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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OF SEOUL

8월호

해외는 지금 한국어를 통해 바라본 세계
제80회 아비뇽 페스티벌


교황청 명예의 뜰에서 공연된 <새> 무대에는 배우 이혜영, 소설가 한강,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나란히 섰다 ⓒChristophe Raynaud de Lage/Festival d'Avignon

여름의 프로방스,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매미가 울고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벽마다 연극 포스터가 빼곡하다. 거리는 자신의 극을 홍보하는 배우들의 열정으로 뜨겁고, 벤치와 테이블은 두꺼운 프로그램북을 펼쳐 든 사람들로 분주하다. 거대한 교황청 안뜰에는 매일 밤 2천 석 규모의 대작이 오르며, 골목골목 소극장마다 세계 각국의 극이 펼쳐진다. 7월이면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극장이 되는 이곳, 아비뇽 페스티벌의 풍경이다.

아비뇽 페스티벌이 올해 80회를 맞았다. 올 축제는 이 기념비적인 숫자만큼이나 한국 공연예술계에도 특별한 시간이었다. 한국어가 초청 언어Langue invitee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초청 언어 제도는 2023년 티아고 호드리게스Tiago Rodrigues 예술감독이 "국경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 세계를 바라보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선정된 언어는 프랑스어와 함께 공식 포스터와 프로그램, 공연장 안내 등에 사용되며 해당 언어권 작품과 작가, 관련 행사가 축제 전반에 걸쳐 소개된다. 한국어로 된 표지판과 매표소는 물론 공식으로 마련된 바에서는 한국 음식도 판매됐다.

올해 공식IN 프로그램에는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2021를 원작으로 한 낭독극 <새>, 이자람의 창작 판소리 <눈, 눈, 눈>, 유럽 연극계에서 주목받는 구자하의 작품 시리즈 <쿠쿠>, <한국 연극의 역사>, <하리보 김치> 등 한국 작품 9편이 초청됐다. 지금까지 초청된 영어·스페인어·아랍어는 다국가 언어라 작품의 국적 또한 다양했지만, 한국어는 단일 국가, 단일 민족의 언어인 터라 더욱 자연스레 우리만의 공연예술을 집중 조명하는 무대가 되었다. '뉴욕 타임스'는 "올해는 초청 언어의 의미가 전보다 선명하게 드러났으며, 서구 무대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한국어를 만날 기회였다"고 평했다.

7월 15~16일 축제의 상징인 교황청 명예의 뜰Cour d'honneur du Palais des papes에 <새>가 올랐다. 교황청의 육중한 벽에 둘러싸인 약 2천 석 규모의 중정형 야외극장이다. <새>는 이곳에 오른 첫 한국어 작품이며, 이혜영은 이곳에 선 최초의 한국 배우가 됐다. 공연은 새하얀 무대 위 이혜영과 이자벨 위페르가 각각 인선과 경하 역을 맡아 한국어와 프랑스어로 대화를 이어갔다. 뒤의 벽에 영어 자막과 프랑스어와 한국어 자막이 번갈아 영사됐다. 친구 인선의 부탁으로 제주에 홀로 남겨진 새를 돌보기 위해 떠난 경하의 여정이 제주 4.3사건의 기억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끝 무렵 한강 작가가 직접 무대에 올라 작품의 마지막 부분을 낭독하며 깊은 울림을 남겼다.

이혜영은 16일 현지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의 대표 배우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왔다. 아비뇽처럼 관객 수준이 높은 무대에 서게 되어 영광이다. (…) 두 언어가 충돌할지 조화를 이룰지, 한국어가 음악으로 들릴지 소음으로 들릴지 경험하는 소중한 자리였다."라고 전했다.

현지 관객과 호흡한 리퀴드사운드의 무대 ⓒChristophe Raynaud de Lage/Festival d'Avignon

17일 아비뇽 오페라극장에서는 이자람의 <눈, 눈, 눈>이 프랑스 초연됐다. 톨스토이 『주인과 하인』을 판소리로 재창작한 작품으로, 폭설 속에서 헤매는 주인과 하인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탐욕과 구원을 그린다. 시작 전 이자람은 판소리와 추임새를 소개하며, 추임새로 쓸 만한 프랑스어 감탄사를 제안하는 등 관객의 참여를 이끌었다. 검은 배경, 부채 하나와 장구 하나뿐인 무대였지만 그는 소리와 연기로 극장을 러시아 눈보라 속으로 데려갔다. 공연이 끝나자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매번 비공식 부문인 '오프Off'에 올랐던 이자람이 환호와 함께 '공식IN'에 데뷔한 것이다. '르 몽드'는 "단 1분도 망설이지 않고 우리를 사로잡았다", '리베라시옹'은 "숨 막힐 듯한 연기"라고 평했다.

한국 문화는 축제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공식 토론장인 '카페 데 지데'에서 한강(7월 12일)과 이자람(20일)이 관객을 만났고, 영화관에서는 한국영화 특별전이 열렸다. 교황청에서는 이우환의 장소 특정 전시 《Relatum》이 개최됐다. <눈, 눈, 눈>의 프랑스어 번역가이자 프랑스에 판소리를 소개하는 한국소리페스티벌K-VOX을 운영하는 한유미 박사는 "프랑스에서 30년을 지내는 동안 한국의 국격이 차근차근,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느끼고 있다"며 "올해 아비뇽으로 그 정점을 찍은 것 같다"고 전했다.

이번 초청은 한·불 수교 140주년을 계기로 추진됐다.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예술경영지원센터·서울국제공연예술제 등이 아비뇽과 지속해온 교류가 기반이 됐다. 또한 지역 공연예술 생태계가 함께 만든 결과다. 공식 초청작 가운데 이진엽의 <물질>은 서울문화재단 지원사업으로 시작해 서울거리예술축제를 거쳐 해외 무대로 확장된 작품이다. 한 작품이 지역의 창작 지원을 발판으로 세계적인 축제에 다다르는 과정은 우리 공연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올여름 아비뇽이 초대한 것은 작품만이 아니었다. 한국어라는 언어와, 그 언어를 무대에 올린 예술가, 그리고 그들을 오랫동안 지원해온 창작 생태계도 함께였다. 그렇게 한국어는 번역의 대상을 넘어선 공연 언어가 됐고, 한국 공연예술은 세계와 동시대적 감각을 나누는 주요 예술이 되고 있다.

이진엽 연출 <물질> 무대 ⓒChristophe Raynaud de Lage/Festival d'Avignon

공연 포스터가 빼곡한 아비뇽 거리 ⓒ전윤혜

전윤혜 음악평론가  |  사진 제공 Festival d'Avign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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