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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2월호

연극 <백석우화>와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의 시와 삶이 무대로
평안도 방언을 맛깔나게 기워 아름다운 시로 탄생시킨 시인 백석. 그의 삶과 사랑과 시가 비슷한 시기에 나란히 무대에 오른다. 이윤택 연출의 연극 <백석우화-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과 오세혁 연출의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눈이 푹푹 쌓이는 밤”이 머지않은 12월은 백석을 만나기에 좋은 때다.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1 연극 <백석우화> 중 한 장면. 백석의 생애에는 한국의 근대화와 분단의 역사가 오롯이 새겨진다.

1912년 평안북도 정주 출신. 오산고등보통학교 졸업, 도쿄 아오야마 학원에서 영문학 전공. 1930년 조선일보 신년현상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와 아들> 당선, 1935년 시 <정주성>을 같은 신문에 발표해 시인으로 등단. 광복 후 월북, 1963년 무렵 협동농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연구자에 의해 사망연도가 1995년으로 수정. 본명 백기행(白夔行).
시인 백석의 생애는 분단 시대 우리 역사를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다. 평안도 토속 방언을 꽉꽉 채워 넣은, “들어도 무슨 말인지 가늠하기 힘든 북방 언어들”로 쓰인 시는 “한국인의 얼과 넋을 황홀할 정도로 빼어나게 담아낸다.”(장석주 <나는 문학이다>)
백석의 시와 삶이 무대에서 되살아난다. 12월 18일까지 명륜동 30스튜디오에서 공연하는 연극 <백석우화-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과 내년 1월 22일까지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다. 두 작품 모두 굴곡진 현대사에서 맑고 서정적인 시어를 남긴 백석을 담담하게 그린다.

백석의 생애에 방점 둔 ‘백석우화’
<백석우화-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11. 25~12. 18, 30스튜디오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연극 <백석우화-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은 백석의 시와 에세이, 편지를 판소리, 정가, 발라드로 노래하거나 읊으며 시인의 삶을 재현한다. 시 <여우난 곬족>에 소리꾼 이자람이 가락을 붙인 판소리로 시작한 공연에서, 백석·임화·박용철·오장환·김억·노천명 등 당대 문인으로 변신한 배우들이 작품 속 명문장들을 노래와 몸짓으로 전한다.
문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작품은 단연 모던 보이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다. 이들이 작품 속 나타샤의 정체를 찾으면서 백석의 연애사도 소개된다. 첫눈에 반해 동거했던 기생 자야(김영한), 친구 신현중의 아내가 된 박경련, 소설가 최정희와의 사연이 펼쳐진다.
월북 후 만난 아내 피아니스트 문경옥이 김일성을 찬양하는 무대에서 쇼팽의 <혁명>을 연주하자 백석은 절망에 빠진다. 버림받은 백석은 쓸쓸히 시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을 노래하지만, 러시아 작가 솔로호프의 민중소설 <고요한 돈강>을 번역하기 위해 남한행을 사양한 채 고향인 평안도 정주에 남기로 한다.
시간 순으로 백석의 삶을 재현하는 작품은 얼핏 신파적으로 보이지만 작품 낭독과 이야기가 켜켜이 쌓이며 관객의 감정을 흔든다. “동시에도 사상을 담아야 한다”는 북한 정권에서 백석의 작품은 사상성이 부족하다고 비판받고, 삼수갑산 집단농장에 유폐된 백석은 당의 지시로 남한에 보내는 ‘회유 편지’까지 쓴다. 끝내 광대처럼 허연 분장을 한 백석이 라디오 부스에서 절규하듯 회유 편지를 읽는 대목은 처연하다. 작품의 맨 마지막, 스스로 시를 쓴 종이를 태우며 “시는 매일 썼지만 세상에 내놓을 것들이 없어 다 하늘로 올려보냈다”는 마지막 대사는 긴 여운을 남긴다.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작·연출을 맡았다. 기본기 탄탄한 배우들의 합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백석 역을 맡은 오동식 배우는 이 작품으로 지난해 동아연극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2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한 장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흰 대나무 숲을 배경으로 한 여백 많은 무대로 나타냈다.

백석 작품 속 ‘나타샤’를 찾아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11. 5~2017. 1. 22, 드림아트센터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후략)’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백석의 동명의 시 속 ‘나타샤’에 관한 이야기다. <백석우화>가 백석의 생애 전체를 그린다면 뮤지컬은 백석과 기생 자야(김영한)와의 사랑 이야기에 방점을 둔다. <백석우화> 속 감초처럼 등장한 자야의 시선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풀어간다.
두 사람의 사연이 일반에 널리 알려진 것은 1996년 김영한이 국내 3대 요정(料亭)으로 불린 시가 1000억 원대의 대원각(현재는 길상사)을 법정스님에게 시주하면서다. 재산이 아깝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영한은 “그 사람(백석) 시 한 줄만 못하다”고 답해 더 화제를 모았다. 자야는 백석이 김영한에게 붙인 애칭이다.
작품은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담담한 목소리와 음악으로 이어간다. 백발 노인이 된 자야 앞에 옛사랑 백석이 옛 모습 그대로, 말쑥한 정장 차림의 모던보이로 나타나서는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두 사람은 첫눈에 반하지만, 백석의 부모는 기생과의 결혼을 완강히 반대한다. 부모를 피해 백석은 만주로 떠나나 자야는 경성에 남게 되고, 잠깐의 이별이라 생각했던 것이 전쟁과 분단으로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만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 작품에는 백석과 자야, 그리고 둘의 이야기를 연결해주는 ‘사내’가 등장한다. 사내는 등장인물, 백석의 시, 해설자로 변신하며 극을 이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여우난 곬족>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등 백석의 서정시는 피아노 반주와 함께 애절하고 서정적인 가락이 돼 흐른다.
신예 작가 박해림이 대본을 쓰고, 뮤지컬 <무한동력>의 음악감독 채한울이 곡을 붙였다. 대학로 재주꾼 오세혁이 연출을 맡는다. 강필석·오종혁·이상이가 백석 역, 정인지와 최연우가 자야 역을 번갈아 맡는다.문화+서울

글 이윤주
한국일보 기자
사진 제공 연희단거리패,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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