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오래된 골목 맛집은 간판도 없고 메뉴판도 허름하다. 그런데 한번 가면 자꾸 생각난다. 대학로 소극장이 딱 그렇다. 계단을 내려가야 나오는 지하 공간, 낡은 조명, 무대와 객석이 숨결로 닿을 듯 가까운 그곳. 처음엔 '여기가 맞나?' 싶지만, 막이 오르는 순간 그 좁은 공간이 오히려 힘이 된다. 배우의 눈빛이 바로 앞에 있고, 그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서울 곳곳에 이런 극장들이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그 공간만의 색깔이 있고, 수십 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며 새로운 작품을 세상에 내보내온 곳들. 신진 예술가가 처음 관객 앞에 서는 무대이자,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 처음 숨을 트는 공간이다. 대형 공연장에서는 볼 수 없는, 날 것의 공연이 살아 숨 쉬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극장들이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임차료는 오르고, 관객은 더디게 돌아온다. 노포 맛집 주인이 재룟값을 감당 못 해 문을 닫듯, 공연을 올리고 싶어도 공간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버거워진 것이다. 무대가 없어지면 공연도, 예술가도, 그 공간을 찾던 관객도 함께 사라진다.
'서울형 창작극장'은 이 극장들이 오래 버틸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이다. 서울시가 2016년부터 이어온 지원을 올해부터 서울문화재단이 맡아 운영한다. 300석 미만 민간 소극장에 임차료 일부를 지원하고, 극장은 연극·무용·전통예술 단체에 대관료를 50퍼센트 이상 할인 제공한다. 극장도 살고, 예술단체도 더 가볍게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구조다.
올해 선정된 극장은 총 20개. 이곳에서 연간 700여 편 공연이 시민과 만난다. 그 무대 어딘가에서, 훗날 서울을 대표할 누군가의 첫 대사가 오늘 밤 울려 퍼지고 있을지 모른다. 서울문화재단은 더 많은 시민이 이 극장들을 찾을 수 있도록 대학로를 중심으로 리브랜딩 캠페인 '대-락樂로'도 함께 펼쳐나간다.
노포 맛집은 맛만 파는 곳이 아니다. 그 공간의 시간과 사람이 쌓여 특별해진다. 대학로의 작은 극장들도 그렇다. 낡고 허름해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진짜 공연을 만날 수 있는 곳. 아직 경험해본 적 없다면, 한번 그 계단을 내려가보는 건 어떨까.
2026 서울형 창작극장 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