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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1월호

독서로 매개하는 새 문화
#독서모임 #텍스트힙

한 권을 이루는 책장의 겹만큼이나 책이 가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자신을 뾰족하게 들여다보고 한편으로는 나의 세계를 넓히는 일, 오늘날 우리 사회를 반영하는 두 가지 키워드를 탐구했다.
다름과 같음 사이,
책으로 세상을 넓히는 시간

이유진 트레바리 클럽장 유닛/피플 셀 리더

독서모임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회사로 이직한 지 벌써 반년이 되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인문·문학 책을 시간 내서 읽는다는 게 여전히 쉽지 않다. 세상이 따라잡아야 할 것들로 넘쳐나기 때문이니 꼭 바쁜 현대사회에 사는 내 탓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읽어야 할 책, 봐야 할 영화, 알아야 할 트렌드와 뉴스, 그리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람들의 취향까지. 마치 하나라도 놓치면 세상의 흐름에서 뒤처지는 것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히곤 한다. 게다가 이제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까지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시기가 왔으니, 인문학·문학적 소양을 갖추는 것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하지만 하루 종일 이메일·메신저에 치이다보면 퇴근 후에는 글자 자체가 피로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게다가 누가 추천한 ‘좋은 책’이라면?! 더 잘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훨씬 더디게 책장을 펼치게 된다. 독서를 시작해도 ‘이해가 안 되면 어쩌지?’, ‘이 책을 계속 읽는 게 맞는 걸까?’ 같은 생각이 든다.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나름 책·독서모임과 관련한 일을 막 시작한 사람으로서, 보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몇 가지 위안을 드리고 싶다. 첫째, 독서모임 플랫폼을 운영하는 나조차도 인문·문학 책을 자주 많이 읽는 게 쉽지 않다. 둘째, 책이 어렵고 진도가 잘 안 나간다는 걸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런 당황스러움을 남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는 일이 도움이 될 때가 많다. “남들은 좋다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정도로 말해도 충분하다. 놀랍게도, 꽤 자주 누군가 “저도 그래요”라며 다가오는 일이 생긴다. 그때부터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끼리 공감이 시작될 것이다.

독서모임에 참석할 때마다, 나는 올해 초 런던에서 반년 정도의 방학을 백수로 보내면서 만난 전시 《Summer Exhibition》을 떠올린다. 영국 왕립 미술 아카데미Royal Academy of Arts에서 개최하는 이 전시회는 1769년에 시작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공개 공모 형식의 예술 전시회다. 이 전시회의 가장 큰 특징은 유명 예술가와 아마추어 예술가의 작품이 동일한 공간에 나란히 전시된다는 점이다. 작가의 이름도, 작품의 제목도, 가격도 벽에 표시되지 않고 단지 번호표만 붙어 있을 뿐이다. 이 그림이 누구의 작품인지, 어떤 배경을 가졌는지, 판매가가 얼마로 예상되는지를 알고 싶다면 따로 전시 도록을 구매해야만 한다. 나는 사람들이 작품을 그 자체로 느끼고 자신의 감상을 이야기하는 그 시공간이 참 좋았다. 같은 작품도 누군가에는 거실에 걸기 딱 좋은 그림이고, 누군가에게는 색감이 불편한 작품이며, 누군가에게는 20~30분씩 서서 보게 되는 명작이었다.

인문·문학 독서모임을 통해 만난 가장 인상 깊은 순간들도 ‘유레카!’ 하는 깨달음이 있거나, 복잡한 철학 개념을 이해한 순간은 아니었다. 오히려 런던 미술관 한구석의 시공간처럼, 본인의 감상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그 감상이 존재 자체로 받아들여지는 순간들이 더 소박하고 귀했다. 예컨대 이런 순간들이다. 같은 책을 읽고 만난 자리지만 누군가는 “저는 이 주인공들의 행동이나 작가님의 표현 방식에 공감이 잘 안돼요”라고 정중하게 말했을 때. 예전에는 예측 불가능성을 싫어해서 스포일러 없이는 영화·드라마도 보지 않던 내가 이제는 나와 다른 의견을 흥미롭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처음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위안을 얻고 싶어서 시작한 독서모임이, 이제는 동질감뿐만 아니라 다른 의견이 주는 신선한 기쁨까지 느끼게 해주는 자리로 변했을 때. 이런 순간들이 쌓일 때, 나는 이 독서모임이라는 공동체에 섞여보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갈수록 자신감을 얻는다. 내가 느끼는 대로 그대로 이야기해도 괜찮고, 그게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도 괜찮을 거라는 안도. 이곳을 찾아온 스스로에 대한 칭찬.

한강 작가의 수상 소감처럼, 문학은 “타인의 폐부까지 흘러 들어가는 경험”을 선사한다. 폐부까지 흘러 들어간다는 것은 아프고, 낯설고, 불편하게 들리지만, 그 점 때문에 의미가 있다. 인문과 문학을 주제로 독서모임을 하고, 공동체를 구성한다는 것은 다름을 받아들이는 훈련이다. 정답이 없는 이야기 속에서 내가 틀리지 않았고, 상대방도 틀리지 않음을 깨닫는 과정은 매번 쉽지 않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의 세계가 조금씩 넓어지는 것을 느낄 때, 이 모든 과정이 얼마나 흥미롭고 가치 있는지 쉽게 깨닫게 된다.

