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기리에 방송된 tvN <응답하라 1988>이 막을 내렸다. 30년을 훌쩍 뛰어넘은 오늘, 주인공들은 그때 그 쌍문동 골목에서 일어난 일들을 추억하며 ‘청춘 굿바이’를 외쳤다. 드라마는 ‘응답하라’ 시리즈가 이어온 ‘여주인공의 남편 찾기’ 구조에 기초해 로맨스가 전면에 드러나면서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정환)’ ‘어남택(어차피 남편은 택이)’이라는 신조어까지 남겼지만, 개인적으로는 10화 ‘MEMORY’편의 한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극중 미란(라미란)은 안방 장롱에 가득 쌓인 구질구질한 물건들을 남편(김성균)이 잠든 틈을 타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한다. “미란아~그거 그대로 가져온나~ 하나도 버리지말고~” 깜짝 놀란 부인은 못마땅해하면서도 슬그머니 물건들을 집 안으로 가져온다. 그날 밤 미란은 물건들 더미에서 오래전 녹음해둔, 돌아가신 시어머니와 가족들의 즐거웠던 순간이 음성으로 담긴 낡은 카세트테이프를 발견하고는 이를 성균과 함께 카세트 데크에 재생하며 옛 생각에 눈물을 보인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인 만큼 느끼며 느낀 만큼 사랑하게 된다’고 한다. 살림에 여유가 생기고 물밀듯이 밀려들어오는 ‘새것’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기에 가난하고 힘들던 시절의 물건을 그저 버리고만 싶던 미란은 더 이상 남편의 물건들을 치우지 않는다.
그 많던 삐삐는 다 어디로 갔을까
서울문화재단은 서울시와 함께 박물관도시 서울 프로젝트 ‘서울을 모아줘’ 캠페인을 연중 실시하고 있다. 이 캠페인은 서울시민의 일상생활 유산을 발굴해 가치를 부여하고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일기장이나 사진, 장난감, 전자기기, 예술품 등 개인적 또는 사회적 가치를 지닌 모든 물품에 관한 정보와 이야기를 수집하는 작업이다. 즉 ‘아는 만큼, 보인 만큼, 느낀 만큼 사랑해온 우리 주변의 생활 자원을, 누가 무엇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조사해 발굴하고 그 의미를 전하는 일이다.
유럽의 거리를 걷다 보면 골목마다 크고 작은 박물관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오랜 시간 사람들의 손때 묻은 물건 하나하나에도 의미가 담긴 것을 보며, 끊임없는 변화에 익숙한 한국인은 물건 자체가 주는 기쁨과 아름다움에 더해 ‘누군가의 추억’이라는 소중한 감성까지 선물받곤 한다. 이 캠페인도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했다.
‘그 많던 삐삐는 다 어디로 갔을까’
‘어린 시절 쪼그리고 앉아 한 장 한 장 넘기던
그 만화책들은 누가 가져갔을까?’
이처럼 서울시민의 역사적인 시간과 공유해온 물건들을 버리고 사라지게 하는 대신 모두 모아서 현세대는 물론 다음 세대, 또 그다음 세대 사람들도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시민이 만드는 크고 작은 박물관’을 세우고 싶은 것이다.
삐삐, 게임기, 사전, 생활통지표, LP판, 지폐, 카세트테이프, 워크맨 등 다양한 주제로 가득 채우면 어떨까? 박물관도시 서울 프로젝트 ‘서울을 모아줘’ 캠페인의 수집 작업은 오는 2018년 신설 예정인 시민생활사박물관, 로봇박물관, 서울공예박물관, 사진미술관, 민속음악전시관, 봉제박물관, 한양도성박물관, 서서울미술관, 도시재생박물관의 콘텐츠 구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해당 물품들은 가치에 대한 평가에 따라 ‘서울특별시 미래유산’ 인증 대상 후보가 된다.
캠페인에 함께하기를 원하는 시민은 평소 수집해온 물품들의 사진을 사연과 함께 서울문화재단 홈페이지(www.sfac.or.kr)나 ‘서울을 모아줘’ 페이스북(www.facebook.com/museumseoul)에 게재하는 방법으로 참여할 수 있다. 특히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계기로 대중문화의 중심에 자리 잡은 ‘복고’를 콘셉트로 서울시민이 공감할 수 있는 각종 이벤트 및 관련 콘텐츠를 진행하고 있다. 한 달 만에 15만 명의 시민이 접할 정도로 반응은 최고 수준. 여기에 위에 언급한 신설 예정 박물관 외에도, 트렌드박물관, 키덜트박물관, IT박물관, 축제박물관 등이 복고 열풍과 맞물려 주목을 끌고 있다.
