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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호

예술가의 진심 변영진, 열정에서 냉정으로


늘 뜨거웠다. 펄펄 끓는다고들 했다. 무대 위를 거침없이 질주하는 배우들의 폭발적인 신체 에너지, 객석 밑바닥부터 관객을 흔들어 깨우는 타악기 소리, 강렬한 감정의 격동…. 제46회 서울연극제 공식 선정작 <장소>(작 김철의)는 극단 '불의전차'와 변영진 연출 작품의 개성을 고스란히, 알뜰하게 무대 위에 분출시켰다. 우수상·연출상과 함께 배우 전원이 연기상을 받으며 지난해 서울연극제 3관왕이 된 데 이어, 올해 백상예술대상 젊은연극상도 받으며 기세를 이어갔다.

그런데 최근 대학로 서울연극센터에서 마주 앉은 변영진은 "밀린 방학 숙제를 한꺼번에 해치운 느낌"이라며 "이제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건 좀 자중하고, 뭔가 새로운 걸 하고 싶다"고 했다. "목이 쉬도록 소리 지르는 건 할 만큼 다 한 것 같아요, 진짜. 고선웅 연출님이 '뜨거울 때 내놓지 말고 차가울 때 내놓으라'고 하셨거든요. 지금 6월 23일 개막하는 연극 <브로크백 마운틴> 연습 중인데, 그 말씀이 요즘 제 모토예요, 하하."

<이카이노 바이크>, <청천장단>을 거쳐 <장소>로 재일동포 작가 김철의 작품 '자이니치在日 3부작'의 매듭을 짓는 동안, 자이니치 연극 특유의 끓어넘칠 듯한 열기가 극단의 색깔이 됐다. 그런데 "이제 좀 건조하고 차가운 작품을 하겠다"니. 어쩌면 이런 생각에 도달하기까지, 변영진 연출이 걸어온 연극의 여정에 그 답이 있다.

제62회 백상예술대상 젊은연극상을 받은 극단 불의전차 <장소>

연극반 중학생에게 각인된 '청춘예찬'
첫 연극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서울 수색의 옛 동네에서 태어나 김포에서 자랐다. 북한이 보이는 애기봉 근처 중·고교를 나왔는데, 학창 시절은 온통 연극뿐이었다. 중학교 1~2학년쯤 연극반 선생님이 단체 관람으로 박해일·고수희 배우가 나온 박근형 연출의 <청춘예찬>을 보여주셨다. 눈앞에서 담배를 막 피우고, 고수희 배우님이… 그때는 몰랐지만 돌이켜보니 잔상이 오래 남았다.

중학생이 연극반이라니.

인생의 좌표를 바꾸는 계기는 늘 단순하게 찾아오는 것 같다. 강해지고 싶어 유도부에 들어갔다가 훈련이 고된 탓에 탈출한 뒤 친구 따라 연극반에 갔다. 선생님이 연극을 너무나 사랑하는 분이어서, 방학마다 꼭 한 작품 이상 올렸다. 당연하듯 그냥 연극을 했다.

연극이 좋던가.

연출하면서 연극이 좋아졌다. 축구 선수 꿈꾸는 애들이 축구 힘들어하듯이, 연기하던 어릴 때는 맨날 힘들었다. 그런데 가족이 적극적으로 밀어줬다. 보조개 많이 들어간, 까불까불 귀여운 깡마른 소년이 공부엔 답이 없지만 무대 위에서 자유롭게 노는 게 부모님 보시기에 좋았나보다.

자식이 연극 하겠다면 주저앉혀 공부시키려 할 텐데, 부모님이 대단하시다.

열린 분들이셨다. 공부가 아니라, 오히려 아파서 연극 연습 쉬겠다고 꾀부리면 아버지께 크게 혼이 났다. 고등학교 때 연극반을 만들었고, 동랑·동국 등 청소년 연극제에서 연기상을 연이어 받았다. 동국대학교 교수님이 '변영진 학생, 대학 진학할 거죠?' 하고 전화 주신 기억이 난다. 그런데 동국대 입시에서 덜컥 떨어졌다.

아니, 왜?

