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세대 주택의 다채로운 변신

어느 동네에서나 봄 직한 오래된 붉은 벽돌 건물. 1층을 차지한 카페와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하 1층의 뚫린 공간을 제외하고, 2층부터 4층까지는 다세대 주택이던 시절 그대로 나뉘어 있다. 층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공간들이 누군가의 살림이 아닌 예술작품들로 채워진 것이 큰 차이. 다양한 아트 컴퍼니들이 입주해, 호마다 개성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벌래 갤러리는 주로 젊은 아티스트들의 실험적인 작품을 전시하는 곳. 키치한 감성의 관객에게 알맞다. 꽃집이라기보다는 꽃으로 예술을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오차원. 화사한 꽃들만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삼청동에 있는 갤러리 수가 작가를 중심으로 하는 전시공간이라면, 이곳에 위치한 수 한남은 수집가를 위한 좀 더 아늑한 갤러리다. 10평 남짓한 공간에 극장 시설을 갖춘 루프 미디어센터. 이곳에서는 미디어아트 전시는 물론, 다큐멘터리나 예술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또 예술대학 교수들이 마련한 오픈공간에서 학생들이 작업과 전시를 하기도 하고, 사진 갤러리와 디자인 스튜디오, 미술품 투자 회사 열매컴퍼니도 입주해 있다. 5층은 추후 아티스트들을 위한 레지던시로 활용할 계획이다. 규모는 작지만 어느 곳보다 알찬, 그야말로 복합문화공간이다.
다세대 아트 싸롱은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을 지낸 서진석, 사진작가 김용호, 영화제작자 정영범이 의기투합해 문을 연 곳. 이태원의 비어 있는 다세대 주택을 발견하고, 그곳의 역사와 개성을 살려 예술공간으로 꾸몄다. 다세대 주택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다세대 아트 싸롱’으로 부르지만, 이름에는 한 가지 의미가 더 있다. ‘다세대’와 발음이 비슷한 불어 ‘tasse de’는 ‘(한) 잔의’라는 뜻을 갖고 있다. 한 잔의 커피 또는 와인과 함께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뜻한다.

한 잔의 예술

뭐니 뭐니 해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은 먹고 마시는 곳이다. 이태원에도 유명한 카페와 와인 바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커피와 와인을 마시면서 예술작품을 눈앞에서 즐길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다세대 아트 싸롱의 1층 카페는 요즘 인기 카페의 필수 요소라 할 수 있는 인테리어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전시하기 좋은 공간으로 꾸몄을 뿐이다. 그리고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예술작품들이 이곳에 멋을 더한다. 최근 유행하는 소품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먹고 마시며 일상을 보낼 수 있다. “보통의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예술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곳, 어느 카페 또는 와인 바와도 차별성 있고 독특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게 정영범 대표의 말이다. “전시회가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찾아가서 보는 게 아니라, 편하게 생활공간에서 즐길 수 있어야 진짜 예술 아닐까요?”
다세대 아트 싸롱은 개관을 겸해 지난 10월 24일과 25일에 한일 교류전 <50/50> 릴레이 퍼포먼스를 개최했다. 올해 초에는 전체 입주자들과 공동 전시를 기획할 예정이다. 아티스트들의 장르와 개성이 제각각 달라 전시 테마나 전시 방식도 여느 전시와는 다를 것 같다. 어느 날 카페에 들렀더니 작은 실내악 공연이 펼쳐지고 있어도 놀랄 일이 아니다. 경계도 없고, 장벽도 없는 예술공간. 삼성미술관 리움과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 맛집들로 둘러싸인 다세대 아트 싸롱에 가면, 미술과 음악, 요리를 모두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