서울문화재단은 올해 ‘서울을 모아줘’ 캠페인에 참여한 시민 소장품을 바탕으로 전시를 기획하고 있으며 주제별, 대상별 컬렉터들과 네트워크 오프라인 행사도 예정하고 있다.
잡동사니가 아닌, 한 사람의 열정과 역사
‘서울을 모아줘’ 캠페인에 참여한 시민의 사연 속에는 자신의 수집력을 자랑하고 싶은 ‘덕후’도 찾아볼 수 있다. 한영수문화재단의 한선정 대표는 아버지 고(故)한영수 작가의 1950~60년대 사진 1만1,000컷과 사진 관련 예술 서적을1,000권이나 가지고 있다. 당시의 흑백사진에는 서울 거리의 다양한 풍경과 인물들의 모습이 담겼다. 그때 사진을 보면 시민들이 한겨울 눈이 내리는데 우산도 쓰지 않고 목도리도 하지 않은 채 눈을 그대로 맞고 다닌다. 6?25전쟁 후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생활상을 말해주는 듯하다. 수집가, 여행작가, 수필가,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는 현태준 씨는 철 지난 껌종이부터 장난감, 책, 만화책, 전단지 등 28년전부터 세상의 온갖 잡동사니를 모으고 있다. 현재까지 수집한 물품이 60만 점 정도인데, 지금도 전국 각지의 장난감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다. 1980년대 우표를 많이 모은 이지혜 씨, 마이클 잭슨이라는 한 가수의 애장품만 200여 점을 애지중지 수집한 자유손 씨, 본업인 치과의사에 방송인, 만화애호가이면서 우표 덕후로 알려진 김형규 씨도 있다. 그들은 말한다.
“무엇이든 미치지 않고서는 모을 수 없지요. 이사할 때 짐이 많아 귀찮다고 버리고, 집 안에서는 보관할 장소가 없다면서 내팽개친다면 남아 있는 보물은 하나도 없겠지요. 마니아가 세상을 바꿉니다. 기적은 거창한 것이 아니에요. 기적이란 너와 나의 만남이고 주머니 속의 것을 꺼내주는 것입니다. 저의 것을 다른 사람들과 보면서 이야기하고 추억을 나누면 이 세상이 더 아름다워지겠지요. 이 물건 하나하나에는 저만의 시간도 있지만 당시 사람들이 살아온 역사와 추억이 녹아 있어요. 미친다는 것은 그만큼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시민들이 문화재로 생각하는 것은 유명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이다. 하지만 ‘서울을 모아줘’ 캠페인은 예비 문화재나 시민들의 소소한 일상생활 속 물건들이 그 대상이다. 캠페인을 통해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장한 물건의 가치가 조명되고 공유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며칠 전 <응답하라 1988> 동룡(이동휘)의 집 촬영지가 최규하 전 대통령 가옥이라고 해서 그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많은 물건 중 눈에 띄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열쇠마다 이름표를 붙인 방 열쇠 꾸러미였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기 전에 한 집안의 가장으로, 꼼꼼하게 집안 곳곳을 두루 살펴봤을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이 그 물건을 통해 느껴졌다.
※ 문의 02-3290-7192~4
- 박물관도시 서울 프로젝트 ‘서울을 모아줘’ 캠페인 수집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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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 기록(사진, 편지, 일기장, 공연 티켓 등)
- 의식주 관련 각종 생활용품(교복, 주방도구, 간판 등)
- 개인 애장품(책, 전자기기, 장난감, 우표 등)
- 상업(광고 전단지, 오래된 가게의 간판 등)
- 여가생활(통기타, 하모니카 등)
- 서울지역 특정 사건, 인물에 관련된 유물 등
- 로봇, 공예, 민속, 사진, 봉제, 도시재생, 한양도성 관련 등
- 글 최문성
- 서울문화재단 문화자원기증센터 팀장
- 그림 손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