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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호

로컬 리포트 “우리 일상은
이미 춤으로
가득합니다”
대한무용협회
조남규 이사장

조남규 대한무용협회 이사장과 무용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대화가 한곳으로 모아진다. 그것은 ‘관객’이다. 좋은 작품을 만들고 뛰어난 무용수를 길러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춤을 바라보는 사람이 없다면 무용 생태계는 완성될 수 없다는 이유다. 특히 그가 말하는 관객은 이미 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한 번도 무용을 접해본 적 없는 이들, 공연장 앞에서 망설이는 우리의 평범한 이웃이다.

대한무용협회는 서울무용제와 전국무용제 등을 통해 오랫동안 무용가와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이를 단순히 공연을 여는 일로 한정하지 않았다.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고, 무대에 오르고, 관객을 만나 다시 새로운 창작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협회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서울에서 펼쳐지는 굵직한 행사들은 그가 말하는 선순환이 실제 도시 안에서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다.

지역 춤이 서울에 오르는 의미

제35회 전국무용제가 역사상 처음으로 서울에서 열린다. 각 지역에서 치열한 예선을 통과한 무용단체가 지역의 이름을 달고 서울에 모인다는 점에서 조남규 이사장은 이번 무용제를 특별하게 바라봤다. 지역 민간 무용단이 자체적으로 서울 공연을 올리려면 공연장 대관부터 제작비와 홍보까지 만만치 않은 현실을 감당해야 한다. 그렇기에 지역을 대표해 서울 무대에 오른다는 것 자체가 무용가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의 성취가 된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무용가들에게 서울에서 공연한다는 것은 여전히 하나의 꿈입니다.” 그는 전국무용제를 전국체전에 비유했다. 각 시도에서 대표가 선발되고, 그들이 한곳에 모여 다시 경연을 펼친다는 점에서는 닮았다. 하지만 그가 중요하게 바라보는 것은 어느 지역이 대통령상을 받느냐보다 전국무용제를 전후해 지역의 무용 생태계가 실제로 움직인다는 점이다.

지역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서울의 관객과 기획자를 만나고, 공연이 끝난 뒤 또 다른 무대로 이동할 가능성도 생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서울 개최는 지역의 작품을 수도권에 소개하는 데서 나아가 지역과 서울 사이에 새로운 통로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서울이 지역의 문화를 빨아들이는 중심지가 아니라 지역의 작품이 더 넓은 무대로 나가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가 전국무용제의 서울 개최를 ‘지역 무용 콘텐츠의 유통망을 넓히는 기회’로 바라보는 이유다.

그는 이사장으로 취임한 뒤 전국무용제 규정을 개정했다. 과거에는 출연 무용수 상당수가 해당 지역에 주소지를 둬야 했는데, 무용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일수록 좋은 무용수를 확보하기 어려워 경연에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안무 경연인데 안무가가 작품에 맞는 무용수를 선택하지 못한다면 처음부터 경쟁 조건이 다르지 않냐”는 게 그의 판단이다. 지역 대표 안무가라는 정체성은 유지하면서 출연 무용수의 지역 제한을 완화했고, 심사 역시 작품을 본 직후 개별적으로 점수를 입력하게 하는 등 공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바꿨다.

그의 말을 듣다 보면 전국무용제를 바라보는 기준이 분명해진다. 지역 무용을 활성화한다는 말이 선언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 무용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역의 안무가도 좋은 작품으로 제대로 경쟁하고, 그 성과가 다시 지역의 관심과 지원으로 이어져야 한다. 경연이 끝나는 순간 축제도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다음 작품을 만들어내는 힘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전국무용제 이야기를 마치고 서울무용제로 넘어가자 그의 말에 힘이 실렸다. 전국무용제가 각 지역을 대표하는 작품들의 경연이라면, 서울무용제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단연 ‘창작’이다. 기존 작품을 다시 올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는 무대라는 점이 서울무용제의 정체성이란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서울무용제의 역사는 곧 우리나라 창작무용의 역사라고 봐야 합니다.”

서울무용제의 시작은 1979년 출범한 대한민국무용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처럼 다양한 창작지원 사업과 축제가 없던 시절, 새로운 작품을 만들도록 지원하고 그 결과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하는 흔치 않은 무대였다. 이후 한국무용과 현대무용·발레 각 장르를 대표하는 수많은 안무가가 이 무대를 거쳐갔고, 파격적인 실험도 이곳에서 이어졌다. 그가 서울무용제를 ‘안무가 탄생의 산실’이라고 부르는 배경에는 쌓인 시간이 있다.

