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길목에서 지역 소멸 시대, 문화의 가치를 찾다
김천에 내려온 뒤 종종 듣는 질문이 있다.
"문화생활은 좀 아쉽지 않으세요?"
처음에는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오랫동안 서울 종로를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터다. 점심시간이면 경복궁 돌담길을 산책하고, 퇴근길에는 서촌 골목을 기웃거리며 작은 전시를 관람하곤 했다. 마음만 먹으면 국립현대미술관의 기획전을 찾거나 세종문화회관의 공연을 예매하는 일이 일상의 반경 안에 있었다. 반면 지방의 문화적 토양은 척박할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실제로 살아본 지역의 삶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얼마 전 김천의 한 도서관에서 소설가 김애란 초청 강연이 열렸다.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를 인구 13만의 지방 도시에서 만난다는 사실 자체가 새삼 신선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이들로 가득 찬 강연장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부터 아이 손을 잡고 온 부모, 퇴직 후 뒤늦게 문학을 공부하는 어르신까지 다양한 세대가 어우러져 있었다. 서울이었다면 치열한 예약 경쟁 탓에 발을 들이기도 쉽지 않았을 자리였다.
그날 객석의 열기를 지켜보며 문득 질문이 수면 위로 올랐다. 우리가 관성적으로 말하는 '지역의 문화적 소외'란 과연 무엇일까. 눈을 돌려보면 지역에도 의외로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공연과 전시, 밀도 높은 강연이 곳곳에서 열린다. 규모는 작을지언정 오히려 사람에 치이지 않는 미덕이 있다. 서울의 대형 전시장 속 인파 틈에서 쫓기듯 작품을 보는 것보다, 지역의 한적한 전시실에서 하나의 작품을 온전히 마주하는 시간이 때로는 더 풍요로운 내면의 확장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결국 문제는 '향유'의 기회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문화를 자생적으로 길러내는 '생산'에 있다. 지역문화가 안고 있는 가장 깊은 고민의 지점도 바로 여기에 위치한다.
재능 있는 청년 예술가들은 결국 서울로 향한다. 미술·음악·문학 등 장르를 불문하고 구조적 이탈이 반복된다. 흔히 이를 경제적 인프라의 차이로만 설명하곤 하지만, 단지 돈 때문만은 아니다. 예술가는 본질적으로 '사람'을 찾아 이동하기 때문이다. 함께 치열하게 토론할 동료, 자신을 자극할 건강한 경쟁자, 그리고 자신의 작품을 진지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봐줄 관객을 갈망한다. 예술은 고립된 개인 안에서 홀로 성장할 수 없기에, 창작자는 더 넓고 역동적인 생태계를 찾아 떠날 수밖에 없다.
더욱 뼈아픈 수수께끼는 지역이 이들을 충분히 포용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다소 불편한 진실이지만, 지역 문화예술계 내부에는 보이지 않는 견고한 벽이 존재한다. 토착 예술인의 오랜 헌신과 노력이 오늘날 지역문화의 기반을 다졌다는 사실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때로는 그 단단한 기반이 새로운 주체의 진입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기도 한다.
'지역성 수호'라는 명분 아래 익숙한 이들끼리 결속하고, 비슷한 얼굴들이 관습적으로 공공사업에 참여하며, 새로운 시도는 거리를 둔 채 조심스럽게 관망한다. 외지에서 온 예술가가 지역에 정착하려 해도 은연중에 밀려오는 배타적인 거리감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지역 소멸은 단순히 수치상의 인구 감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새로운 자극과 사람이 유입되지 않는 '정서적 고립'의 문제에 가깝다. 문화예술 생태계 역시 마찬가지다. 낯선 이들이 경계를 넘어 들어오고, 이질적인 생각이 부딪치며, 새로운 실험이 허용될 때 비로소 내적인 생명력을 얻는다. 변화 대신 익숙함 안에서의 안주를 선택하는 순간, 문화는 활력을 잃고 서서히 노쇠해져간다.
이 지점에서 나는 다시 종로를 떠올린다. 많은 이들이 종로가 문화의 중심지가 된 비결을 역사성에서 찾는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충분한 설명은 되지 못한다. 종로의 진짜 힘은 늘 새로운 존재가 모여들고 섞이는 '개방성'에 있다. 겸재 정선부터 이상·고희동·김환기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시공간의 예술가들이 종로라는 무대 위에서 교차하고 스쳐 지나간다. 가장 오래된 동네였기에, 역설적으로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는 데 가장 유연했던 셈이다. 문화는 보존이 아니라 흐름 속에서 살아남는다.
이제 지역의 문화 정책은 단순히 축제의 개수나 예산 규모를 과시하는 행정 편의주의적 단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국적으로 주말마다 수많은 축제가 소모적으로 열리지만, 축제의 불꽃이 꺼진 뒤 그 자리에 무엇이 축적되는지 묻는 대답은 요원하다. 지금 지역에 절실한 것은 휘발되는 하루짜리 이벤트가 아니라, 그곳에 뿌리내리고 살아갈 '사람'이다. 예술가 한 명이 정착하고, 작은 대안공간이 문을 열며, 지역 도서관에 시민이 자발적으로 모여 책을 읽고 공동체의 서사를 토론하는 일상적인 문화가 지속되는 것. 그것이 지역을 살리는 본질적인 동력이다.
김애란 작가의 강연이 남긴 잔상이 오래도록 지속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대 위의 화려한 연사보다 객석을 채운 시민의 눈빛이 더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기 때문이다. 작가의 호흡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만의 질문을 누에고치처럼 자아내며, 행사가 끝난 후에도 여운을 나누느라 자리를 뜨지 못하던 사람들. 그 풍경 속에서 나는 지역 문화의 진짜 가능성을 보았다.
문화예술은 결국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매개하는 일이다. 지역 소멸의 시대, 문화예술의 진정한 가치는 화려한 메가 이벤트나 건축과 같은 거대한 하드웨어에 있지 않다. 파편화된 개인을 연결하고, 소멸해가는 지역의 기억을 복원하며, 머무르고 싶은 미래를 함께 상상하게 만드는 연대의 힘에 있다.
어쩌면 지역의 미래는 수천억 원짜리 개발 사업이 아니라, 오늘 밤 동네 작은도서관의 켜진 불빛 아래서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역은 생각보다 가난하지 않다. 다만 그 문화적 씨앗이 대지에 깊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건강한 토양과 생태계를 어떻게 조성할 것인가라는 묵직한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을 뿐이다.
글 황훈정 공공의료 행정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