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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호

쓰다 클래식 듣는 인간이 되는 이유

지금 듣고 있는 곡은 ‘메타모르포젠Metamorphosen(변용)’이다. 낮은 음역의 현악기들이 음악을 시작한다. 느리게, 서서히. 비올라가 익숙한 선율 하나를 연주한다.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 2악장, 장례식인가?

양차 세계대전을 겪은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 이 작품을 썼다. 23명의 현악기 연주자를 위한 곡이다. 이 격변의 시대에 슈트라우스만큼 논란의 삶을 산 작곡가가 또 있을까. 그는 나치 정권에 반대해 물러난 지휘자 대신 지휘봉을 잡았고, 그 순간부터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 폭력적 정권의 협력자? 한편 그는 유대인 예술가와 진지하게 협업했고, 그들을 도왔다.

‘메타모르포젠’은 한쪽으로 재단하기 어려운 그의 삶만큼이나 미스터리한 음악이다. 도대체 이 하강하는 음계에 담긴 작곡가의 마음은 뭘까. 자기 작품이 베토벤의 선율과 닮아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할 만큼 무의식적으로 써 내려갔다는 심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음악을 다시 꺼내 듣는 이유는, 지금 읽고 있는 책 때문이다. 전쟁과 희생, 또한 추모와 음악의 관계를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제러미 아이클러Jeremy Eichler의 책 『애도하는 음악』은 ‘메타모르포젠’에 이어 쇤베르크 ‘바르샤바의 생존자’를 소개하고 있다.

책의 흐름을 따라 음악을 바꿔서 재생한다. 끝까지 듣기가 힘이 든다. 독창자는 소리친다. “더 빨리! 다시 해! 얼마나 많이 가스실로 보낼 수 있는지 일 분 안에 알아야겠어! 점호!” 트럼펫의 찌르듯이 상승하는 음계가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던가.

고전음악은 그저 아름답고 힐링이 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를 어떤 숭고한 경지로 늘 인도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추악하고 참혹한 기억을 담고 있고, 때로는 너무나 모호하다.

오히려 매끈하고 아름다운 음악들은 조금 멀리하게 된다. 봄이 왔다며 라디오에서 멘델스존 ‘봄노래’,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봄’(작곡가가 붙인 제목도 아니다)이 흘러나오면 조용히 채널을 돌린다.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치고 아름다운 멜로디에만 심취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오히려 이런 음악에서도 진심이나 진리 같은 것을 발견하기를 원한다. 단순해 보이는 선율에서도 더 복잡하고 어려운 길로 접어들며 해석해내는 연주자들을 기다린다.

슈만 ‘트로이메라이’는 단순하고 아름답다. 어린아이의 마음을 담은 것같이 순수하고 깨끗하며 제목마저 ‘꿈’이다. ‘그래! 고전음악이 얼마나 아름다워. 마음에 안정을 주잖아.’ 20세기의 거장 작곡가인 알반 베르크는 1920년 이 작품을 샅샅이 분석해놓았다. 그 유명한 멜로디, 즉 음표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산 모양을 이루는 8번(반복 포함)에서 단 한 번도 같은 방식이 없다는 해석이다. 아름다움 이면의 예측 불가함, 복잡함을 밝혀낸 베르크의 분석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아름다움에 한숨만 내쉬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많은 수의 좋은 예술가가 함께 등정하기를 권유한다. ‘제가 연주하는 동안 편하게 듣고 쉬세요’라고 말하는 음악가를 경계해야 한다. 만만치 않은 작업, 즉 여러 가능성 중에서 하나를 고통스럽게 선택하며 전진하는 과정을 함께 해달라는 음악가의 메시지가 진짜다. 최근 인터뷰한 두 명의 음악가가 같은 말을 한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음악이 백그라운드 뮤직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주세요.”(지휘자 존 엘리엇 가디너John Eliot Gardiner) “음악은 오락이 아닙니다.”(피아니스트 언드라시 시프Andras Schiff)

음악은 좀 가혹한 장르다. 손에 뭐가 남지 않는다. 고전음악은 특히 그렇다. 모든 예술 장르 중에 가장 추상적이기 때문에 어떤 언어로 표현해 남겨놓기도 어렵다. 교환의 가치도 없다. 미술 작품처럼 구매해 놓고 값이 오르기를 기대하거나, 세금 감면 혜택을 노려볼 수도 없다. 그저 듣고 생각하고 기억하며 자신만의 언어로 남겨놓을 뿐이다.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린다.

충격적인 감동을 받았다고 해도 그 언어를 교환하기는 힘이 든다. 지금의 감정이 어떤 색인지, 그 색깔이 다른 사람이 본 것과 같은 색인지 아닌지도 알기 어려운 게 음악이다. 지극히 비사회적이고 개인적인 예술이 음악이고, 그중에서도 가장 추상적인 것이 클래식 음악이다.

모호함은 강력하다. 어떤 사유의 경로가 이 소리가 됐는지 도무지 알 수 없고 설명도 되지 않는 그 막막함이 사람을 끌어당긴다. 정답이 없고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아름답고 즐거운 순간보다는 아프고 안타까운 경험이 더 많다. 어렵고 복잡한데, 그럴수록 매혹적이다.

사실은 우리 모두 마음속 깊숙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호함, 복잡함, 불확실함과 추상성이야말로 세상의 진실에 가깝다는 것을.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시간이 바로 그렇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답 없는 질문, 열려 있는 이야기, 어렵게 흘러가는 대화야말로 우리가 시간을 들일 만한 대상이라는 것. 이렇게 우리는 계속해서 듣는 인간이 된다. 실체가 없고, 시간이 많이 드는 이 특별한 예술에 귀 기울이게 된다.

김호정 중앙일보 음악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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