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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호

읽다 예술가의 작업실에서
도시의 문화 인프라로,
아티스트 레지던시

예술가에게 작업실의 의미는 남다르다. 작품을 만들고 실험하는 곳일 뿐 아니라 전반적인 창작 활동의 기본 조건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임대료 부담 없이 작업 공간을 유지하기가 점점 어려운 실정이다. 많은 예술가가 도심 외곽으로 밀려나거나 창작 활동을 지속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티스트 레지던시는 예술가들이 안정적으로 작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기반이다. 특히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공공 레지던시는 작업 공간과 함께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해 도시 안에서 창작 생태계를 유지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아티스트 레지던시Artist-in-Residence는 예술가가 작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일정 기간 특정 지역이나 기관의 작업 공간을 지원하는 제도다.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아티스트 레지던시는 1900년 무렵 영국과 미국에서 시작됐다. 초기에는 후원자들이 예술가에게 게스트 스튜디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운영됐고, 예술가 공동체에서 출발한 레지던시는 도시와 단절된 자연 속에서 외부 방해 없이 작업에 몰입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데 의미가 있었다. 1907년 설립된 미국의 맥다월 콜로니MacDowell Colony(2020년 들어 이름에서 '콜로니'를 삭제했다)가 좋은 예다. 이후 1960년대에는 사회에서 벗어나 창작에 몰입하는 형태와 지역사회와 소통하면서 사회 변화를 모색하는 형태로 발전했고, 1990년대에는 서구권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지역 예술 생태계와 국제 미술계를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 2000년대 들어서는 작업실 지원에 연구, 협업, 전시, 지역 커뮤니티와 교류 등을 아우르는 창작 플랫폼으로 그 개념을 확장했다.

서울의 공공 레지던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레지던시는 주로 시각예술 중심으로 운영되지만,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금천예술공장·신당창작아케이드·서울무용센터·연희문학창작촌·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 등은 시각·공예·무용·문학·장애예술로 지원 장르를 나눠 각 분야에 맞는 환경을 조성한다. 무용 레지던시에서는 넓은 연습 공간을 제공하거나 문학 레지던시에서는 집필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등 장르마다 필요한 물리적 조건을 공공이 직접 마련한다.

서울에서는 산업 구조 변화와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비어 있던 공간이 창작 거점으로 재탄생한 사례가 많다. 금천예술공장은 인쇄 공장 자리에 생겼고, 신당창작아케이드는 전통시장 지하상가이던 공간에 들어섰다. 기존 공간의 역사와 장소성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의미와 용도를 더하는 방식은 도시 재생의 한 형태이자 젠트리피케이션을 극복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임대료가 올라 예술가들이 밀려나는 상황에서도 공공이 공간을 직접 운영해 예술가들이 서울 안에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다.

물론 그렇다고 레지던시가 예술가의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제도는 아니다. 여전히 생활비와 제작비 부담은 예술가의 몫이다. 그럼에도 많은 예술가가 레지던시를 찾는 이유는 이 공간이 주는 장점과 영향이 꽤 분명하기 때문이다. 특히 작업 공간 유무가 작품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직접적이다. 작업실 크기나 조건은 작품을 실현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가능성을 결정하기도 한다. 예술가에게 작업 공간은 창작의 지속 여부를 결정짓는 가장 현실적인 조건 가운데 하나다. 특히 무용이나 설치미술처럼 넓은 공간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공간의 제약이 작품의 형태까지 바꿔놓기도 한다. 천장 높이는 설치 작업의 규모를 좌우하고 안무 동선을 제한한다. 반입할 수 있는 자재의 크기가 곧 작품의 크기가 되기도 한다. 공간은 예술가가 무엇을 만들지보다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를 먼저 결정하는 셈이다. 그래서 많은 예술가가 작업 공간의 한계 앞에서 아이디어를 바꾸거나 계획을 수정하는 경험을 반복한다.

레지던시의 가치는 작업 공간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그 안에서 맺는 관계가 예술가에게 중요한 자산이 된다. 실제로 많은 예술가들이 학교를 졸업한 뒤 함께 작업하는 동료가 점차 줄어드는 현실에서 레지던시에서 만난 작가들과 학창 시절 친구 못지않은 유대감을 쌓는다고 말한다. 오픈 스튜디오, 비평가 매칭, 기관 네트워킹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형성된 관계는 이후 협업이나 전시로 이어져 창작 활동의 새로운 기반이 되기도 한다.

예술 생태계의 관점에서 레지던시는 신진 예술가가 제도권과 처음 연결되는 통로이기도 하다. 갤러리나 미술 기관과 접점이 적은 젊은 예술가에게 레지던시는 자신의 작업을 알리고 새로운 기회를 만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공신력 있는 기관이 운영하는 레지던시에 입주했다는 것만으로도 신뢰를 주는 이력이 되기도 한다.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전시 이력이나 학력 외에도 레지던시 경력이 필요하다는 우스갯소리가 오갈 정도다.

그렇다면 레지던시는 오로지 예술가만을 위한 공간일까? 시민들은 오픈 스튜디오, 전시, 워크숍, 지역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서 자신의 생활권 안에서 예술가의 작업을 가까이 경험할 수 있다. 레지던시가 있는 지역에 문화적 활력이 생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레지던시를 그저 작업실을 지원하는 제도로만 취급하기는 아쉽다. 특히 서울의 공공 레지던시는 예술가 개인을 지원하고 유휴 공간을 문화 거점으로 탈바꿈해 지역 사회와 예술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공공이 예술가의 창작 환경에 개입하는 문화 인프라로써 레지던시가 꼭 필요한 이유다.

백아영 미술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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