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사는 세상
스팍TV에서 가장 핫한 콘텐츠를 선보이는 배욱진(배간지), 김미희(여행자MAY) PD. 그들이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그들만의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이 동영상으로 옮겨지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생활을 들여다보자.
눈부시진 않지만 인상적인 성과다. 배간지(본명 배욱진)를 만난 9월 5일, 서울문화재단 유튜브 채널 뉴스피드의 첫 화면은 배간지가 직접 출연했거나(Q와 A의 대단한 대결, 스파-크 뉴스) 제작한 영상(일간배간지)으로 가득했다. 배간지는 홀로 출연할 때는 1980년대 레트로 스타일로, 다른 감독과 합을 맞출 때는 그의 고향인 진해 스타일로, 그의 집에서 룸셰어로 살고 있는 외국인의 일상을 찍을 때는 애정 어린 관찰자로 등장한다.
상상이 현실로
스팍TV를 시작하기 전부터 인플루언서로 어느 정도 자리 잡았거나 여러 시도를 해온 PD들에 비하면 배간지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유튜브 스트리머다. 스스로를 “유튜브 소비자에 가깝다”고 표현하지만 유튜브에 대한 이해도는 누구보다 높다. 서비스 초기부터 미국 프로야구 영상과 국내에서 듣기 어려운 뮤지션의 노래를 많이 접해온 탓이다. 2년 전쯤부터 ‘백수골방’ 등 영화 리뷰 채널을 보며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이 자기 콘텐츠를 생산하면서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지금도 유튜브 프리미엄 서비스만을 이용해 음악을 감상하고, 미국 ‘VOX’ 채널을 구독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을 들인다. 프리미어를 이용한 영상편집도 유튜브로 공부하고 있다.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며 언젠가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는 그는 재도전 끝에 2017년 서울문화재단의 <생활문화MCN>에 한 달간 참여했고, 올해 본격적으로 시민PD 활동을 시작했다. 그가 서울문화재단을 거점으로 활동하게 된 것은 이곳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내용과 맞아떨어지는 소재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는 “평소 지켜보던 동네를 구경하고 서울문화재단이 추천하는 전시와 공연을 촬영하고 편집해 영상으로 선보인 일은 수년간 잠들기 전에 상상했던 일이었어요. 재단 사업 참여는 상상을 현실로 옮기는 기회이자 도전이었죠”라며 지난해의 활동을 떠올렸다. “올해에는 팀 작업을 비롯해 다른 PD들과 의견을 나누는 장이 마련돼 혼자 고민할 때보다 동기부여가 돼요. 처음에 팀원들과 시도했던 뉴스 출연이 좋은 반응을 얻어 공동 작업 제의를 받은 것도 기분 좋고요.”
1 ‘일간배간지’의 첫 에피소드. 런던에서 온 텐진 씨의 ‘붜링붜링 서울라이프’.
2 ‘Q와 A의 대단한 대결’.
자유와 흥이 있는 삶
최근 시작한 브이로그 형식의 콘텐츠는 매우 다른 느낌을 준다. 일반적인 유튜브 콘텐츠와 달리 배간지의 브이로그에서는 등장인물이 말을 하는 동안에도 시종일관 음악이 흐른다. 영상을 보고 있으면 그의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이 콘텐츠를 만드는 형식에도 그대로 녹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배간지는 외국인과의 룸셰어로 주거비를 해결하며 밤도깨비 야시장에서 장사도 해봤다. 작가 친구의 전시 설치를 돕고, 각종 페스티벌과 이벤트 기획 아르바이트를 했으며(최근 아르바이트했던 곳에 정식 채용됐다), 저렴한 비행기 표를 구해 마음 맞는 친구와 고량주를 마시러 중국에 다녀왔다. 주제는 ‘서울에서 잘살기’. 자유든, 흥이든, ‘힙’이든, 그의 삶에는 무언가가 흐르고 있다. 이번에 처음 시도한 브이로그도 남해의 한 빵집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내려간 밤에 편집을 마쳤다.
“문화생활에 초점을 맞춘 VJ 스타일의 브이로그를 찍어보고 싶었는데 재단의 이정훈 영상감독님이 제가 사는 이야기를 듣더니 하우스셰어와 관련해 일상 브이로그를 찍자고 제안했어요. ‘붜링붜링(boring boring) 서울라이프’에 등장하는 텐진은 1년 넘게 저희 집에서 살고 있는데, 대학원을 수료한 후 영어선생님으로 일해요한 달도 안 돼서 따릉이를 타고 다니는 룸메이트가 있는 반면, 텐진은 한국에서 산 지 7년이 됐는데 지난해까지도 버스 환승 시스템을 몰랐어요. 말 그대로 ‘붜링붜링한’ 서울 생활을 하고 있죠. 일상부터 시작해 막걸리 만드는 취미와 해방촌 지역 커뮤니티로 이야기를 넓혀가고 있어요. 그러다 보면 오래 쌓여온 서울의 시간, 역사적인 거리, 특별한 공간과 지역 활동 등을 외부인의 시각으로 찾아내고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남보다 시작이 늦은 데다 영상제작 경험도 적어 화려한 영상미보다는 생각의 흐름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의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의 소감과 계획을 물었다. “2007년에 ‘레스페스트 영화제’에서 일했는데, 그때 흔한 TV 다큐멘터리 형식을 벗어나 하위문화를 다룬 영상을 접하고 자극을 받았어요. ‘유튜브 킬 더 비디오 스타’라는 섹션도 있었죠. 당시 친구들을 모아 다큐멘터리를 찍으려고 했는데, 이젠 그중에서 저만 영상을 하고 있어요. 시민PD단에서 뜻이 맞고 색이 비슷한 사람들과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을 맞춰보고 있는데, 재미있는 프로젝트로 작은 성공을 거두고 시민PD 바깥에서도 함께하는 동료로 남길 바랍니다.”