효율과 유용성이 지배하는 지금의 시기. 무용해 보이는 것들이 나의 세계를 직접적으로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나는 더 나은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고, 다른 사람과 그들의 생각을 존재로서 인식하고, 그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한 감각을 배울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유용함’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무용해 보이는’ 책들을 읽는다.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조금 더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조금 더 멀리 있는 타인의 삶에 가까워지기 위해. 우리는 모두 다르지만, 그 다름 속에서 같음을 발견할 때, 우리의 삶은 조금 더 단단해진다고 믿으며. 책을 통해 얻는 이 느슨한 연결은 때로 나를 새로운 질문으로 이끌고, 다른 이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용기를 준다고 믿으며.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을 조금 더 잘 살아가게 할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하며. 그리고 나눈다. 때로는 나와 같은 사람들과, 많은 경우 나와 다른 사람들과. 그렇게 서로의 세상을 넓혀가면서 말이다.



보는 책, 읽는 책, 먹는 책

김민희 톱클래스 편집장

확실히 지하철 풍경이 달라졌다. 종이책을 읽는 사람이 늘었다. 그것도 2030 젊은 층에서. 며칠 전에 이용한 5호선에서는 한 칸에서만 다섯 명이 스마트폰 대신 책을 들고 있는 걸 발견했다. 무슨 책일까 궁금해서 (최대한 티 나지 않게) 들여다봤더니 셋은 소설, 둘은 경제·경영서를 읽고 있었다.

‘책 읽는 사람이 있어 보인다’는 ‘텍스트힙text-hip’. MZ세대를 중심으로 퍼지던 텍스트힙 유행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정점을 이른 것으로 보인다. 내가 편집장으로 있는 심층 인터뷰 매거진 ‘topclass(톱클래스)’의 2024년 12월호 주제를 ‘텍스트의 힘’으로 정한 건 이런 시류를 감지해서였다. 밋밋하고 느리며 여백이 많은 텍스트가 왜 다시 주목받는 것일까. 영상 매체 홍수의 시대, 오래된 것이 다시 주목받는 이 부조화의 현실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싶었다.

텍스트힙의 본질은 ‘나다움’이다. ‘나는 너희들이 잘 모르는 책을 읽고 있어’ 하는 자기만의 취향의 세계. 세상 모두가 다 아는 것은 힙이 아니다. ‘힙’ 하려면 안목이 필요하다. 시간과 노력도 적지 않게 들여야 한다.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 뭐예요?” 질문에 “클래식 (음악)이요”라는 답변과 “사티의 짐노페디Gymnopaedia 1번이요”라고 답하는 사람은 얼마나 다른가. “어떤 커피 좋아하세요?” 질문에 “아메리카노요” 하는 사람과 “톨 사이즈 플랫화이트에 샷 하나 추가, 바닐라 시럽은 한 번만”이라고 답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다른가. 섬세하고 뾰족한 취향이 있는 사람은 나를 존중하는 사람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욕망하는지를 알기 위해 촉수를 안으로 뻗고 꾸준히 자신을 탐색해온 사람이다. 이런 사람의 내면은 부요하다.

이 질문을 책에 해 본다. “어떤 책을 좋아하세요?” “인생 책은 무엇인가요?” “최근 읽은 책 중에서 마음에 남는 책은요?” 책에 대한 취향을 묻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당신의 욕망과 결핍, 지향하는 가치와 취향의 결을 통째로 묻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나는 책에 관한 질문을 함부로 던지지 않는다. 책을 아주 사랑하는 애서가에게 이 질문은 마치 일기장의 가장 구석을 보여달라는 말처럼 선을 넘는 질문일 수 있으므로.

어떤 텍스트는 보고, 어떤 텍스트는 읽으며, 어떤 텍스트는 먹는다. 인스타그램 릴스나 유튜브 쇼츠에 담긴 텍스트는 ‘본다’. 정보와 지식을 위해 접하는 짧은 단락의 콘텐츠는 ‘읽는다’. 하지만 소설과 긴 호흡의 에세이, 인문·경제·과학 서적은 ‘먹는다’. ‘보는’ 텍스트는 뇌를 상하게 만들고, ‘읽는’ 텍스트는 수동적 뇌를 활성화하며, ‘먹는’ 텍스트는 능동적 뇌를 활성화한다는 것은 과학자들의 연구에서 심심치 않게 확인된다.

텍스트를 먹는다는 것은 텍스트를 꼭꼭 씹어 나의 것으로 흡수하는 독서를 말한다. 저자의 사유 궤적을 따라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 내려가는 것이다. 먹는 독서는 나의 내면을 변화시켜서 읽기 전의 나와 다른 사람이 되게 한다. 그러려면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박제사’ 같은 독서가 아니라 ‘요리사’ 같은 독서를 해야 한다. 알베르토 망구엘Alberto Manguel은 “이상적인 독자는 텍스트를 절개해서 껍질을 들어내고 골수까지 파고 들어가, 동맥과 정맥을 일일이 추적해서 완전히 다른 생명을 만들어낼 수 있는 번역가”라고 했다. 긴 호흡의 책에는 필연적으로 저자가 오랫동안 숙성해온 질문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이 질문을 보물찾기하듯, 퍼즐 맞추듯 찾아서 읽다보면 그 과정에서 사유의 힘과 상상력이 생긴다.

그리고 또 하나, 책을 많이 읽으면 자아가 확장된다. 책이라는 공간은 저자의 사유와 나의 사유가 만나는 내밀한 광장이다. 그 광장에서는 책을 펼치기 전에는 상상도 못 한 사유가 피어나고, 그 사유는 다시 세계로 뻗어 나와 내가 속한 세계에 더 큰 질문을 던지게 된다. 여기에 문학과 책의 윤리적 기능이 있다. 긴 호흡의 소설을 많이 읽은 사람들은 타인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다. 인간이 얼마나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한 존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건, 타인을 존중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작지만 분명한 증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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