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리포트
새로운 실험에서
희망을 보다
중구문화재단
왕소영 사장
무대 위에서 노래하던 예술가였다. 박수받던 성악가는 어느 날 무대 뒤로 들어갔다. 공연을 알리고, 관객을 모으고, 공간을 운영하는 자리다. 그렇게 정동극장과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장애예술 현장을 거쳐 이제는 중구문화재단으로 온 왕소영 사장의 이야기다.
그는 노래하는 사람이기보다 누군가의 예술을 위해 무대를 열어주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면 맞을까. 충무아트센터 로비에서 열리는 작은 음악회, 아이들이 함께 악기를 배우는 꿈의 오케스트라, 장애예술인이 독립적인 예술가로 설 수 있는 기회, 중구의 오래된 장소를 새롭게 읽는 역사 콘텐츠까지. 그가 말하는 중구문화재단의 방향은 거창한 선언보다 한 사람의 일상에 남는 문화의 순간에 닿아 있다.
"중구민이 '그 사장이 있을 때 참 좋았다'고 기억하면 좋겠어요."
인터뷰 말미에 나온 이 말은, 사실 이날 대화를 꿰뚫는 문장이다. 성과나 숫자보다 자주 언급된 말은 '구민'이다. 좋은 공연을 선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초문화재단이라면 문화가 주민의 일상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술은 특별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잠자던 감각을 깨우는 경험이어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문화, 작지만 지속되는 경험
그는 성악가 출신이다. 무대에 서고 노래하던 그는 2000년 12월 정동극장에 입사했다. 당시 정동극장은 전통상설공연을 외국인 관광객에게 알리고 여행상품과 연결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그는 일본 여행사와 공연 패키지 상품을 만들고, 홍보와 마케팅을 위해 직접 뛰었다. "무대에 서던 사람이 행정을 몰랐으니 매일 밤을 새웠다"는 말에 당시의 긴장감이 묻어난다.
2004년에는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설립 초기 멤버로 합류했다.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이전과 맞물려 공연장, 문화상품점, 카페, 주차장까지 문화시설 운영의 전반을 경험했다. 박물관이 닫힌 뒤에도 일을 끝내지 못해 직원들과 찜질방에서 회의를 이어가던 날도 있었다. 그는 그때 문화예술은 시대 흐름과 함께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단다. 과거에는 조심스럽던 굿즈가 이제는 박물관의 대표 콘텐츠가 된 것처럼, 예술행정도 시대의 감각을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그의 이력에서 장애예술을 빼놓을 수 없다. 2011년 발달장애인 문화예술페스티벌을 접한 뒤 발달장애 예술인 지원에 관심을 가졌다. 처음에는 '이들을 위해 무언가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했지만, 마음만으로는 지속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단체를 만들고, 사단법인을 세우고,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진입했다. 혼자서 사업 계획·회계·인사·총무를 직접 챙겼고, 장애예술인이 일하며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갔다.
그는 이 경험이 중구문화재단을 이끄는 데 큰 자산이 됐다고 고백한다. 예술가로서 무대를 알고, 공공기관에서 복합문화시설 운영을 익혔으며, 단체 운영을 통해 행정의 바닥을 배웠기 때문이다. 중구문화재단은 공연, 전시, 도서관, 생활문화 사업을 함께 운영한다. 특히 충무아트센터는 뮤지컬 공연장으로 독보적인 인지도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 성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중구문화재단의 현실은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중구는 25개 자치구 가운데 인구 규모가 작고, 기획 예산도 넉넉하지 않다. 과거처럼 대형 창작뮤지컬을 자체 제작하거나 대규모 공동 기획을 추진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 그래서 그가 택한 방식은 '작지만 지속되는 사업'이다. 큰돈을 쓰는 한 번의 이벤트보다, 주민이 반복해서 만날 수 있는 문화 경험을 만드는 쪽에 무게를 둔다.
"대국민 서비스도 중요하고, 퀄리티 있는 공연도 중요하지만 결국 지역민을 위한 역할이 중요해요."
그 고민에서 시작한 사업이 '중구 수요음악회'다. 충무아트센터 로비에서 첫째·셋째 주 수요일에 음악회를 연다. 대극장의 조명도, 거대한 제작비도 없다. 대신 그곳에는 무대가 필요한 청년 음악가가 있고, 자신의 연주를 들려주고 싶은 장애예술인이 있고, 수영 강습을 마친 뒤 잠시 음악 앞에 앉은 동네 어르신이 있다.
그는 이 장면을 중요하게 여긴다. 누군가에게는 짧은 음악회일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애 첫 무대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관객이 많지 않았지만, 이제는 11월까지 일정이 모두 차 있을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공연을 보러 일부러 찾아오는 주민도 생겼고, 스포츠센터 이용 뒤 자연스럽게 음악회를 찾는 고정 관객도 생겼다.
