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책 한 권, 혹은 그를 찾기 위한 10만 권
<믜리도 괴리도 업시>, 성석제 지음, 문학동네
작가 성석제야 ‘스토리텔링 애니멀’로 이름난 지 오래지만, 이번
단편집에서 특히 도드라진 작품은 <몰두>다. 그는 전작 <재미나는 인생>에서 몰두에 대한 특유의 정의로 세상의 ‘책 잉여’들에게
독보적 지지를 얻은 바 있다.
“개의 몸에 기생하는 진드기가 있다. 한 번 박은 진드기의 머리는
돌아 나올 줄 모른다. 죽어도 안으로 파고들어가 죽는다. 나는 그
광경을 ‘몰두’라 부르려 한다.”
그런데 이번 몰두는 조금 다르다. 북풍에 꽃눈이 촘촘하게
매달린 가지를 떨고 있는 목련이 바라다보이는 이층 서재에서 시작한다. 이전의 ‘몰두’가 육체적·동물적 행위였다면, 이번 ‘몰두’는 차라리 관념적 몰입에 조금 더 가깝다.
1만 권 남짓한 책이 있던 외삼촌의 서재. 새로 집을 고치고
서재를 정리하는데, 열아홉 살 주인공은 외삼촌 조수를 자청한다. 사실은 대학 입학 용돈 정도를 욕심내며 벌인 일이다. 꼬박 일
주일이 지나 드디어 마지막 한 권이 남은 순간, 외삼촌이 묻는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책이 억만 권, 옛날에는 십만을 억만이라고
했다. 그 정도는 될 거다. 그 많은 책을 읽고 그 중 십분의 일 정도만 가리고 뽑아 모은 것은 바로 지금 네게 물어본 그런 궁극의 책을 찾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이치를 규명하게 해 주는 책의 결정판, 즉 단 한 권의 책을 ‘이피터미(Epitome)’라고 하지. 자 이 방에 있는 책은 모두 네 손과 내 손을 거쳤다. 너는
이 책들 중에서 진정한 이피터미가 어떤 책인지 알겠느냐?”
같은 질문을 당신에게 던진다면 어떨까. 당신 인생 단 한 권의 책을 꼽을 수 있을까.
이것이 허당 사내들의 카니발이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천명관 지음, 예담
이쯤해서 두 번째 ‘스토리텔링 애니멀’로 고개를 돌려 보자.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의 천명관. 겁이 없는 걸까, 판단력이 부족한걸까. 2016년의 대한민국에서,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라고
포효하는 ‘만용(蠻勇)’이라니.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남아일언중천금’ 계열의 의리와 호탕함이 아니라, 읽으면 읽을수록 허술하고 못난 사내들이 허당을 잇따라 짚는다. 성석제의 성스러운 ‘이피터미’와 달리, 이 장편의 캐릭터들은 번지르르한 허풍 뒤에 숨은, 어리석고 추접스러운 뒷골목 사내들만 박스 단위로 등장한다.
흙구덩이에 파묻힌 뒤 그 흙을 파먹으며 사흘 만에 살아나왔다는 전설의 조폭이지만 현실에서는 애송이한테도 피떡 되도록 두들겨 맞는 인천 연안파 양 사장, ‘굵은 바늘로만 오백 바늘’
별명을 지닌 무적의 행동대장이지만, 실제로는 코가 예쁘다는
이유로 동성(同性)의 감방 동기에게 끌리는 형근, 에로 영화감독으로 변신해 ‘연기 지도’ 재미에 빠져 사는 사채업자 박 감독.
이 너절한 남자들을 유혹하는 서사의 핵심 엔진은 35억 원짜리 종마(種馬)와 20억 원짜리 밀수 다이아몬드다. 작가 특유의
‘촉’이 있었던 걸까. 최순실 딸의 금메달 경주마도 겨우 10억 원이라는데, 천명관의 종마는 그 세 배를 훌쩍 넘는다. 어쨌거나. 경마 조작 임무를 띠고 망치로 말 무릎 때리러 갔던 ‘비정규직 조직원’(바야흐로 건달도 청년실업 시대!) 울트라가 ‘형님’에게 잘 보이려고 트럭에 아예 종마를 싣고 온 절도사건, 그리고 송도에서
열리는 주얼리 박람회에 출품된 콩고 다이아몬드를 바꿔치기하려는 사기 사건이 얽히면서, 말 그대로 비루한 것들의 카니발이
펼쳐진다. 위선이라고는 터럭 하나도 발견하기 힘든 이 생고기의
세계를 통해, 어쩌면 우리는 금기를 위반하며 카타르시스를 만끽하는 주인공들의 쾌락을 대리만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이라는 흥, 결과에서 얻을까 과정에서 얻을까
<몰두>와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를 관통할지 모르는 옛이야기가 하나 있다. 서예의 거성이라 불리는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의 왕희지. 그 왕희지의 다섯째 아들 이름은, 후대들이 헛갈리게도 왕휘지였다. 성인이 된 왕휘지가 어느날 밤 휘영청 달이 빛나는 것을 보면서 시를 읊다가 멀리 호수 건너에 사는 친구가 보고
싶어졌다. 하인을 불러 배를 내었고, 어둠과 추위, 바람을 뚫고
친구 집 문전에 다다른 순간, 갑자기 그냥 집으로 되돌아가자고
했단다.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왕휘지는 “내가 친구를 보려고
하는 마음의 흥이 일어 갔다가 그의 집 앞에서 흥이 다하였으니,
굳이 친구를 만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마음. 밤새 배를 타고 호수 건너 찾아갔던 몇 시간 동안의
흥(興). 친구가 집에 있건 없건, 친구가 자신을 반기건 그렇지 않건, 그 밤의 흥만큼은 온전히 나만의 즐거움이었다. 인생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결과인가 과정인가. 단 한 권의 책의 제목을 아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그 책을 알기 위해 읽어야 했던 억만 권의
책이 중요한가. 날은 춥고, 책 읽기는 즐거울 따름이다.
- 글 어수웅
-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 사진 제공 문학동네, 예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