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뒤덮인 차벽과 이를 기념하는 시민들(촬영: 이한결 작가).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진행 과정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저는 2차 집회 때부터 참석했어요. 여기저기 다녔지만 주로 경복궁 근처에 있었는데 그곳은 문화제를 진행하는 광화문 쪽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죠. 3차 집회 때 100만 명의 시민이 모였음에도 여전히 차벽이 견고하게 서 있고 경찰과 집회 참여자들이 직접 대치하는 상황에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차벽이 집회 현장에 등장한 지는 꽤 오래됐지만 그날따라 무척 거슬리더라고요. 뭔가 환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싶었죠. 그날 다른 장소에서 KBS 취재차량에 몇몇 시민이 항의의 의미로 손팻말과 스티커를 붙인 해프닝이 있었는데, 경찰차에도 그런 식으로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직접적인 구호보다는 이미지가 좋을 것 같았고 자연스레 ‘꽃’을 떠올렸어요. 꽃이 집회나 시위에서 평화를 상징해왔고, 특히 집회에 처음 참여하는 분들도 크게 거부감을 갖지 않을 테니까요. 차벽이 꽃으로 뒤덮이면 멋있겠다는 단순한 아이디어로 시작한 거죠. 사실 혼자 하기에는 규모가 무척 큰 퍼포먼스 같아서 집회 주최 측에서 이런 걸 해보면 어떨까 하고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지금 일을 같이 하게 된 세븐픽처스의 전희재 대표가 그 글을 보고 ‘직접 해보면 어떻겠냐’고 역으로 제안해왔어요. 그래서 바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퍼포먼스를 기획하신 입장에서 감수할 게 적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특히 법적인 부분과 관련해서요.
‘위법이면 안 된다’가 아니라, 이 행위가 ‘위법성을 지녀야 의미 있다’고 생각해서 그 점에 대해 아는 변호사에게 자문했어요. 걱정한 부분은 위법성이 있을 때 여기에 참여한 시민에게 책임이 갈 수도 있다는 것이었는데, 100만 가까이 되는 많은 사람이 행동할 경우에는 아마 대표자인 저에게 책임이 돌아올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럼 할 만하겠다고 생각했죠.
지금까지 총 세 차례 진행하셨는데요(인터뷰는 8차 집회(12. 17)를 앞둔 12월 14일에 진행됐다. 4~6차 집회 때 퍼포먼스가 있었고 7차 집회 때 한 차례 쉬었다). 많은 시민이 호응하면서 퍼포먼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도 나왔죠. 가장 흥미로운 것은 무엇이었나요.
생각보다 정말 많은 분이 호응해준 동시에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신 분도 많았습니다. 저는 일단 차벽이 논쟁의 소재가 됐다는 것 자체로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첫 번째 퍼포먼스를 진행한 날 밤에 시민들이 스티커를 떼낸 해프닝이 가장 흥미로웠죠. 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피드백이었고 미디어에서 이 해프닝을 ‘성숙한 시민의식’이라고 포장하면서 그 지점에 대해 논쟁이 더 불붙었어요. 스티커를 떼는 걸 잘못했다고 보는 이들과 잘했다고 보는 이들이 있는 거죠. 저는 ‘떼면 안 된다’는 입장이었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피력하는 대신 다음 퍼포먼스를 준비할 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스티커를 떼지 않을까’를 고민했어요.
그 결과로 ‘잘 떨어지는 스티커’를 만들게 됐고요.
그래서 또 엄청 욕을 먹었죠(웃음). 모든 피드백을 다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이 퍼포먼스는 어떤 대표성을 띠는 게 아니라 제가 작가로서 참여하는 시위의 한 형태고, 다른 시민이나 작가들은 저와 또 다른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죠.
퍼포먼스를 거듭하면서 느껴지는 변화 같은 게 있나요.
‘착한 집회’ ‘평화 집회’에 대한 논쟁이 촉발됐는데, 이 퍼포먼스가 평화를 전제로 했지만 언론에서 묘사하듯 ‘갇혀 있는’ 평화가 아닌 한발 더 확장할 수 있는 형태로서 ‘평화적인 위법 시위’라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요. 퍼포먼스를 거듭하면서 시민들이 거리낌 없이 차벽으로 다가가서 스티커를 붙이고 직접 메시지를 포스트잇에 적어 붙이는 데까지 나아갔으니 어떻게 보면 많은 분이 그런 저항 행위에 대해 자연스럽고 당당해진 게 가장 큰 성과가 아닌가 싶어요.