연기 교습 선생님이 '너는 잘하는 아이니까 개성을 과시하라'고 했다. 머리를 보라색으로 염색하고 금목걸이와 금팔찌를 하고, 상장과 연기 포트폴리오를 한아름 들고 면접에 갔다. <세 자매>의 가난한 남자 '안드레이'를 연기했더니, 안경 쓴 백발의 교수님이 물으셨다. '자네 머리는 왜 염색했나?' 솔직하게 '멋있어 보이려고 했다'고 답했더니 교수님이 그러셨다. '오늘이 자네 인생에 가장 크게 실수한 날 중 하나일 거네.' 동국대뿐 아니라 다른 학교도 다 떨어졌다. 재수할 땐 완전 학생답게 하고 갔다, 하하. 서울예대 연기과에 들어갔다.

오태석 '목화'와 정의신 '신주쿠양산박'
본격적으로 연극 공부가 시작됐다.

박서준·박진주 배우가 동기다. 김선호 선배와 함께 활동한 동아리 '극예술연구회'가 정말 끈끈했다. 제가 크게 영향받은 극단이 둘 있다. 하나는 서울예대 교수이시던 스승 오태석 선생님의 '목화'였다. 선생님께 연극 그 자체, 연극의 모든 걸 배웠다. 관객을 대하는 태도, 연극이 가져야 하는 덕목, 기술이 아니라 기본 정신에 대해 전부 배운 것 같다.

영향받은 또 하나의 극단은?

오 선생님을 뵙기 전에 고등학교 2학년 때 밀양연극촌 워크숍을 갔다. 거기서 재일동포 정의신 작가와 김수진 연출의 극단 '신주쿠양산박'의 작품 <바람의 아들>을 봤다. 경이로운 체험이었다. 차원이 달랐다. 뭉클하고 찬란했다. 실존하는 지브리 만화를 보는 것 같았다. 전율이 일었고, 그런 연극을 하고 싶었다. 신주쿠양산박이 내 인생을 휘어잡았다.

목화와 신주쿠양산박이라니.

오태석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은 꿈에도 안 했지만, 훔치고 싶었다. 선생님 모습을 30퍼센트만 가질 수 있어도 연극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도서관에서 신주쿠양산박 정의신 작가의 텍스트를 다 읽고, VOD로 극단의 옛날 연극을 다 봤다. 닌자가 스승의 기술을 통째로 훔치듯 다 훔치려 했다. 대본은 필사하고, 영상을 보며 연출 디렉션을 다 적었다. 비주얼 디자인도 그렸다. 내가 한 연출이라 생각하고 그대로 베꼈다.

자이니치 연극에 대한 애착이 거기서 시작됐나보다.

사실 잘 몰랐다. 자이니치의 정신과 역사가 연극과 같이 간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일본 연극은 원래 시끄러운 건 줄 알았다. 자이니치 정신, 조선인의 피 때문에 연극이 그렇게 시끄럽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하하. 2013년쯤 차승원·초난강(쿠사나기 츠요시)·히로스에 료코가 출연한 정의신 선생의 연극 <나에게 불의 전차를>을 봤다. 대학을 졸업하며 2015년 대학 친구들과 극단을 만들며 이름을 '불의전차'로 지었다.

"닌자가 스승의 기술을 통째로 훔치듯"
돈 받고 표를 판 첫 연출작은.

2015년 여름, 대학로 70~80석짜리 소극장에서 직접 쓴 SF 연극 <행성의 진화 초기 단계, 불확실한 미래>를 2주쯤 공연했다. 별자리 동호회 아이들이 UFO를 발견하고 국정원과 격돌하고 미래 인간도 막 나온다. 그 장르를 처음에 해서 정말 다행이다 싶다, 하하.

신주쿠양산박의 연극에서 이름을 딴 극단의 첫 작품이 SF라니.

신주쿠양산박에서 다 가져왔다는 걸 숨기고, '이건 내 거다'라고 주장하고 싶은 어린 마음이었다. 그런 치기 어린 자격지심과 자존심이 먼저 부딪치고 깨져야 했다. 배우들이 연습 중에 계속 지적해줬다. '어디서 많이 봤던 장면인데?', '너무 신주쿠양산박 흉내 내는 거 아냐?', '이 장면은 걸판 (오)세혁 형이 했던 거 같은데?'….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 정말 해야 하는 게 뭘까. 그 질문에 도달하는 데 3년 정도 걸렸다.

그 깨달음 이후 불의전차만의 독창적 색깔을 낸 첫 작품이 <펜스 너머로 가을 바람이 불기 시작해>였다.

