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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2월호

춤과 영상을 하나로 합하다 댄스필름의 융성기

코로나19 창궐 이후 댄스필름이 융성하고 있다.
극장이 문을 닫으면서 무대를 잃은 무용가들이 영상을 통해 활동을 이어가고,
기존 공연과 축제가 온라인 상영으로 빠르게 전환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댄스필름은 무대 춤을 영상화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춤과 영상이 융합해 탄생한 이 장르는
어떻게 형성됐으며 얼마나 다양할까.

이와 연출, 김보라 안무 <시간의 흔적> ⓒSTUDIO OFF-BEAT

댄스필름의 시작

19세기 말 영상매체가 발명됐을 때부터 무용가들은 중요한 피사체 가됐다. 영상이 ‘움직이는 사진’이라면 춤은 움직임을 대표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1894년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이 무용가 루스 세인트 데니스의 춤을 찍었고, 영화감독 조르주 멜리에스는 <매직 랜턴> (1903)에 13명의 무용가를 출연시켰다. 유성영화가 개발되자 뮤지컬영화가 인기를 끌며 프레드 아스테어, 진 캘리 등의 스타 무용가가 등장했고, 이후 서사 영화, TV 쇼와 다큐멘터리, MTV 뮤직비디오 등에서 무용가들이 종횡무진 활약했다.
새로운 길을 꿈꾼 이들도 있었다. 20세기 초의 무용가 로이 풀러Loie Fuller는 영화감독의 피사체에 머무르기보다 스스로 창작자가 됐고, 1940년대 미국 아방가르드 영화감독인 마야 데런Maya Deren은 할리우드 영화나 무대 춤과는 다른 새로운 장르를 제시했다. 로이 풀러와 마야 데런은 무대 춤과 구별되는 독립적인 예술 형식인 댄스필름의 선구자가 됐다.
오늘날 댄스필름은 춤과 영상이 결합된 다양한 장르를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자 독립적인 예술 형식을 지칭하는 좁은 개념이다. 제작 목적에 따라 크게 무대 춤을 보존하기 위한 기록용 영상, 무대 춤을 관객이 감상하도록 재해석한 관람용 영상, 그리고 독립적인 예술 형식으로 구별된다.
기록용 영상은 무대 춤을 재공연하고 연구하려는 목적으로 제작되기에 그 자체로는 흥미롭지 않다. 모든 무용가의 동작과 등퇴장 등을 명확히 찍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관람용 영상은 일반 대중에게 공연실황의 생생함과 안무가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촬영 및 편집 기술을 도입해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일반적으로 공연 단체는 자체 기록 영상을 보유하되 관람용 영상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무관중 온라인 공연’ 이 번성하면서 관람용 영상이 중요해졌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서울세계무용축제, 서울국제댄스페스티벌 인 탱크, 세종국제무용제 등 기존 무용 축제들이 온라인으로 진행되면서 관람용 영상이 폭증했다. 특히 봉쇄 조치가 확산됨에 따라 영국 내셔널시어터나 러시아의 볼쇼이 극장 등이 고화질 공연 영상을 무료로 배포하면서 화제가 됐고, 한국에서도 예술의전당이 만든 고화질 영상인 ‘SAC on Screen’ 이 큰 호응을 얻었다. 이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ARKO Live’나 국립극장의 ‘가장 가까운 국립극장’처럼 우수작의 고품질 영상을 제작 하는 데 많은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무대 공연과는 또 다른 매력

독립적인 예술 형식의 경우 시대나 맥락에 따라 댄스필름Dancefilm·코 레오시네마Choreocinema·비디오댄스Videodance·스크린댄스Screendance 등으로 불렸으며 통일된 명칭은 없다. 무대 춤이 공연자와 관람자가 모인 극장에서 발생하고 사라지는 춤이라면 댄스필름은 시공간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 창작가들은 들판에서, 물속에서, 폐공장에서 춤췄고 현실에선 불가능한 방식으로 돌고 뛰고 굴렀다. 데런의 <카메라를 위한 안무 습작>(1945)에선 무용가가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다가 거실에서 느리게 공중으로 뛰어올라 풀숲으로 착지한다. 이처럼 안무가와 시네마토그래퍼가 협업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댄스필름의 매력이다.
하지만 댄스필름은 라이브 공연이 지닌 현장감을 생생히 전달하기 어렵거니와 현란한 촬영 및 편집 기술에 밀려 움직임이 지니는 운동감각이 지워지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무대 춤이 갖는 예측 불가능성이 없다. 그동안 안무가들이 댄스필름에 소극적이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안무가에게 댄스필름이 선택이 아닌 필수 가 되면서 제한점은 또 다른 가능성으로 탐색되고 있다.
그동안 댄스필름은 축제를 중심으로 유통되고 향유됐다. 뉴욕의 댄스필름협회 DFA가 주관해 1971년에 시작된 ‘Dance on Camera’를 비롯한 여러 축제가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2017년에 서울무용영화제와 천안춤영화제가 등장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무대 춤과 댄스필름 간의 경계가 흐려졌다. 기존의 춤 축제들이 온라인 상영을 병행하거나 댄스필름 섹션을 추가했고, 국립무용단, 경기아트센터, 대구시립무용단 등 무대 춤을 주로 해온 단체가 댄스필름 제작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ARKO Dancefilm AtoZ’나 국립현대무용단의 ‘Dance on Air’, 국립발레단의 ‘Beyond the Stage’처럼 유튜브 채널에서 댄스필름 시리즈를 운영하는 기관도 있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Art Change Up’처럼 온라인 미디어 예술 활동에 대한 지원금도 많아졌다. 지금 활동하는 무용가 대다수가 댄스필름을 만들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 과연 댄스필름의 융성기라 하겠다.

정옥희 무용연구자 | 사진 제공 국립현대무용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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