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민숙 <1310(박완서)>, mixed media, 61×73cm, 2013.
2 이은주 <박완서>, Pigment Print, 100×66.6cm, 1993, 2018 재제작.
3 기획전 1층.
작가의 내적 특성을 작품으로
전시장인 성북예술창작터에 들어서면 박완서의 사진이 보인다. 이은주 작가의 작품으로 작품명은 <박완서>(1993, 2018 재제작)이다. <중앙 선데이>에 실렸던 사진인데, 당시 최신형 기계였던 대우통신의 워드프로세서 ‘르모’ 앞에 앉아 있는 작가의 모습을 담았다. 얼마 전 모 문예지에서 르모에 대해 얘기하며 박완서를 다룬 부분이 있었는데 휙 하고 지나갔다면 아쉬울 뻔했다. 우측에는 작가의 방대한 작품 연대기가 거주 공간별로 정리되어있다. 작품집도 순서에 맞게 전시되어 시각과 촉각을 만족시킨다. 다른 한편에는 장·단편소설과 에세이의 초판본과 번역본이, 또 다른 한편에는 주요 저작들의 서문이 꽂혀 있어 프롤로그 형식으로 박완서를 볼 수 있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공간 사이에는 조민숙 작가의 <1310 (박완서)>(2013)가 있다. 관계자는 “박완서의 내적 특성을 대나무로 표현한 부조 작품”이라며 “해방과 한국전쟁의 시대 속에서 고투하며 개인적인 상실을 겪었지만 소설과 에세이를 통해 생활 속에서 세밀한 정서를 보여주었던 작가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2층에서 박완서를 좀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데 공간과 공간 사이에 작가의 내적 특성을 표현한 작품을 둠으로써 그 접점을 잘 연결했다.
4 기획전 2층.
5 한승훈 <Re: Sunset>, 싱글채널 비디오, 15분 내외, 2018.
6 김도희 <살갗 아래의 해변: 나목 裸木>, 2018.
흔적을 불러내다
2층은 ‘기억, 상상, 복원’이란 테마로 구성되었다. ‘부재의 고고학’, ‘소박한 개인주의자’, ‘사늘한 낮꿈’이란 소주제로 이루어지며 박완서의 문학작품의 핵심이 다양한 자료와 여러 예술작품을 만나 재해석됐다.
한승훈 작가의 <Re: Sunset>(2018)은 도서관과 헌책방에 있는 박완서의 책들에 남겨진 흔적을 영상화한 작품이다. “박완서가 사라져버리는 기억을 책으로 만들었다면, 그는 그것을 이어받아 오래된 책의 흔적들을 다시 건져내고 그 증거를 디지털 영상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작품 속에서 그 기획의도가 선명히 보였다.
벽면 하나를 가득 채운 김도희 작가의 <살갗 아래의 해변: 나목 裸木>(2018)도 인상 깊었다. 작품 해설에는 “부산이 고향인 작가가 영도 깡깡이 마을의 기억을 탐구하고 낡은 선박의 따개비와 녹을 벗기듯, 벽을 연마기로 갈아내며 그 아래 떨어진 잔해와 먼지를 해변처럼 모았다”며 “진동과 먼지를 동반한 격렬한 과정을 거치자 벽 뒤의 중첩된 지층이 모습을 드러냈고 작가는 삶 속 사연처럼 개인의 경험이 품은 미적 가치를 직관했다”고 되어 있었다. 이에 덧붙여 관계자는 “김도희 작가는 나목 전체의 짙은 상징적 이미지를 박완서의 정서적 원형으로 인식하고 깊이 공감했으며 회색 계열의 페인트가 여러 겹 쌓인 기존 성북예술창작터의 벽 위에, 상처를 품고 새로 돋는 살결과 생명을 상상하며, 색을 올리고 작업을 했다”며 “자신의 몸에 깃든 경험을 후벼 파듯 깨움과 동시에 다시 새기는 것은 박완서의 소설 쓰기와도 상통한다”고 했다.
- 글 전주호 서울문화재단 홍보팀
- 사진 제공 성북예술창작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