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미지로 다가온 두 작품은 모두 신선했다. 전통을 소재로 한 공연의 클리셰를 깼다. <새닙곳나거든>은 서체부터 전통적인 분위기가 강했으나 레이아웃 등을 단순화해 현대적인 분위기를 지켰다.
<시>는 출연자들의 의상부터 컬러와 소품까지 모던한 미니멀리즘을 보여줬다. 도대체 어떤 작품이기에 포스터부터 남다르게 말을 걸어올까?
두 작품은 공동 창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새닙곳나거든>은 조선시대의 관기 홍랑이 남긴 시조 한 수에서 출발하여 연출 강량원, 기획 석재원, 배우 지현준, 음악 김시율, 작가 임영욱이 익숙하지 않은 방식의 만남을 통해 서사 대신 18폭의 그림 같은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네루다의 시를 재구성한 <시>는 유태평양과 장서윤이 창자뿐 아니라 작창으로 참여했다. 양손프로젝트의 양종욱, 양조아 배우는 워크숍 과정을 통해 부분적이고 기능적인 참여가 아니라 존재와 감각 훈련을 이끌어냈다.
두 작품의 연출은 신체 훈련을 강조하는 극단 ‘동’의 강량원과 양손 프로젝트의 박혜선이 각각 맡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통 음악극 분야에서 그리 활발하게 연출 활동을 하지 않았던 두 사람이 연출자로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연출은 스스로 낯선 실험을 즐긴다. 기존의 대본과 연출 문법으로 역할을 재현하고 주제를 전달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낯선 작업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낯선 작업, 낯선 만남 등 낯선 경험에서 나올 수 있는 감정과 상황을 오히려 기다리며 배우도 몰랐던 자기 자신, 연출도 몰랐던 자기 작품에 대한 잠재 역량을 길어 올리며 새로운 작품을 창작한다. 관객들의 경험은 저마다 별개이지만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계획된 대로 찍는게 아니라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라는 매력이 있는 것처럼, 두 연출 또한 연출자가 지시하는 과거의 방식이 아니라 작품에 참여하는 모두를 제각각 작업의 주체로, 작업의 ‘당사자’로 만들어 작품의 완성도를 더욱 더 높인다. 이는 창작 작업의 민주화로 진화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우란문화재단 시선: 새닙곳나거든> 공연 모습.
조선시대 문장가 최경창과 관기 홍랑의 세 번의 만남과 죽음이란 이별<우란문화재단 시선: 새닙곳나거든> 1. 21~1. 27,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
남녀의 사랑 이야기지만 남자배우만 홀로 등장한다. 잘생긴 지현준 배우를 보고 싶어 하는 관객의 바람을 무너뜨린 채 먹으로 물감으로 고통으로 범벅된 얼굴로 나타난다. <새닙곳나거든>의 마인드 매핑에 떠오르는 단어 대신 숱한 몸짓으로 공간과 시간을 찍어낸다. 병마에 시달리는 최경창을 달래고, 그를 향한 홍랑의 마음이 피리와 또 다른 음악과 함께 함북 홍원으로 파주의 무덤가로 무시로 상상케한다.
천장과 바닥, 그리고 벽면까지 5면을 둘러싼 산수풍경에 18편의 글과 조명이 포개지고 사라지는 모빌리티 음악극(?)의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막바지 즈음 지현준 배우가 넓은 한지를 찢고 들어간 조용한 움직임은 강렬했다. 작가 임영욱이 왜 “사랑이 어떻게 해서 개인으로 하여금 그 제한적인 테두리를 지우고 비로소 세계와 합일하게끔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는지 직감할 수 있었다.
국립창극단 신창극 시리즈 3 <시> 공연 모습.
창극인가 부조리극인가, 지금까지 이런 창극은 없었다국립창극단 신창극 시리즈 3 <시> 1. 18~1. 26, 국립극장 하늘극장
국립극장 하늘극장에 들어서서 무대를 보는 순간 놀랐다. ‘앗 이런 무대는 하늘극장에서 처음이야.’ 공연 시작 전 내내 극장 안에서는 하하호호 웃음소리 등 파티에서의 소음이 들려왔다. 부조리극 등을 보던 소극장에서나 익숙한 상황이다. 그물스타킹에 높은 통굽의 구두를 신고 소리하는 젊은 장서윤, 창극에 등장해 허공을 가르는 춤을 추는 양조아 배우, 토끼인형 옷을 입고 낭독하는 양종욱 배우, 그리고 붉은 니트에 청바지를 입고 북을 치며 소리하는 유태평양까지 지금껏 보아온 창극과는 거리가 멀다. 칵테일파티 이후 어지럽혀진 공간 속에서 2명의 소리꾼과 2명의 배우는 시를 소리로, 몸으로 연기한다. 제목으로 미루어보건대 생명, 청춘, 사랑, 절망, 안녕으로 순환되는 삶이 시가 되고 노래가 되어 질문을 던진다. 요즘은 실력보다 태도라는 말처럼 소리나 연기보다 작품에 대한 작업 태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두 작품의 리뷰를 준비하면서 지난해 경험한 ‘언서페 서울’이 떠올랐다. 영국에서 시작된 Unusual Suspects Festival로 사회 변화를 위해 다양한 분야의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대안을 찾고 담론을 만들어가는 축제이다. 공연 창작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낯선 이들과의 불편한 경험은 경계를 넘어 스스로에게 열리는 도전이다.
낯설다고 도망쳤던 자신으로부터, 미처 몰랐던 자신에게 다가설 수 있으니, 불편할수록 민낯의 진실과 마주할 수 있으니.
- 글 오진이_서울문화재단 전문위원
- 사진 제공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국립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