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도시 읽기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다
지난 4월 30일 '얼굴 없는 예술가'로 유명한 영국의 뱅크시Banksy가 런던 도심 한복판에 동상 하나를 세워서 큰 화제가 됐다. 정장 차림의 한 남성이 깃발을 들고 행진하듯 힘차게 걸어가는 모습의 이 동상은 조금만 자세히 보면 풍자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들고 있는 깃발이 바람에 날려 남성의 얼굴을 가렸고,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행진하느라 한 발이 받침대를 벗어나 떨어지기 직전의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다.
자신을 '예술 테러리스트'라고 소개하는 뱅크시는 도시 곳곳에 허가받지 않고 그라피티 작품을 남기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간혹 조각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강한 사회 비판적 메시지와 '낙서'라는 장르 특성상 법에 저촉될 위험 때문에 신분을 숨기고 작업하지만, 그는 전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예술가가 됐다.
이번 작품은 '깃발'로 상징되는 국가주의와 이념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을 경고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겨냥해 만든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이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재치 있는 묘사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설치된 장소가 워털루 플레이스Waterloo Place이기 때문이다. 워털루 플레이스는 1815년 워털루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나폴레옹 전쟁의 종식과 대영 제국의 부상을 상징하는 장소이고, 화이트홀(정부 청사 거리)과 버킹엄 궁전 사이에 있다. 왕립지리학회 같은 유서 깊은 기관과도 인접해 있다. 한마디로 영국의 '체제'를 대변하는 곳이다. 바로 그곳에 '깃발'의 위험을 경고하는 동상을 세운 것이다.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다. 정치적 의도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하나의 정치적 태도다. 하지만 동상은 언제나 그 위치 자체가 정치적 논란의 중요한 이유가 돼왔다. 뱅크시가 세운 동상에서 멀지 않은 트래펄가 광장 앞에는 찰스 1세 기마상이 높은 받침대 위에 세워져 있다. 프랑스 조각가 위베르 르 쉬외르가 1633년경 제작한 이 동상은 영국 공공장소에 세워진 가장 오래된 청동 기마상이다. 그런데 이 동상이 현재의 자리에 오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찰스 1세는 1649년 잉글랜드 내전(청교도 혁명)에서 의회파에 패배한 뒤, 국왕으로서는 처음으로 재판에 회부돼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화이트홀 거리에 있는 뱅퀴팅 하우스 앞에서 처형됐다. 왕을 없앤 의회는 찰스 1세의 동상을 부수라고 명령했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한 금속 세공인은 이 동상을 자기 집 마당 아래 몰래 파묻고는 모두 녹여 칼과 못으로 만들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런데 1660년 영국에서는 왕정이 복고됐고, 찰스 1세의 아들인 찰스 2세가 왕위에 올랐다. 그걸 본 금속 세공인은 찰스 1세의 기마상을 다시 파내 왕궁에 팔았고, 찰스 2세는 애초 왕궁 정원에 세우려고 제작한 이 동상을 트래펄가 광장 앞 현재의 위치에 높이 세웠다. 아버지가 처형당한 뱅퀴팅 하우스를 내려다보게 함으로써 '국왕이야말로 국가의 중심이자 근간'임을 알린 것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상징과도 같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역시 광장과 복잡한 사연이 있다. 다비드상은 처음에는 성당의 높은 지붕 위에 세우기 위해 제작된 작품이다. (이 조각상의 손과 발의 비율이 비정상적인 이유도 멀리서 보는 것을 고려해 디자인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완성된 작품을 보니 잘 보이지 않는 성당 지붕 위에 놓기에는 너무 아까웠고, 피렌체 시민은 장소 선정 위원회까지 만들어 논의한 끝에 결국 다비드상을 피렌체 정치의 중심지인 시뇨리아 광장(베키오 궁전 앞)에 세우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조각상을 광장에 놓는 것은 그 자체로 정치적 메시지다. 당시 피렌체 시민은 독재를 휘두르던 메디치가를 쫓아내고 공화국을 세운 상태였고,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린 소년 다비드(다윗)는 바로 '폭군(메디치)을 몰아낸 자유로운 피렌체 시민'을 상징하는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즉, 다비드상이 광장에 놓인 것은 사실 메디치가에 보내는 아주 강력한 경고였던 것이다.
특히 다비드의 눈은 로마 쪽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메디치가가 망명해 있던 방향이자 그들을 후원하던 세력을 노려보는 것으로 해석된다. 메디치를 지지하던 세력은 이런 분명한 정치적 메시지에 크게 반발했고, 밤에 몰래 다비드상에 돌을 던져 훼손을 시도하기도 했다.
나중에 메디치 가문이 다시 권력을 잡았을 때 다비드상을 당장 치워버리고 싶어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다비드상이 이미 피렌체의 상징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다. 그래서 메디치가는 다비드상을 없애는 대신, 그 옆에 '헤라클레스와 카쿠스'라는 거대한 조각상을 세우는 쪽을 선택한다. '진짜 힘은 다비드 같은 꾀가 아니라 헤라클레스 같은 압도적인 무력(메디치 가문의 힘)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결국 광장의 동상은 단순히 돌과 청동으로 만든 장식물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누가 이 도시의 주인인가',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가', '시민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가'를 조용히 가르치는 일종의 방향 표지판에 가깝다. 그래서 혁명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동상이 끌어내려지고, 새로운 권력이 들어서면 가장 먼저 새로운 동상이 세워진다. 뱅크시는 이런 전통과 광장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어쩌면 현대의 정치란 더 이상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들이 매일 무심코 지나치는 풍경 - 혹은 우리가 항상 들여다보는 휴대전화 화면 - 을 선점하는 일에 가까워졌는지도 모른다.
글 박상현 오터레터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