- 글·사진 이준걸 서울문화재단 미디어팀
- 사진 제공 서울문화재단
3 출간 기념 북 콘서트 중인 여행자MAY.
4 <때때로 괜찮지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았어> 표지.
여행. 듣기만 해도 설레는 단어다. 여행하는 삶을 한 번쯤은 꿈꾸지만 현실의 우리는 비행기 표 한 장을 끊을 때도 망설이고 또 망설인다. 그럴 때 찾는 것이 바로 여행 콘텐츠. 차오르는 여행 욕구에 유튜브를 검색하다 보면 ‘여행자MAY’라는 채널을 만날 수 있다. 배낭을 메고 카메라를 든 채 씩씩하게 여행하는 그의 모습은 여행에 대한 갈증을 풀어준다. 여행자MAY가 서울문화재단의 스팍TV와 함께한다.
“‘여행자MAY’ 채널을 운영하는 여행 크리에이터이자, 여행작가인 김미희입니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2017년, 여행 블로그를 보며 대리 만족하던 그는 돌연히 퇴사를 결심하고 세계 일주를 시작했다.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이었다. 많은 것을 포기하고 얻은 기회였기에 소중한 시간을 ‘기록’하기로 했다. 특별한 것 없어 보인다고? 아니다. 그의 기록은 다른 유튜버들과는 조금 다르다.
“제가 여행을 시작할 때만 해도 여행 크리에이터가 많지 않았어요. 또 여행 관련 영상들은 정보 제공, 후기가 주를 이뤘죠. 여행하는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때 행복하거나 힘들었는지, 그리고 다녀와서는 어떻게 되었는지 계속해서 알려주는 채널은 없더라고요. 문득 ‘내가 한 번 시작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 영상은 여행지에서 느낀 감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영상을 전공하지도, 배워본 적도 없는 그는 스스로를 영상 전문가라고 칭하지 않는다. 하나하나 독학으로 시작해 이제 슬슬 장비에 눈뜬 ‘성장 중’인 크리에이터다. 성장 중이라고 했지만 ‘여행자MAY’의 구독자는 이미 5만 명을 돌파했다. 인터뷰 중간 라이브 방송을 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셀럽 같았다. 구독자가 많은 만큼 재미난 일화도 있지 않을까.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을 때, 구독자 분을 같은 기차 칸에서 만난 적 있어요. 여행 중에 구독자를 만난 일은 처음이었죠. 한데 열차 안에서 잘 씻지 못한 모습을 계속 보여줬더니 저에 대한 환상이 다 깨졌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여행자MAY’ 채널의 주 콘텐츠는 여행이지만, 서브 콘텐츠로 자신의 일상을 공유한다. 특이하게도 ‘고시원 라이프’를 소개한다. 경제적인 문제로 선택한 고시원이지만 주변의 걱정과 우려와는 달리 나쁘지 않은 고시원 생활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여행 중에는 주로 도미토리에서 생활하는데, 고시원은 혼자만의 공간이라 좋아요. 하지만 고시원은 혼자 사는 공간만은 아니에요. 밥 때가 되면 식당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이고 그 속에서 친분을 쌓아가죠. 마치 여행 중 게스트하우스에 묵는 것 같은 느낌을 줘요. 이런 일상의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정보를 전달하는 콘텐츠만큼 감정을 공유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일도 녹록지 않다. 이야기를 나누며 콘텐츠의 원천이 궁금했던 찰나, “사전 기획을 따로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적잖이 놀랐다. 높은 완성도의 영상을 위해 사전 기획 단계를 거치는 대부분의 크리에이터들과는 다른 행보다.
“저는 영상이 좋아서 여행 크리에이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제 여행을 하고, 계속 여행하고 싶어서 여행 크리에이터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여행 전에 기획을 하고 그 기획에 따라 여행하면 그건 제 여행이 아닌 느낌이 들더라고요.” 사전 기획 대신 온전히 자신만의 여행을 즐기고, 사후 기획과 편집을 진행하는 여행자MAY의 영상은 완성도 대신 오롯이 여행을 즐기는 그의 모습을 담는다.
5,6 여행자MAY 유튜브 채널 영상 장면.
7 ‘고시원 라이프’를 소개하는 브이로그.
기획하고 창조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유튜브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여행자MAY는 여행이 좋아 여행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이들에게 현실과의 타협이 필요하다는 말을 전한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저 같은 사람이 시를 읊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여행 크리에이터를 직업으로 삼으면 시를 마음에 품고 수학을 하는 사람이 돼요.”
여행자MAY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으로, 그는 조금씩 자신의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최근에는 영상에 모두 담지 못한 이야기를 모아 여행 에세이를 출간했고, 서울문화재단의 스팍TV에서 시민PD로 활동 중이다. 여러 사람과의 협업, 문화를 가미한 여행을 시작하는 그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다. 조만간 여행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클래스도 열 계획이다.
“예전에 여행에 관한 콘텐츠를 보면 마음이 간질간질했어요. 제가 만드는 이야기를 통해서 많은 이들이 그 간질거리는 감정을, 가슴 한 구석이 차오르는 기분을 느끼면 좋겠어요.”
- 글 장은희 서울문화재단 미디어팀
- 사진 제공 여행자MAY, 더시드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