그전에 남산예술센터에서 열린 서바이벌 다큐 연극 <창조경제-공공극장편>2017 경연이 발판이 됐다. 상금도 상금이지만, 10분짜리 작품 세 편을 만드는 과정에서 '내 것'을 많이 찾아냈다. 좋아해서 훔치고 싶던 것들을 훔쳐 그대로 적용하던 단계에서, 깎아내고 다시 구성하고 맞춰 나만의 것으로 탈바꿈시켜 내놓는 걸 할 수 있게 된 거다. 그렇게 만든 <펜스 너머로 가을 바람이 불기 시작해> 고양 공연이 '2023 올해의 공연 베스트 7'에 선정되며 처음 인정받았다.

그리고 2년 뒤에 서울연극제 3관왕이 됐다. 성장 속도가 엄청나다.

오세혁 형이 정말 내 인생의 귀인이다. 이 작품이 끝날 때쯤 재일동포 극작가 김철의 형을 소개해 줬다. '오사카에 재일 조선인 김철의 작가가 있는데 너랑 똑같다'고 했다. 오프닝에서 지하철 손잡이를 흔들면서 일본 남자를 때리는 게 첫 장면인 연극 <장소> 얘기를 듣고 영화 <박치기>를 떠올렸다. 세혁 형이 "우와, 김철의가 박치기에도 나왔어!" 했다.

변영진과 김철의가 드디어 이어졌다.

<장소>는 스케일이 너무 커서 지원금 없이는 하기 힘든 작품이었다. 그래서 <이카이노 바이크>를 먼저 했다. 내가 배우고 훔친 걸, 습득하고 체득한 걸 다 풀어내면 됐다. 무국적 조선인이 내뿜는 텍스트의 리듬과 템포가 마치 내가 쓴 것처럼 몸에 착착 감겼다. 자이니치의 피, 조선 사람의 피가 내게도 있다는 걸 느꼈다. 김수철 작곡가를 정말 좋아하는데, 김철의 형의 희곡을 읽으면 내 안에서 김수철의 꽹과리가 계속 징징징 울린다. 배우들을 못 살게 굴었다. '뛰어나와!' '점프해!' 하하하. 그렇게 <청천장단>, <장소>까지 김철의 자이니치 3부작이 이어졌다.

차갑고 건조하게, 성숙한 냉정을 향해
실은 우리 젊은 연출가들이 들끓는 에너지를 좀 식히고 삭혀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럴 필요를 정말 강하게 느끼고 있다. 원래 스펙트럼 넓은 연출이 되는 게 꿈이었다. 이와이 슌지의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 같은 작품을 엄청나게 좋아한다. 그래서 <쇄골에 천사가 잠들고 있다>를 만나기도 했고. 이제 숙제를 마쳤으니 차갑고 건조한 걸 해 보려 한다.

변영진과 불의전차가 만드는 차가운 연극이라니.

올해 연말에는 중국계 미국인이 쓴 작품을 하게 됐다. 청년 여섯 명이 모여 마라톤을 뛰어야 한다고 한 늙은 아저씨를 설득한다. 한 남자의 신체를 이식받은 사람들이 그의 꿈을 이뤄주려 노력하는 이야기, 그야말로 '요즘 연극'이다.

이제 '자이니치 연극'이라는 숙제는 정말 끝낸 건가.

사실은, 아직 끝판왕이 하나 남았다. 재일동포 양석일 작가의 <피와 뼈>를 하고 싶다. 최양일 감독의 영화(2005)도 있는데, 3부작 원작 소설의 3부 내용이다. 그런데 1·2부가 정말…. 이 소설은 미쳤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이걸 국립극장에서 등장인물 50명 정도 나오는 5시간짜리 연극으로 올리고 싶다. 그 구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배우 숫자와 러닝타임 계산까지 다 해놨다니.

책을 읽으면서 그냥 계산되더라, 하하. <피와 뼈>는 마냥 뜨겁진 않을 것이다. 그동안의 자이니치 연극이 핍박받는 피해자를 그렸다면, 이제 실제 일본 사회에서 재일동포의 위치, 일부는 어떻게 괴물이 되었는지 냉정하게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고 싶다. 번역과 윤색은 김철의 형이 기꺼이 맡아 줬다. 음악은 꼭 김수철 선생님께 맡기고 싶다.

이태훈 조선일보 기자  |  사진 Studio K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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