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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2월호

서울에서 즐기는 야심 찬 예술 여행
주목할 대규모 전시

여기가 피렌체인가, 파리인가, 아니면 빈이란 말인가!
전시 정보만 잘 챙기면 애써 해외에 나가지 않더라도 서울에서도 다채로운 명화를 만날 수 있으니.

《빛의 거장 카라바조&바로크의 얼굴들》 전시 전경

바로크를 연 천재 화가 카라바조

예술 강국 이탈리아에서도 ‘3대 천재 화가’로 꼽히는 거장들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그리고 카라바조1571~1610다. 40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생애지만 카라바조는 ‘바로크’라는 17세기 새로운 시대의 미술을 열었다. 원래 이름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인데, ‘다 빈치’가 빈치Vinci 출신임을 뜻하듯 밀라노 인근 그의 고향 마을의 이름으로 불렸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층에서 3월 27일까지 열리는 《빛의 거장 카라바조&바로크의 얼굴들》 전시에서 카라바조의 작품 10점과 그의 영향을 받은 동시대 화가 작품까지 총 57점의 바로크 미술을 만날 수 있다.

현존하는 카라바조의 작품 자체가 100여 점에 불과한 만큼, 그의 원화를 10점이나 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 중 3점은 이탈리아 최고 권위의 우피치 미술관에서 왔다. 성 토마스가 스승인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하며 창에 찔린 옆구리 상처에 손가락을 넣어보는 장면을 그린 <성 토마스의 의심>이 그중 하나다. 촛불 하나만 켜둔 듯 어둑한 공간에서 살아 돌아온 예수의 가슴팍과 어깨만이 환하게 빛나며 연극의 한 장면 같은 분위기를 만든다. 빛과 어둠의 대비로 격정적 감정과 극적인 상황을 표현하는 것이 카라바조 화풍의 특징이다.

카라바조는 종교적 내용의 그림을 많이 남겼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권위가 흔들린 가톨릭교회는 대중의 새로운 관심이 필요했고, 문맹률이 높던 당시로는 그림의 역할이 중요했다. 성경의 내용을 정확하게, 그러면서도 강렬하게 그려내는 카라바조를 교황청이 전폭적으로 지지한 이유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르네상스의 화풍이 지배적이었는데, 카라바조는 생생한 표현과 역동적인 구도로 혁신을 이뤄냈고 훗날 바로크 예술의 거장인 루벤스·렘브란트·벨라스케스 등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다만, 실력 천재가 인성 천재는 아니었다. 쉽게 흥분하는 성격이었고, 다툼이 잦았다. 급기야 살인을 저질렀을 때는 교황청도 손쓸 방법이 없었다. 현상수배범 신세로 여러 지역을 떠돌다 객사했다.

꼭 봐야 할 작품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이다. 매력적인 곱슬머리 소년이 달콤한 과일 사이에서 나타난 도마뱀에게 손가락을 물렸다. 귀 뒤에 꽂은 흰 장미는 사랑에 빠진 매혹을, 그의 앞에 놓인 붉은 체리는 욕망과 관능을 암시한다. 사랑의 쾌락에는 고통이 뒤따른다. 소년의 찌푸린 표정과 흐트러진 자세가 경고의 메시지다. 거의 똑같은 그림이 3점 존재한다. 이번 전시 출품작은 런던 내셔널갤러리, 로베르토 롱기 미술사연구재단의 버전과 달리 소년의 오른쪽 눈에 고인 선명한 눈물이 특징이다.

빈센트 반 고흐, <착한 사마리아인(들라크루아 원작)>, 1890, 캔버스에 유화, 72×91.3cm

1조 원 규모의 반 고흐 작품들

짧은 생애와 위대한 업적으로 카라바조와 견줄 만한 화가가 있다면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아니겠는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에서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불멸의 화가 반 고흐》(3월 16일까지) 전시가 한창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고흐 작품을 소장한 크뢸러 뮐러 미술관의 컬렉션 76점으로 구성된 전시다. 그 유명한 <밤의 카페 테라스>가 이곳 소장품이다. 고흐의 작품값으로 말하자면, 지난 2022년 11월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 폴 앨런 소장품으로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과수원>이 1억 1,700만 달러, 우리 돈 약 1,700억 원에 낙찰됐다. 전시 출품작 76점의 보험가액만 1조 원 이상이다.

전시는 고흐의 생애를 따라 펼쳐진다. 목사가 되려다 실패한 그는 화랑에서 일하며 안목을 익히고 감각에 눈떴다. 장 프랑수아 밀레의 그림에 감명받은 고흐는 노동의 숭고함을 보여주는 정직한 농민들의 삶을 담고 싶어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초기작 <감자 먹는 사람들>에는 그런 고흐의 인간애가 담겼다. 고흐의 가장 큰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는 1886년 형을 설득해 파리로 갔다. 인상파 화가들과 교류하고, 일본 목판화를 수집하며 고흐의 작품은 가볍고 화사한 색조로 변화했다. 모델을 구할 형편이 아니었기에 거울 속 자신을 즐겨 그리기도 했다. 고흐가 남긴 30여 점 자화상 중 25점이 ‘파리 시기’에 탄생했다. 전시에 나온 <자화상> 속 청년 고흐는 푸른색 정장을 멋지게 차려입고 에메랄드색 눈을 반짝이며 희망을 속삭인다.

