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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4월호

책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과 《시의 나라에는 매혹의 불꽃들이 산다》 시인의 황혼녘
수십 년 온몸으로 문학을 살아낸 시인들의 나라에는 무엇이 살까. 무엇이 남아 그들을 계속 쓰게 했을까. 코로나19가 휘몰아친 ‘이 시국’ 속 미국의 계관시인 도널드 홀(1928~2018)과 등단 51년을 맞는 문정희 시인의 산문집이 나란히 나왔다.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동아시아)과 《시의 나라에는 매혹의 불꽃들이 산다》(민음사)다. 홀은 아흔 살로 타계하기까지 여든이 넘어서도 매일 글 쓰는 일을 거르지 않았으며, 문 시인은 여고생으로는 한국 최초로 시집을 냈던 인물이다. 이들 문학의 원천으로 들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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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하게 늙음을 마주하기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 | 도널드 홀 지음, 조현욱 · 최희봉 옮김 | 동아시아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도널드 홀은 미 의회도서관이 임명하는 ‘계관시인’의 칭호를 얻은 인물이다. 2010년에는 미 정부가 자국 문화 발전에 공헌한 예술가에게 주는 최고 영예인 ‘국가예술훈장’을 받았다. 열두 살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70년 이상 40권이 넘는 책을 출간했다. 그에게는 글이 곧 삶이었다.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은 그가 여든이 넘어서 쓴 에세이 14편을 모은 책이다. 오랜 세월을 살아낸 노(老)시인의 인생 통찰이 돋보인다. “서른 살은 겁나는 나이였고 마흔 살이 되던 날은 술을 많이 마신 탓에 눈치채지도 못한 채 지나갔다. 50대가 최고였는데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 60대가 되자 50대의 행복이 연장되기 시작했다.”(18쪽) 인생이 10년 단위로 흘러간다고 말한 시인은 60대 이후의 시간에 대해서는 “마치 다른 우주로 여행을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우주로의 여행과 같은 노년의 삶을 맞이하는 시인의 자세는 ‘유머’와 ‘위트’다. 그에게 늙음은 휠체어를 타고 미술관에 가면 줄을 서지 않아도 되고, 어머니 말씀처럼 같은 탐정소설도 여러 번 읽을 수 있는 이점도 준다.(등장인물 중 누가 범인인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나 대체로 ‘불편하고 쓸쓸하다’는 걸 밝히는 데도 시인은 거침이 없다. “내 난제는 죽음이 아니라 늙음이다. (…중략…) 어제는 안락의자에 앉은 채 잠이 들었다. 나는 앉아서 잠 드는 사람이 아니다. 매일매일 게으름이 나를 무기력하게 한다.”(198쪽) 늙음은 전에 없던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그럼에도 시인이 의연할 수 있음은 기본적으로 현실 인식이 담백한 덕이다. 죽음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는 많은 퓰리처상 수상자들이 극빈자 묘소에 안치된다는 사실을 전하며 “우리는 시인이 살아 있을 때 그에게 관심을 갖지만, 보통은 죽음이 그들을 사라지게 한다”고 말한다. “내 불멸성은 아마도 장례식 후 6분이 지나면 소멸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문학은 제로섬게임이다.”(174쪽) 그렇기에 그는 “죽기 전까지 삶은 계속된다”는 명제에도 누구보다 충실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시인은 탄식하고 우울해하는 것보다는 창가에 앉아 새와 헛간과 꽃들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무기력함도 잊게 만드는 창작열이 있었다. 커피를 만들고 알약을 삼키는 일상은 똑같지만, 매일 다른 것을 읽고 쓰면 각기 다른 날이 된다고 그는 고백한다. 시인의 그런 날들 때문에 그가 떠난 지 2년이 지나서도 우리는 그의 글을 더듬는다. 장례식 후 6분이면 불멸성이 소멸한다고 시인은 말했던가. 그는 맞고 또 틀렸다.

시인의 마음속에 아직도 타오르는 불꽃 《시의 나라에는 매혹의 불꽃들이 산다》 | 문정희 지음 | 민음사

도널드 홀의 글이 꺼져가는 불꽃에 가깝다면 문 시인의 글은 활활 타오르는 ‘현재 진행형’ 불꽃이다. 그의 산문집 《시의 나라에는 매혹의 불꽃들이 산다》는 여행기이자 시작 노트다. 시인은 일찍이 미국 뉴욕 유학 생활을 경험했으며, 스웨덴 ‘시카다상’을 비롯한 국제문학상의 수상자이자 14종의 번역서를 펴냈다. 그는 프랑스 낭트부터 중국 홍콩과 난징, 일본 도쿄에서부터 이탈리아 베니스와 이스라엘 텔아비브, 칠레 산티아고와 자메이카 킹스턴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의 문학 행사와 시상식에 초청돼 얻은 국제 감각을 글에 풀어냈다.
시인은 프랑스 파리의 지하 동굴 바에서 프랑스와 포르투갈,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레바논의 시인을 앞에 두고 모국어로 시를 읊은 경험을 풀어내며 “가난하고 부자인 시인 모두가 나의 에로스”(137쪽)라고 말한다. 베네치아에서 목격한 명품 패션의 허무, 인도 뉴델리에서 느낀 얕은 센티멘털의 위험성 등 타국에서 만난 시인의 시적 사유도 오롯이 담겨 있다.
책에는 19편의 시가 탄생한 배경이 함께 실렸다. 가령 <고철>이라는 시는 김수영 시인의 묘소에서 시작됐다. 동료 문인들과 함께 찾았던 묘소에서 시비에 박힌 시인의 얼굴이 휑하니 뚫려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누군가 시인의 얼굴 부분의 동판을 파내 고철값에 팔아먹었다. “뚫린 구멍 속으로/ 자유를 위하여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안다는/ 그런 바람이 날고 있었지”(142쪽)
펄펄 끓는 작가 혼으로 나이마저 가늠할 수 없던 박경리, 남편 김환기 화백을 떠나보낼 때 “사람의 몸속에 그렇게 많은 눈물이 있는 줄 몰랐다”는 김향안 등 그에게 영감을 준 문화계 인사와의 교류담도 매혹적이다. 그의 시에 수많은 사람이 있는 까닭을, 절로 짐작게 하는 글이다.

글 이슬기_서울신문 기자
사진 제공 동아시아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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