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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호

로컬 리포트 오래된 종로를
오늘의 문화로 번역하다
종로문화재단
김승모 대표이사

가느다란 봄비가 내린 5월의 어느 날, 종로문화재단 김승모 대표이사를 만난 곳은 '무계원'이었다. 종로구 부암동 언덕 아래 자리한 이 한옥은 그 자체로 종로의 시간을 품고 있다. 지금은 사라진 인사동의 요정 '오진암'(조선 말기 서화가 이병직의 가옥) 일부 자재가 이곳에 옮겨와 다시 집의 몸을 이루고 있었다. 오진암은 한때 서울 근현대사의 굵직한 장면과도 연결된 장소다. 사라진 공간의 흔적이 부암동 언덕 위에서 새 이름을 얻은 셈이다. 그는 이 터가 종로의 여러 기억과 맞닿아 있다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옛 기억의 장소를 설명하는 그의 말에는 행정가의 보고보다 동네 사람의 기억이 먼저 묻어났다.

김승모 대표는 종로에서 오래 살았고, 이곳에서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대학교를 제외하고 한평생 이곳에서 일하며 종로의 길과 골목을 가까이에서 지켜봐온 산증인이다. 그래서 돈화문로 문화보존회 사무총장과 창덕궁 앞 열하나 동네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한 이력도 단순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에게 종로는 관리해야 할 행정구역이기 전에, 몸으로 익힌 생활권이자 시간의 층위가 겹겹이 쌓여 밀착된 현장이다.

"종로 하면 대개 궁궐, 한옥, 한복 같은 단어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실제로 와서 들여다보면 훨씬 다양합니다. 서촌에는 독립서점이 많이 생겼고, 젊은 예술가와 생활문화인도 활발히 움직입니다. 선입견이 너무 강해서 잘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종로는 오래됐지만, 사람들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김 대표가 바라본 종로의 첫 과제는 바로 그 선입견을 걷어내는 일이었다. 종로는 분명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의 지층을 가진 지역이다. 그러나 '오래됐다'는 말이 곧 '박제'를 뜻하는 건 아니다. 그는 종로의 문화가 전통의 보존에 머물지 않고, 오늘의 시민과 다시 만나는 방식으로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보존하기 위해 변화한다는 것

김승모 대표가 자주 꺼내는 말은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래됐다고 모두 좋은 것은 아니며, 보존해야 할 것은 보존하되 시대에 맞게 새롭게 해석해야 후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김치를 예로 들었다. 조선 시대에 고춧가루가 들어오기 전 김치와 오늘의 김치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변화했기 때문에 오히려 살아남을 수 있었다며 전통문화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사람들이 찾지 않는 문화는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원형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지만,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이어집니다. 대장장이가 망치로 쇠를 두드리는 과정 자체를 보존하는 일도 필요하고, 동시에 오늘의 방식으로 새롭게 보여주는 일도 필요합니다. 둘은 나누어 생각해야 합니다."

그 생각은 재단 사업에도 조금씩 반영됐다. 대표 축제 중 하나인 종로한복축제에서도 전통 복식의 재현에만 머물지 않고, 한복을 소재로 한 캐릭터 전시, 한복 문양을 활용한 작가 작업, 한복을 입은 발레 공연 등 새로운 시도를 더했다. 한복을 궁중 의상이나 전통 의례의 장면에만 가두지 않고, 동시대 무대와 시각예술 안에서 다시 움직이게 한 것이다.

김 대표는 지역문화재단의 역할을 설명하면서 '문화 보건소'라는 표현을 썼다. 지역문화재단은 대형 병원처럼 완성된 문화만 제공하는 기관이 아니라, 주민이 문화의 첫 계단을 밟을 수 있도록 돕는 1차 진료기관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재단이 주민을 앞에서 끌고 가기보다, 주민들이 스스로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지역 주민의 문화적 욕구가 이렇게 큰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재단이 먼저 정해서 끌고 가면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장을 만들어주고, 모이게 하고, 이야기를 나누게 하면 어느 순간 주민의 입에서 '우리 이런 것 한번 해 봅시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지역문화는 그 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가 제안한 <어디나 스테이지>도 이와 닿아 있다. 광화문광장이나 마로니에공원처럼 이미 알려진 장소만이 아니라, 골목길과 시장 어귀, 오피스 타운 주변, 점심시간과 퇴근 시간 등 일상 속 장소와 시간으로 공연을 가져가는 시도다. 종로의 문화가 특정 장소에 갇히지 않고, 시민의 생활 리듬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종로형 문화관광에 대한 생각도 분명했다. 종로는 이미 관광객이 넘치는 도시다. 북촌 일대는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으로 주민 불편이 커져 방문 시간제한까지 논의될 정도다. 그래서 김 대표는 종로의 문화관광이 단순히 더 많은 사람을 불러오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더 많이 보게 하는 관광이 아니라, 더 깊이 느끼게 하는 관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 찍고 쇼핑하고 지나가는 관광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무계원 같은 공간에서 차를 마시고, 붓글씨를 써보고, 매듭을 만들어보고, 한복 바느질을 해 보는 식의 체험이 필요합니다. 짧은 시간이더라도 손으로 경험하면 종로가 다르게 남습니다."