괴팍했던 고흐는 동료 화가들과 갈등을 빚었고, 충동적으로 떠난 남프랑스에서 햇살이 아름다운 도시 아를Arles을 만난다. 가장 창조적이던 ‘아를 시기’에 본받고자 했던 밀레의 작품을 모티프로 한 <씨 뿌리는 사람>을 완성했다. 예술가 공동체를 꿈꾸며 폴 고갱을 아를로 초대했지만 이내 싸우기 시작했고, 급기야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르는 광기를 드러냈다. 하지만 생 레미 정신병원에서 고흐는 위대한 자연을 발견하고, 구원과 영혼의 평화를 갈망하며 최고의 걸작을 남겼다.

빈센트 반 고흐, <씨 뿌리는 사람>, 1888, 캔버스에 유화, 64.2×80.3cm

‘세기말 천재’ 클림트와 실레

예술의전당에 카라바조와 반 고흐가 있다면, 강 건너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와 에곤 실레1890~1918가 있다. 특별전시실 1관에서 한창인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3월 3일까지)에서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세기말적이면서도 퇴폐적 분위기가 물씬한 작품은 자유와 변화를 꿈꾼 화가들의 손에서 탄생했다.

황금빛 찬란한 <키스> 등으로 유명한 클림트는 빈 응용미술학교 출신이다. 장식미술을 가르치는 학교였는데, 귀금속 세공사인 아버지의 영향에 경제적 문제도 해결할 수 있기에 택한 길이었다. 화려한 대형 건물이 잇따라 신축되던 1886년, 클림트는 국립 공연장인 부르크극장의 벽화를 의뢰받았다.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관람 중인 권력자와 부자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사진처럼 정교하게, 그러면서도 화려하고 고급스럽게 그려내며 단숨에 당대 최고의 화가로 추앙받았다. 승승장구할 것 같았으나 동생의 죽음으로 슬럼프에 빠졌고, 이후 클림트는 ‘상징주의’로 돌아섰다. 암시와 상징으로 가득한 모호하고도 몽환적인 그림 말이다. 클림트는 미술계의 보수적인 태도에 갑갑함을 느껴 1897년 빈 분리파를 창설했다. 과거의 예술과 ‘분리’를 선언하고 새로운 미술을 추구했다. 말년의 클림트는 고상한 화려함에서 너무 멀리 가버렸고 외설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의 솔직함이 숭고하게 여겨진다.

구스타프 클림트, <수풀 속 여인>, 1898년경, 캔버스에 유화, 32.4×24.0cm, 빈 클림트 재단 소장, Photo Klimt-Foundation, Vienna, 사진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에곤 실레,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 1912, 패널에 유화 및 불투명 채색, 32.2×39.8cm, 빈 레오폴트 미술관 소장, Photo Leopold Museum, Vienna, 사진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오스카 코코슈카, <헤르만 슈바르츠발트 II>, 1916, 캔버스에 유화, 79.1×63.0cm, 브로에르 자선재단 소장, Photo Leopold Museum, Vienna, 사진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에곤 실레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기에 오히려 보수적인 미술학교와 맞지 않았고, 당대 최고의 스타 화가였던 클림트를 찾아가 제자가 되기를 자청했다. 거장의 재주를 가졌으나 사춘기 소년 같은 도발적인 면을 가진 실레였다. 그의 작품은 성적 욕망을 다루지만 에로틱하기보다는 오히려 고통에 가깝다. 아버지가 매독으로 미치광이가 돼 세상을 떠난 것이 예민한 화가에게 그림자를 드리운 셈이었다. 어린 소녀들을 모델로 데려다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됐고, 유괴 혐의는 벗었지만 미성년자 앞에 음란한 그림을 전시했다는 이유로 징역형을 받았다. 시련과 논란은 오히려 실레의 정체성을 더욱 또렷하게 만들었고, 명성을 얻게 했다. 하지만 찬란한 시절은 불꽃놀이처럼 짧았다. 28세의 실레는 당시 유럽 전역을 덮친 스페인독감으로 사망했다. 반년 먼저 세상을 떠난 클림트와 같은 사인死因이었다.

이번 전시는 최고의 ‘에곤 실레 컬렉션’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레오폴트 미술관의 소장품 191점으로 이뤄졌다. 오스카 코코슈카·리하르트 게르스틀 등 대중에게 생소한 숨은 거장의 발굴이 전시의 또 다른 미덕이다. 600년간 유럽을 호령한 합스부르크 가문이 몰락하던 격변의 시기에 예술가는 어떻게 현실을 감지하고 새 희망을 꿈꿨는지를 탐색하며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 고려 12세기, 높이 15.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왕 국립중앙박물관까지 갔으니 바로 옆 특별전시실 2관의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 상형청자》(3월 3일까지) 전시도 챙겨보면 좋겠다. 한국미의 절정인 고려청자 274점을 전시하기 위해 국보 11점, 보물 9점을 포함해 국내 25개 기관 소장품과 미국·일본·중국 등 해외 기관 소장품까지 끌어모았다. 뛰어난 고려의 기술력은 향·차·술 등 취향과 용도에 맞춰 사자모양 향로, 연꽃모양 찻잔, 참외모양 병, 사람 모양 주전자 등 다양한 형태의 창조를 이끌었다. 대체 이걸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는 감탄사가 끊이지 않는다.


조상인 서울경제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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