그렇다고 오랜 역사만으로 서울무용제의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지금까지 서울무용제가 ‘좋은 작품을 만드는 축제’에 집중했다면 이제부터는 ‘새로운 관객을 발굴하는 축제’라는 숙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고 했다. 참여형 프로그램을 늘리고 공연장을 벗어나 시민의 생활 공간으로 무대를 확장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작품의 수준을 낮추자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무용 앞에 다가설 때 느끼는 부담을 덜자는 취지다.

서울무용창작센터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표정과 목소리가 조금 달라졌다. “이 공간 이야기를 하면 가슴이 먼저 뜨거워진다”는 말이 나왔다. 무용을 위한 공공 거점을 갖는 것은 오랫동안 무용계가 품어온 바람이었고, 그 역시 공간을 계획하는 초기부터 무용계의 의견을 전달하며 상당한 공을 들였다. 전문 무용가들이 실제로 창작하고 연습하고 공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그 과정에서 설계에 반영됐다.

그래서 기대가 큰 만큼 주문도 분명하다. “무용가들이 가장 먼저 찾고 싶은 공간이 될 때, 비로소 무용의 메카가 될 수 있어요.” 단순히 시민 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무용가가 연구하고 실험하며 작품을 만들고, 그 결과가 다시 시민과 지역사회로 이어지는 곳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공간의 가치는 건물의 규모보다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관계와 창작이 시작되느냐에 달려 있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춤의 해’로부터 다시 만나는

올해 제2회 서울어텀페스타에서 무용이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조남규 이사장은 30여 년 전으로 기억을 되돌렸다. 1992년 정부가 예술 분야를 하나씩 집중 조명하기 시작했을 때 첫 번째로 선택한 장르가 바로 ‘춤’이었다. 당시 ‘춤의 해’를 거치며 무용계에는 여러 새로운 사업이 만들어졌고, 전국무용제를 비롯한 사업이 성장하는 발판이 됐다. 그렇기에 그는 2026년 서울이 다시 춤을 전면에 내세우는 상황을 남다르게 바라보고 있었다.

올가을에는 전국무용제와 서울무용제가 서울에서 펼쳐지고, 서울어텀페스타라는 큰 흐름 속에서 무용이 시민의 일상 가까이 들어온다. 특히 그가 주목하는 것은 야외 공간이다. “무용은 대중성이 약하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보면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오히려 어려운 것은 작품 자체보다 사람들이 극장까지 오게 만드는 일이죠.”

공연장 밖에서 만나는 춤은 출발부터 다르다. 공원이나 광장을 지나던 시민이 발걸음을 멈추고 몇 분이라도 그 장면을 바라본다면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생애 처음 만나는 무용이 될 수 있다. 그 첫 경험에서 ‘무용 재미있네’ 하는 감각 하나만 남아도 다음에는 스스로 공연장을 찾을 가능성이 커진다. 그가 올해 서울의 여러 무용 행사를 이야기하면서 가장 기대한 지점도 결국 새로운 관객의 발굴이다.

그는 무용계 내부의 현실에 대해서도 숨기지 않았다. 대중성을 확보한 일부 단체를 제외하면 공연장을 찾는 관객 상당수가 동료 무용인이거나 무용 관계자인 경우가 많고, 서로 공연을 봐주는, 이른바 ‘품앗이’ 문화도 여전하다고 고백했다. “우리끼리 객석을 꽉 채울 수는 있어요. 그런데 무용인끼리 보고 끝나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무용계가 익숙한 울타리를 넘어 시민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 말 안에 담겨 있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엉뚱한 부탁을 했다. 무용 공연을 한 번도 본 적 없고 여전히 무용을 어렵게 생각하는 ‘옆집 사람’에게 한마디해달라고. 잠시 생각에 잠긴 그는 “춤은 원래 일상”이라고 말했다. TV 속 K-팝 안무를 보고 즐거워하고 음악이 들리면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이면서도, 이상하게 공연장에 올라온 춤 앞에서는 무언가를 이해해야 한다는 부담부터 갖는다는 것이다.

“춤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아내려고 하지 말고 무용수의 움직임과 땀, 호흡을 그냥 느끼세요. 정답이 없는 예술이잖아요. 그 순간 내가 느낀 것이 바로 정답입니다.”

조남규 이사장은 올해 서울에서 펼쳐지는 서울어텀페스타를 ‘선물 세트’에 비유했다. 전국에서 올라온 춤, 서울에서 새로 만들어지는 춤이 있으며, 극장 안과 광장 밖의 춤이 한꺼번에 시민을 기다린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보니 그가 한 시간 가까이 이야기한 ‘무용의 대중화’는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았다. 한 번도 춤을 보지 않았던 사람에게 단 한 번이라도 춤과 마주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 어쩌면 여기부터 새로운 무용이 시작될지 모른다.

이규승 서울문화재단 시민문화협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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