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흐르는 길목에서 축제를 만든다는 것은
예술을 주제로 한 축제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인류의 축제는 대부분 풍요로운 산출물과 계절의 변화, 종교의식, 결혼, 추수와 같은 특별한 사건과 시간을 공동체가 함께 기념하는 데서 시작됐다. 규모가 커지고 형식이 정교해졌을 뿐, 축제의 중심에는 언제나 공동체의 삶과 신앙, 생존이 있었다. 음악과 춤·연극은 사람들의 흥을 돋우고 신을 기쁘게 하기 위한 수단이지, 예술 자체가 축제의 목적인 적은 거의 없었다. 고대 축제의 상징인 그리스의 올림피아 제전이나 메소포타미아의 아키투Akitu 역시 마찬가지다. 예술은 제의와 의례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지만, 축제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예술이 축제의 전면으로 등장한 것은 르네상스 이후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연구자가 예술 축제의 기원을 인본주의의 발현과 연결시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르네상스 시대의 축제가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예술 축제는 아니다. 그러나 이 시기부터 예술은 더 이상 의례를 장식하는 부속물이 아니라 축제의 수준과 도시의 품격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축제의 기능도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사람들의 오락과 화합의 장이던 축제는 권력과 도시의 위상을 드러내는 무대로 변모했다.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은 음악과 미술, 건축과 연극을 통해 자신들의 부와 교양, 정치적 권위를 과시했고, 다른 도시국가 역시 화려한 축제를 통해 도시의 경쟁력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축제에서 펼쳐지는 예술의 정교함과 화려함을 보며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힘과 번영을 체험했고, 그것은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과 정신적 안정감을 제공하는 중요한 장치가 됐다. 예술 작품은 더 이상 축제를 꾸미는 장식이 아니라, 그 자체의 완성도와 경쟁력을 통해 축제의 품격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자리했다.
하지만 예술이 축제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축제는 또 다른 성격을 갖게 된다. 축제는 단순한 문화 행사가 아니라 공동체가 자신을 어떻게 보여주고 싶은지를 표현하는 상징체계가 됐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메디치 가문의 권위를, 바로크 시대에는 절대왕정의 질서를, 근대 이후에는 국민국가의 이상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축제가 활용됐다. 오늘날에는 여기에 도시의 브랜드와 국가의 이미지, 기업의 가치까지 더해졌다. 축제는 문화 외교와 소프트파워의 중요한 수단이 됐지만, 그만큼 프로파간다와도 맞닿아 있다. 공동체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과 특정한 권력이나 이념을 미화하는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얇은 경계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현대의 축제 기획자는 가장 어려운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오늘날의 축제는 더 이상 좋은 공연을 나열하고 그럴듯한 주제를 붙인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어떤 작품을 선택할 것인지, 누구를 초청할 것인지, 무엇을 중심에 놓고 무엇을 주변으로 둘 것인지는 모두 하나의 문화적 메시지가 된다. 전문가들은 축제를 통해 예술의 방향성을 읽고, 사회학자들은 프로그램의 구성과 시의성을 분석하여 정치와 경제의 흐름을 해석한다. 예술은 국경을 초월하는 언어라고 말하지만, 예술 축제는 언제나 특정한 도시와 국가 안에서 기획된다. 바로 이 역설 때문에 현대의 축제는 어느 시대보다 복잡해졌다.
특히 한국과 같은 지정학적 환경에서는 이러한 고민이 더욱 민감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의 예술가와 단체를 초청하는 문제가 얼마나 복잡한 의미를 갖는지를 현장에서 직접 경험했다. 클래식 음악 역시 유럽 중심의 레퍼토리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의도와 무관하게 중요한 문화권이 배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동남아시아와 남미의 뛰어난 음악가와 작곡가들은 여전히 국제 무대에서 충분히 조명받지 못한다. 모두에게 같은 기회와 정성을 기울이고 싶지만, 현실의 예산과 관객의 관심은 언제나 한정돼 있다. 대중의 관심이 적은 예술과 문화에 공공의 자원을 어디까지 투입해야 하는지는 축제를 기획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마주하게 되는 질문이다.
이러한 고민은 문화 정책 전반에서도 반복된다. 한식의 세계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오랜 시간 막대한 예산과 노력을 기울였으나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한국의 문화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한식은 자연스럽게 세계인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초기의 투자와 시행착오는 실패였을까, 아니면 뒤늦게 꽃을 피우기 위한 토양을 만드는 과정이었을까. 문화는 일반 산업과 달리 투자와 성과가 같은 시간 안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때로는 수십 년이 지나 비로소 그 가치가 드러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 정책은 단기적인 성과만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순수한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 축제라면 시장의 선택을 따르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공적 지원을 받는 예술 축제는 시장과 다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공공성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만족시키는 데 있지 않다. 당장의 인기와 소비를 따라가는 것도 아니다. 아직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예술과 문화, 미래의 예술가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공동체의 문화적 시야를 넓혀가는 것, 그것이 공공이 감당해야 할 역할이다. 시장은 현재의 취향을 반영하지만, 공공은 미래의 가능성을 준비한다. 만약 공공이 시장과 같은 선택만 반복한다면 공공 지원의 존재 이유는 사라질 것이다.
결국 축제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인 동시에 오지 않은 시대를 미리 보여주는 창이어야 한다. 축제를 기획한다는 것은 공연을 배열하는 일이 아니라, 한 사회가 어떤 문화를 꿈꾸는지를 설계하는 일이다. 좋은 축제는 관객을 만족시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공동체가 스스로를 다시 바라보게 만들고, 다음 세대가 어떤 문화적 세계를 살아가게 될지 질문하게 만든다. 그것이 공공의 지원을 받는 예술 축제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며, 오늘날 축제 기획자에게 주어진 가장 어렵고도 가장 가치 있는 책무일 것이다.
글 류재준 작곡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