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읽는 경제학의 눈
물거품이 된
인어공주의
투자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의 결말은 우리가 흔히 기억하는 디즈니식의 행복한 결혼식이 아니다. 왕자의 곁에 선 다른 여인을 축복하며, 인어공주는 자신의 몸이 공기 중으로 흩어져 차가운 바다의 물거품으로 변하는 비극을 받아들인다. 어릴 적 이 동화를 읽으며 우리는 사랑의 숭고함에 눈시울을 붉혔지만, 어른이 되어 경제학의 렌즈로 다시 들여다본 인어공주의 선택은 지독하리만큼 불공정한 ‘거래’의 결과물일 뿐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인어공주의 비극은 낯설지 않다. 화려한 수익률을 보장한다는 말에 자신의 핵심 자산을 담보로 잡히고, 결국 시장의 거품이 꺼지며 빈손으로 남게 되는 수많은 현대인의 자화상이 그 속에 투영돼 있기 때문이다.
핵심 자산을 매각한 레버리지 투자
인어공주가 육지로 나가기 위해 바다 마녀를 찾아간 행위는 경제학적으로 보면 전형적인 ‘레버리지Leverage 투자’다. 그녀는 인간의 다리라는 ‘미래 가치’를 얻기 위해 자신의 가장 소중한 자산인 목소리를 담보로 제공한다. 여기서 목소리는 단순한 음성이 아니다. 인어공주라는 한 개인의 정체성이자, 시장(왕자)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마케팅 수단이며, 위기 상황에서 자신의 지분을 주장할 수 있는 의결권이다.
경제학자들은 투자할 때 결코 ‘핵심 역량’을 포기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인어공주는 왕자의 사랑이라는 불확실한 고수익을 노리고, 자신의 본질적인 경쟁력을 통째로 마녀에게 넘겨버린다. 이는 마치 스타트업이 당장의 운영자금을 얻기 위해 기술 특허와 경영권을 모두 내놓는 것과 같다.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는 왕자 앞에 섰을 때 자신이 그를 구한 생명의 은인임을 증명할 수 없었다. 자본은 얻었으되 그 자본을 굴릴 목소리(권리)가 없으니, 거래는 시작부터 파국을 예고한 셈이다.
이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가장 위험한 거래 중 하나인 ‘의결권 없는 주식’에 전 재산을 올인한 것과 다름없다. 인어공주는 다리라는 화려한 외형 자산을 취득했지만, 그 자산의 가치를 결정하고 방어할 유일한 수단인 목소리를 매몰시켰다. 경영학적으로 볼 때, 목소리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선 ‘경영권’ 그 자체다. 아무리 막대한 자본을 투입한들 경영권 없는 투자자는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지분을 주장할 수 없는 허수아비로 전락한다. 권리가 거세된 자본은 주인을 지켜주지 못한다.
시장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정보의 격차다. 인어공주와 왕자의 관계에는 거대한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왕자는 자신을 구한 여인이 곁에 있는 인어공주라는 사실을 모른다. 인어공주는 진실을 알고 있지만, 목소리가 없기에 이 정보를 시장에 전달할 ‘신호 발송Signaling’ 수단이 없다. 반면 이웃 나라 공주는 아무런 노력 없이 왕자를 구했다는 오해의 수혜자가 된다. 경제학자 마이클 스펜스가 강조한 신호 발송 이론에 따르면,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지 못하는 우량주(인어공주)는 불량주(이웃 나라 공주)에게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인어공주의 고통스러운 춤사위는 왕자에게 그저 아름다운 구경거리에 불과했다. 소통 수단이 차단된 상태에서 진심이라는 무형 자산은 시장 가격에 반영되지 않는다. 오늘날 기업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광고하고 공시하는 이유도 인어공주처럼 ‘침묵 속에서 잊히지 않기 위함’이다. 아무리 뛰어난 펀더멘털을 갖춘 기업이라 할지라도 시장과의 소통이라는 통로가 막히는 순간, 그 가치는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채 만년 저평가라는 심해의 그늘 속에 갇히고 말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계약을 맺고 있는가
마녀와의 계약서에는 잔혹한 독소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왕자의 사랑을 얻지 못하면 물거품이 된다는 조건이다. 결전의 날, 왕자가 다른 여인과 혼인하자 인어공주의 투자는 ‘원금 전액 손실’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치닫는다. 여기서 인어공주의 언니들이 나타나 단검을 건넨다. 왕자의 심장을 찌르고 그 피를 다리에 적시면 다시 인어로 돌아올 수 있다는, 일종의 ‘손절매Stop-loss’ 기회였다. 하지만 인어공주는 칼을 바다로 던져버린다. 그녀는 이미 목소리를 지불했고, 가족을 떠나왔으며, 매 걸음 칼날 위를 걷는 듯한 통증을 견뎌왔다. 그동안 쏟아부은 ‘매몰 비용Sunk cost’이 너무나 컸기에, 그녀는 비극적인 결말을 바꿀 마지막 선택지마저 포기한다.
결국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된다. 거품이란 본질적 가치보다 가격이 과도하게 부풀려졌다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인어공주가 꿈꾼 육지에서의 삶과 왕자와의 미래는 마녀가 설계한 정교한 거품이었다. 실체가 없는 환상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건 투자의 끝은 차가운 바다의 포말뿐이었다. 장밋빛 전망에 눈이 멀어 리스크 관리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스스로 해제해버린 대가는, 결국 시장의 냉혹한 심판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모든 자산이 증발해버리는 허망한 소멸이었다.
인어공주의 이야기는 19세기 동화 속에만 머물지 않는다. 현대의 우리는 수많은 ‘마녀’와 계약을 맺는다. 당장의 편리함을 위해 개인정보라는 목소리를 팔고, 화려한 소비라는 다리를 얻기 위해 미래의 소득을 가불한다. 우리가 맺는 수많은 약관과 계약서 속에, 혹시 인어공주의 목소리를 앗아간 것과 같은 독소 조항이 숨어 있지는 않은가.
안데르센이 인어공주를 거품으로 만든 이유는 어쩌면 세상의 비정함을 알리기 위함이었을지 모른다. 시장은 진심만으로 움직이지 않으며, 준비되지 않은 투자는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는 냉혹한 진리 말이다. 물거품이 된 인어공주를 보며 우리가 고개를 끄덕여야 할 지점은 사랑의 슬픔만이 아니다. 자신의 핵심 가치를 지키지 못한 거래가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내놓는 ‘목소리’의 기회비용이 얼마나 막대한지를 깨닫는 것이다. 거품이 사라진 자리에는 차가운 바닷물만 남겠지만, 그 교훈을 읽어낸 자만이 다음 계약에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온전히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글 조원경 세종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