집회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 편하게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성과라는 생각이 들고요.
평화를 유지하면서 저항할 방법을 찾아내는 게 우리 같은 예술가들의 몫이 아닐까 생각해요. ‘불법은 곧 폭력’이라는 인식 자체가 이런 계기로 인해 변화하길 바라니까요. 부당한
권력에 대해서 비폭력적으로 저항하는 게 충분히 가능하고
그게 우리의 권리라고 주장하는 것이죠.
네 번째 퍼포먼스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메시지를 전해
보려고 해요. 세 번의 퍼포먼스를 마치고 숨을 고르는 사이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됐는데, 당시 국회 방청석에 있던 세월호 유가족의 모습을 보며 이제는 세월호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얘기하고 진실을 파헤칠 수 있겠구나, 생각했거든요. 꽃과 함께 세월호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퍼포먼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차벽을 꽃벽으로’ 퍼포먼스는 이미지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이나 위법성 등에서 그래피티와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위법성에 대해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엔 어떤 배경이 있을까요.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집회가 잘못된 것’이라는 프레임에 세뇌당했어요. 거기서 조금만 더 벗어나면 공권력의 과격한 진압을 받았고 시민은 졌고요. 그러니 사람들의 생각이 다들 많이 움츠러 있는 것 같아요. 그래피티 같은 것도 호불호가 갈릴 수야 있겠지만 그림이 아름답고 아니고를 떠나, 일차적으로는 ‘불법이니까 하면 안 돼’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 인식을 갖게 된 데엔 문제가 있다고 봐요.
집회 현장에서 퍼포먼스나 인쇄물 등 다양한 형태의 풍자물을 볼 수 있고, 대중매체에서도 현 세태에 대한 풍자가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다양한 평가가 따르는데, 예술가 입장에서 이러한 풍자에 대해 어떻게 보시나요.
일단 이런 현상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집회의 내용이나 분 위기에 따라 풍자, 축제 형태로 나아가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고요. 집회가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가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편견일 테고, 무엇보다 제일 현실적인 부분은, 이렇게 길게 이어지는 집회에서 참여자가 지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게 그런 풍자와 해학일 수 있다는 점이에요. 웃음을 잃는 순간 우리는 질지도 몰라요. 더 많은 상상과 더 많은 재밌는 방식이 동원되는 게, 궁극적으로 우리가 이기는 경험을 하기 위한 현명한 수단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차벽을 무너뜨리기 위한 ‘꽃’도 집회 현장에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겠고요.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란 질문에 대해 한 사진가는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없을지 모르지만 왜 바뀌어야 하는지 보여준다’고 하더군요. 꽃벽 퍼포먼스에 참여한 사람들이 ‘왜 바뀌어야 하는지’ 깨달았을까요.
사람마다 느끼는 게 조금씩은 다 다를 것이고 또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의도한 바가 있긴 하지만 사람들이 모두 그 의도대로 따라와주기를 원하지도 않고 그래서도 안 되겠죠. 답을 내기보다 질문을 던지는 게 예술가의 몫이 아닐까 해요. 그 질문으로부터 사람들이 끊임없이 자발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요.
꽃벽 퍼포먼스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차벽이 없어지는 것’이에요. 다양한 피드백에 대해 반영할 수 있는 부분은 반영하면서, 방향성을 잃지 않고 계속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더라도 다른 집회에서 차벽이 다시 등장한다면, 그것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주체가 각자
스티커를 준비해서 차벽에 붙이는 등 저항의 한 방식으로 이
퍼포먼스가 유지되지 않을까 기대해요. 이러한 방식으로 저항할 수 있다는 경험을 가져가는 게 무척 중요한 것 같아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다음에 더 창의적인 방법으로 저항이 지속될 수 있게 말이죠.
- 글 이아림
- 사진 김창제
- 프로젝트 사진 제공 이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