윤동주에서 아트버스까지, 종로를 다시 경험하는 방법

그런 점에서 2025년 윤동주문학제 '동주를 그리다'는 종로문화재단이 오래된 문학 자산을 오늘의 예술언어로 다시 번역하려는 시도였다. 윤동주 시인 서거 80주기와 광복 80주년이라는 역사적 분기점 속에서 열린 이 축제는 기존의 시화전과 창작음악제에 더해 미디어 공모전을 새롭게 도입했다. AI를 활용한 작품도 접수됐다. 심사 과정에서 논의는 있었지만, 새로운 표현 방식으로 인정하되 활용 방식을 밝히는 방향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김 대표는 윤동주의 '남겨진 시'뿐 아니라 '남기지 못한 시간'에서도 의미를 찾았다.

"윤동주 시인이 오래 살았다면 지금처럼 강렬한 상징으로 남았을까요. 그는 단 한 권의 시집을 남기고 젊은 나이에 떠났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후대가 상상할 여지가 큽니다. 그가 어떤 시를 더 썼을지, 어떤 삶을 살았을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 여백이 윤동주를 계속 새롭게 표현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봅니다."

한편, '종로 아트 버스&투어'는 또 다른 실험이다. 광화문에서 출발해 부암동·평창동·홍지동·서촌을 잇는 이 사업은 단순한 순환버스가 아니다. 평창동과 부암동 일대에는 환기미술관·석파정 서울미술관·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가나아트센터·토탈미술관 같은 주요 시설뿐 아니라 크고 작은 갤러리와 예술가의 작업공간이 밀집해 있다. 그러나 접근성은 늘 과제였다.

"좋은 문화 자산이 있어도 가기 어려우면 시민이 만나기 어렵습니다. 평창동·부암동에는 알려진 미술관 외에도 작은 갤러리가 많습니다. 그것을 엮어주면 미술 애호가에게도, 처음 방문하는 시민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그는 아트버스가 앞으로 평창·부암동에만 머물 필요는 없다고 했다. 윤동주문학관의 '동주마실'을 혜화동과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일대로 넓히려는 구상도 있다. 북촌의 갤러리, 대학로 주변의 문학과 공연 자산까지 연결하면, 아트버스는 하나의 노선을 넘어 종로 전체를 다시 읽는 문화관광 모델이 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가이드 해설에 대한 그의 반응이었다. 처음에는 해설의 전문성이 충분한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지만, 대부분 참여자가 예상보다 크게 만족했단다. 그 경험을 통해 그는 문화 사업의 완성도만큼이나 문턱을 낮추는 일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우리는 자꾸 완성된 것을 보여주려 합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이 경험할 수 있게 문턱을 낮추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다음 판단은 시민이 스스로 하게 하면 됩니다."

남은 임기 동안 꼭 이루고 싶은 변화가 무엇인지 묻자, 김 대표는 거창한 목표를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종로문화재단의 존재를 알리는 일"이라고 간명하게 답했다. 지역에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종로문화재단이 뭐 하는 곳이냐"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첫 번째 역할을 재단의 홍보대사로 정했다.

"문화예술인은 재단을 압니다. 하지만 일반 주민 대부분은 잘 모릅니다. 종로문화재단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일이 중요합니다. 단기간에 무엇을 해내겠다는 것보다, 앞으로 가야 할 흐름을 잡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문화재단과의 협력에 대해서도 그는 역할 분담을 강조했다. 광역문화재단은 광역의 자원과 기획력을 갖고 있고, 기초문화재단은 주민과 가까운 접점을 이루고 있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좋은 프로그램을 경쟁적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시민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함께 공유하는 일이다.

인터뷰 말미에 이르러 그에게 종로문화재단을 한 문장으로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 이렇게 말했다. "종로에는 무한한 잠재력이 있습니다. 그 가능성이 앞으로 어떤 K-컬처로 표현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무계원 마당에는 봄의 빛이 내려앉고 있었다. 사라진 공간의 자재로 다시 지어진 집에서, 오래된 종로의 미래를 묻는 대화가 이어졌다. 종로는 오래됐지만 멈춰 있지 않다. 누군가는 그것을 보존하고, 누군가는 다시 바꿔 보여준다. 김승모 대표가 말한 종로문화재단의 일은 그 사이에 있다. 종로의 시간을 오늘의 시민 경험으로 번역하는 일, 그것이 지금 종로문화재단이 붙들고 있는 가장 오래된, 동시에 가장 새로운 과제다.

이규승 서울문화재단 시민문화협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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