·온도·날씨·색감 등을 버무려 공감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해요.”(서도)

풍류대장. 예술성과 대중성 사이의 계산기

2021년 <풍류대장>은 이들이 정체성을 다지고, 과감히 밀어붙이는 장르적 혁신의 지렛대가 됐다. 그들은 ‘공연장 관객’ 을 넘어 ‘일반 시청자’와 본격적으로 만난다. 시대와 밀착되고, 전통음악 속의 상상력을 길어 올리며 지내왔는데, 경연이 진행되는 동안 매번 와닿는 대중의 취향은 그들이 그간 느껴보지 못하던 공기와도 같았다.
이를 통해 멤버들의 생각과 경험은 다양하게 성장했다. 김성현은 “예술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유연한 움직임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박진병은 “전통음악적 요소를 잘 스며들게 하는 고민과 방법”을, 김태주는 “대중의 피드백을 통해 밴드의 방향성”을, 이환은 “확신을 갖고 작업할 수 있는 자세와 방법”을 배웠다. “음악의 탄생은 개인의 의지로만 쉽게 완성되는 게 아니라, 공동의 아이디어와 움직임으로 완성되는 것”(김성현)이라는 깨달음도 갖게 됐다.
<풍류대장>에서 이들의 기억에 자리 잡은 대표곡은 무엇일까. 그 곡들이 아마 서도밴드의 현주소일 것이다. 멤버들은 대표적으로 ‘매일 매일 기다려’와 ‘바다’를 꼽는다.
‘매일 매일 기다려’는 “그동안 가요 커버를 작업한 적이 없는 서도밴드에게 도전이었고, 메시지와 에너지가 완벽히 표현된 곡”(서도)이다. “원곡과 전혀 다른 과감한 편곡과 해석”(김태주)이 더해졌고, “서도밴드만의 색깔이 잘 배어 나와 빠져들면서 연주한 음악”(박진병)이며, “<풍류대장>에서만 가능한 의상·배경 등 시각적인 것도 신경을 많이 쓴 무대”(이환)였다.
‘바다’는 최종회에서 우승을 안겨준 곡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곡은 2018년 21c한국음악프로젝트 출전곡이다. 당시 대회의 규정상 가야금·피리 같은 국악기가 전면에 나섰다면, <풍류대장>에선 피리가 빠지고 거문고가 대거 합류하며 눈길을 끌었다. 현을 거세게 내려치는 거문고 특유의 타악적인 연주법과 ‘서도 사운드’가 관중을 압도했다. 연태희는 “편곡자들과 함께 서도밴드의 색채를 더욱 다채롭게 만들었고, 서도만의 국악적 색채를 아껴오다가 과감히 터뜨린 순간”이었고, “음악에 걸맞은 무대를 만들어내는 스태프와의 협업이 빛난 순간”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과 시간이 녹아들어 ‘바다’는 “관객의 반응을 통해 확신을 갖게 된 곡”(이환)이 됐다.
이외에도 서도밴드를 기억하게 하는 곡은 멤버마다 다르다. “감정을 극한으로 토해”(서도)내고, “내면의 분노와 파괴적인 메시지”(김성현·이환)를 담은 ‘향기 없는 꽃’, “기타의 선율이 살아 있으며”(연태희) 경연이 열리는 동안 “주위 사람들의 극찬을 받았다”(박진병)는 ‘뱃노래’, “베이스기타의 존재감”(김태주)이 살아 있는 앨범 수록곡 ‘City lights’ 등이다. 서도밴드는 안팎으로 계속 진화하고 있다. 멤버는 서도를 중심으로 늘 ‘밴드’되지만, 한편으로 각자의 음악 활동을 통해 개체적으로도 진화한다. 김성현은 드라마·영화 가요의 작· 편곡에 능하다. 박진병은 디제잉을 즐기고, 이환은 싱어송라이터 오현진의 세션을 맡고 있다. 김태주는 서도밴드에 더욱 집중하고자 하고, 연태희는 기타 선율에 노래를 입히며 자신만의 색채를 가꿔나가고 있다.
현재는 <풍류대장>이 끝나고 5월까지 진행하는 전국 콘서트가 급선무다. 이를 통해 조선팝의 감염력을 단단히 보여줘야 한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새 음원과 단독 콘서트도 구상하고 있다.
끝으로 조선팝의 마력과 매력으로 함께하고 싶은 당대의 음악가들이 누구냐고 물어봤다. 강산에(박진병·김태주)를 비롯해 이적(연태희)·스팅(서도)·Sucozy(김성현), 미술가나 연극인(이환) 등과 함께 조선팝의 매력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