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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호

예술이 흐르는 길목에서 잘 만든 무대를
관객과 잇는 일

10여 년 전 예술경영지원센터 재직 시절, 소속 팀명이 ‘공연유통팀’으로 바뀐다는 말에 ‘공연이 우유도 아니고 무슨 유통이냐’며 낯설어 한 기억이 난다. 당시만 해도 예술의 산업화나 유통은 현장에서 거부감이 컸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좋은 작품을 창고에 묵혀두는 대신, 적극적으로 관객을 찾아 나서는 것이 기획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작품이 무대 위에서 자립하려면 관객이라는 퍼즐을 맞춰야 한다는 고민이 유통의 출발점이 된 것이다. 과거 유통을 반신반의하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연극·무용·음악·전통·뮤지컬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프로듀서로 현장에 서 있다.

최근 영상 매체 시장 침체와 맞물려 연극 무대는 전환기를 맞이했다. 매체 배우들이 연기에 대한 갈증으로 무대를 찾으며 쏠린 대중의 관심은 지역 극장 프로그래밍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스타 캐스팅은 낯선 작품에 대한 심리적 문턱을 낮추고 유통망을 확장하는 현실적 동력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공동 제작한 연극 <로제타>는 작품 3년 차에 김성령 배우가 합류하며 명동예술극장 전석을 매진시키고 부산·일본 공연까지 성사시켰다. 현재 준비 중인 극공작소 마방진의 20주년 연극 <홍도>는 타이틀롤 확정 전부터 전국 7개 도시 투어가 일찌감치 성사됐다. 예지원 배우가 활약한 초연의 인지도에 더불어 매체 배우들과 무대 작업을 이어온 제작진에 대한 지역 극장의 신뢰가 맞물려 유통을 확장한 사례다.

뮤지컬 시장의 가장 큰 변화는 해외 유통 확장이다. K-뮤지컬국제마켓 첫해, 참여작 <크레이지 브레드>가 쇼케이스에 선정됐을 때만 해도 창작뮤지컬의 해외 진출은 생소한 개념이었다. 해외 교류의 장이 마련돼도 영어 피칭이나 네트워킹 방식에 익숙하지 않아 이를 활용하는 제작사가 드물었다. 하지만 불과 몇 년새 정부 지원이 커지며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 프로듀서들이 적극적으로 협업을 제안해오고 있다. 단순 판권 거래를 넘어 기획 단계부터 국외 자본과 인력이 투입되는 공동 제작 형태로 진화하며 세계 시장으로 향하는 실질적 유통로가 열린 것이다.

음악과 전통예술 장르는 월드뮤직의 테두리 안에서 독자적인 유통망을 개척해왔다. 과거 서울아트마켓과 재외 한국문화원에서의 해외 교류 경험은 큰 밑거름이 됐다. 저니투코리안뮤직 루키 세션을 통해 당시 신인이던 서도밴드·달음과 소중한 연을 맺었다. 달음의 해외 진출을 도모하며 독일 음반사에서 앨범을 내고 전문 부커booker와 협업해 파급력을 키웠고, 2025 워멕스WOMEX 선정이라는 쾌거도 거뒀다. 서도밴드 역시 많은 해외 공연 기회가 있었지만, 코로나19 시국 탓에 영상 진출에 만족해야 했던 아쉬움이 있다. 대신 <풍류대장> 같은 방송 매체와 기획 단계부터 소통하며 확보한 대중적 인지도를 전국 단위 무대로 나아가는 동력으로 삼았다.

창극은 언어 장벽과 낯선 소리 탓에 해외 진출이 쉽지 않다. 이를 극복하고자 전 세계가 아는 해외 명작을 원작으로 삼아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국립창극단 <리어>, <트로이의 여인들>처럼, 창극 <살로메>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외 유통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한편, 국내 지역 유통에서는 김준수·유태평양 등 소수 국악 스타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한계가 있다. 특정 배우를 넘어 콘텐츠 자체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이상봉 디자이너와 협업하는 등 직관적으로 매력을 느낄 만한 시각적 요소를 결합하며 돌파구를 찾고 있다.

무용 역시 언어 장벽은 없지만 극장 수입만으로 자립하기 어려워 공공 지원이 필수적으로 마중물 역할을 한다. 그 가운데 찾은 해법 중 하나는 어린이 관객을 타깃으로 한 무용 공연이었다. 직관적인 몸짓이 틈새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고 판단해 고블린파티와 <루돌프>, <공주전> 등을 연이어 발표하며 지역 유통 활로를 뚫었다. 최근에는 대중성을 검증받은 정구호 디렉터와 협업해 미장센을 강조한 국내 유통용 무용 작품을 기획, 끊임없이 실험하고 있다.

장르마다 유통 해법은 다를 수밖에 없다. 치열하게 시도해온 여러 방식 역시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일 뿐 정답은 아닐 것이다.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공연 유통이란 결국 ‘우리가 만든 무대를 한 명의 관객이라도 더 만나게 하고 싶다’는 단순 명쾌한 목표를 실행하는 과정이다. 서울의 수많은 문화 공간에서 탄생한 예술 작품이 국경을 넘어 더 넓은 유통망으로 관객과 만나기를 바란다. 나아가 무대와 관객을 잇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료 프로듀서와 아티스트에게 이 기록이 실질적인 참고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영찬 옐로밤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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