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눈뜨다: 아시아 미술과 사회 1960s-1990s> 전시 전경.
미술, 현대사회에 눈을 뜨다 <세상에 눈뜨다: 아시아 미술과 사회 1960s-1990s> 1. 31~5. 6,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아시아의 근대화 역사는 결코 쉽지 않다. 식민지와 탈식민, 독재와 민주화를 거치며 이념 대립, 전쟁, 민족주의 등 질곡의 역사를 차례로 지나왔다. 그렇다고 아시아 국가들이 모두 같은 길을 걸었던 것도 아니다. 제국주의를 주창한 일본과 식민지였던 나라들의 역사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그것만큼 다르다. 그래서 아시아 현대미술은 비슷한 맥락에 서 있지만 다른 이야기를 풍부하게 펼쳐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는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사이, 아시아 예술가들이 다양한 목소리로 관습과 억압에 저항했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단순히 부조리에만 목소리를 높인 것이 아니라 미술에서도 다양한 시도가 나타났다. 새로운 미술운동이 집중적으로 탄생한 시기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도쿄국립근대미술관, 싱가포르국립미술관, 일본국제교류기금 아시아센터가 공동 주최, 4년간 관련 조사와 연구를 진행한 끝에 탄생했다. 한국과 일본,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인도, 미얀마, 캄보디아 등 아시아 13개국 작가 100여 명의 작품 170점이 나왔다.
전시는 크게 세 섹션으로 나뉜다. 1부 ‘구조를 의심하다’는 급변하는 사회에서 미술 개념 또한 새롭게 정의되는 양상을 다룬다. 회화나 조각 등 전통 매체 대신 신체나 일상의 재료가 등장한다. 이승택의 <하천에 떠내려가는 불타는 화판>이 대표적이다. 전통적 조각과 조형 원리를 거부한 작가는 화판에 불을 붙여 한강물에 떠내려가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관습적 미술에 대한 저항인 셈이다.
2부에서는 1960년대 이후 급격한 근대화와 산업화에 의해 새롭게 탄생한 도시환경이 작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볼 수 있다. ‘예술가와 도시’를 주제로, 도시를 바라보는 다양한 예술 태도가 펼쳐진다. 오윤의 <마케팅 I : 지옥도>(1980)는 도시화로 인해 극명해진 사회적 모순을 비판하고, 린이린의 <린허 거리를 가로질러 안전하게 옮기기>(1995), 김구림의 <1/24초의 의미>(1969), 데데 에리수프리아의 <미궁>(1987∼1988)은 일상으로 침투한 도시화와 그 그늘을 살핀다.
3부 ‘새로운 연대’에선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주목한다. 군사정권과 민주화를 경험한 한국, 태국, 필리핀, 대만, 인도네시아 등에서는 작가들이 집단적 연대를 통해 사회적 금기와 이데올로기에 도전했다. 한국의 ‘민중미술운동’, 태국의 ‘태국예술가연합전선’, 필리핀의 ‘카이사한’ 등이 그 예다.
전시의 핵심은 ‘현대사회에 눈뜬 미술’이다. 도망가지 않고 아픈 현실을 직시했던 작가들의 작업은 그만큼 통렬하고 아프다. 미술관 측은 “아시아 현대미술의 새로운 경향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의 정치적 자각, 이전과 다른 예술 태도, 새로운 주체의 등장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라고 강조했다. 한국에서의 전시는 5월 6일까지 이어지며, 이후 6월 14일부터 9월 15일까지 싱가포르국립미술관에서 순회전을 갖는다.
<Min Joung-Ki> 전시 전경.
민중미술의 가능성을 엿보다 민정기 개인전 <Min Joung-Ki> 1. 29~3. 3, 국제갤러리
민중미술의 시장성 탐구일까. 국내 최대 상업 화랑인 국제갤러리는 1980년대 ‘현실과 발언’의 동인이자 민족미술협의회 출신의 대표적 민중화가 민정기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지난해 4월 27일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배경으로 자리한 산수화 <북한산>으로 최근 유명세를 탄 작가다.
민정기 화백은 1980년대 초 스스로 ‘이발소 그림’이라 지칭한 작품들로 주목받았다. 키치적인 이발소 그림을 표방, 1970년대 당시 국전을 중심으로 주류를 이룬 순수미술과 추상미술에 저항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인문학적 고찰과 민중사관이 녹아 있는 산수풍경과 산수화 지도를 그렸다. 이번 전시도 이 같은 맥락에 있다. 그간 산세와 물세 등 지형적 요소를 중점적으로 다뤘지만, 이번엔 도심이 등장한다.
청계천, 사직단, 세검정, 백사실계곡 등 곳곳을 돌아다니며 채집한 생생한 풍경이 과거의 풍경과 병치돼 독특한 풍경화를 완성한다.
하나의 작품에 여러 시점과 시간이 섞여 있는 것. 2016년 작 <유 몽유도원>의 경우 조선 초기 안견의 <몽유도원도> 이미지에 현재의 부암동 풍경이 더해져 부암동의 과거와 현재가 한데 자리 잡았다.
이번 전시에는 1980년대 흑백 판화를 비롯해 구작 21점과 신작 14점이 나왔다. 국내 최대 화랑으로 해외 거장을 주로 소개하는 국제 갤러리에서 민중미술을 전시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갤러리 측은 “새로운 시도”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자신을 ‘민중미술 작가’로 규정짓는 것에 대해 “특정한 틀에 다 집어넣는 것은 그 개별성을 너무 단순화할 위험이 있다. 창작의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좋다”라고 말했다. 전시는 3월 3일까지 열린다.
- 글 이한빛_헤럴드경제 기자
-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국제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