"예산이 없어도 주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죠."
이 말은 작지만 정확했다. 지역문화재단의 힘은 언제나 큰 무대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로비 한쪽에 놓인 의자 몇 개와 피아노 한 대, 그리고 그 앞에 잠시 멈춰 앉은 주민의 얼굴에서 시작된다.
도서관도 그가 주목하는 자산이다. 중구문화재단은 지역 곳곳의 도서관에서 작가 강연, 인문학 프로그램, 작은 음악회 등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여기에 충무아트센터의 공간을 더 적극적으로 연결하려 한다. 지하 공간을 활용한 문화예술 아카데미, 중구의 역사와 장소성을 살린 인문학 강좌, 예술의전당 영상화 공연을 활용한 시네마 프로그램 등을 구상 중이다. 그는 "공연 영상을 그냥 틀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사전 해설과 짧은 실연이 곁들여질 때 관객은 작품을 더 깊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구민에게 오래 남는 경험을 위해
중구의 특성도 그에게는 중요한 콘텐츠다. 명동·신당·광희문·다산성곽길·이순신 장군 생가터 등 그곳에는 역사와 관광, 생활문화가 겹쳐 있다. 그는 이 자원을 하나의 문화적 이야기로 엮고자 한다. 국립박물관장 등을 지낸 이들이 참여하는 역사 스토리 강좌, 광희문과 성곽길을 따라가는 답사 프로그램, 명동과 신당을 연결하는 외국인 대상 문화관광 상품도 고민 중이다. 주민에게는 자신이 사는 곳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고, 관광객에게는 중구를 소비의 공간 너머 문화의 장소로 경험하게 하는 길이다.
특히 이순신 장군 생가터가 중구에 있다는 점을 활용한 브랜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한양여대 산업디자인과와 협력해 이순신을 주제로 한 굿즈 개발을 준비하고, 장기적으로는 VR·XR 기술을 활용한 몰입형 전시도 검토하고 있다. 통영과 아산의 이순신이 바다와 거북선의 이미지라면, 중구의 이순신은 서울 한복판에서 새롭게 만나는 도시형 역사 콘텐츠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장애예술과 다양성도 재단 운영에 담아내려 한다. 취임 후 중구장애인복지관을 찾은 그는 지역 안에 이미 수준 높은 장애예술 활동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앞으로 재단은 이 활동을 더 잘 보이게 하고, 무대와 전시, 굿즈 제작, 나아가 일자리로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해야 한단다. 포용은 시혜가 아니라 예술가로 설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 그의 관점이다.
그는 예술성, 공공성, 책임경영이 따로 갈 수 없다고 말한다. 좋은 취지라도 운영 원칙이 무너지면 지속될 수 없고, 효율만 앞세우면 문화재단의 존재 이유가 흐려진다. 결국 지역문화재단은 주민에게 오래 남는 경험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그는 대학에서 강의하던 시절의 기억을 들려줬다. 교양수업에서 학생들에게 모차르트 영화를 보여주고, 음악을 듣게 하고, 기말고사에는 '오 솔레미오'를 부르게 했다. 시간이 지나도 학생들은 그 수업을 기억했다. 어떤 학생은 그 노래 한 곡이 사회생활에서 뜻밖의 힘이 됐다고 연락해왔다. 그는 그것을 '임팩트'라고 불렀다.
"어떤 순간이 딱 마음에 남으면 오래 기억되거든요. 그 경험 하나로도 삶이 풍부해질 수 있어요."
어쩌면 그가 중구문화재단에서 만들고 싶은 것도 그런 순간일지 모른다. 로비에서 우연히 만난 음악, 아이가 처음 잡아본 악기, 어르신이 공연을 보고 돌아가는 길의 미소, 외국인이 명동 너머 중구의 이야기를 발견하는 경험. 그것들이 쌓이면 재단은 단순 기관이 아니라 기억이 된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던 가수가 이제 다른 이들의 무대를 지원한다. 그 무대가 대극장일 때도 있고, 도서관 한편일 때도 있고, 충무아트센터 로비일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누군가의 마음이 조금은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그 사장이 있을 때 참 좋았다."
왕소영 사장이 바라는 기억은 거창하지 않다. 하지만 기초문화재단이 남길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성과는 어쩌면 바로 그런 말일지도 모른다. 중구의 일상에 작지만 선명한 문화의 순간을 남기는 것. 그의 새 실험은 그 기억을 향해 천천히 나아간다.
글 이규승 서울문화재단 시민문화협력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