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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OF SEOUL

6월호

이야기를 읽는 경제학의 눈 세대를 건너온 그 사랑의 수익률


사랑에는 정답이 없다. 정답이 없기에 미로를 걷는 것 같고, 때로는 한정된 보물을 차지하려는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경제학적으로 볼 때, '처음'의 기억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을 넘어 한 개인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강력한 '각인 효과Imprinting Effect'를 지닌다. 이뤄지지 못한 첫사랑이 유독 시리지 않은 기억으로 남는 이유는, 그것이 완성되지 못한 채 우리 내면에 영원한 '미실현 가치'로 보존되기 때문이다. 현실이라는 시장에 상장돼 가격이 매겨지거나 퇴색될 기회를 얻지 못했기에 그 기억은 역설적으로 그 어떤 우량주보다 찬란한 고점의 상태로 우리 가슴속에 박제된 셈이다.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와 영화 <클래식>을 관통하는 서사는 '대를 이은 사랑'이다. 한 세대에서 못다 핀 꽃이 다음 세대에서 결실을 보는 과정은 경제학의 '인적 자본Human Capital 축적' 이론과 닮았다. 흔히 세계적인 예술가가 탄생하기 위해선 3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1세대는 자본을 축적하는 '부의 형성'에 집중하고, 2세대는 그 자본을 바탕으로 경제적 결핍 없이 교육받으며 문화적 소양을 닦는다. 그리고 3세대에 이르러서야 부모의 전폭적인 후원과 환경적 자극 속에서 비로소 세계적인 천재성이 꽃을 피운다.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은 단순한 현금이 아니라 미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자본의 토대, 즉 인적 자본의 연대다. 상속세 고지서에는 찍히지 않지만, 세대를 거치며 축적된 지적 유산과 정서적 회복 탄력성이야말로 자녀가 거친 시장의 풍랑 속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지켜내게 하는 가장 강력한 '무형의 안전망'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대를 잇는 사랑과 인적 자본의 연대

영화 <클래식>에서 엄마의 첫사랑은 친구의 연애편지를 대필하며 시작된다. "태양이 바다에 미광을 비추면 나는 너를 생각한다"는 절절한 고백은 친구의 이름으로 전달되지만, 그 문장을 빚어낸 진심의 주인은 따로 있다. 이는 경제학적으로 볼 때 일종의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이자 '브랜드 네이밍'의 오류다. 실제 가치를 생산한 공급자(첫사랑)가 자신의 브랜드가 아닌, 시장에서 더 매력적인 조건을 갖춘 대리인(친구)의 브랜드를 빌려 고객(엄마)에게 접근한 셈이다. 정략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와 신분 차이라는 진입 장벽 앞에서, 첫사랑은 자신의 이름을 감추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리인 비용'은 가혹했다. 엄마는 편지에 담긴 문장의 가치에 반했지만, 정작 그 가치의 생산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기에 엉뚱한 사람과 인연을 맺을 뻔한 '역선택Adverse Selection'의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진심이라는 무형 자산은 결국 시장의 왜곡을 뚫고 나오기 마련이다.

엄마와 첫사랑의 만남을 아프게 정리한 것은 '소나기'였다. 황순원의 소설 속 소년과 소녀처럼, 예기치 못한 비는 나룻배를 떠내려가게 하고 두 사람의 귀가를 늦춘다. 경제학적으로 소나기는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외생적 충격이다. 전쟁터에서 잃어버린 시력, 정략결혼으로 엇갈린 운명은 개인이 회피할 수 없던 시대적 리스크였다. 첫사랑은 시각 장애를 숨기고 엄마를 만나 "너 하나도 안 변했어"라며 거짓 연기를 한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정상인처럼 행동하기 위해 전날 미리 동선을 파악한 그의 눈물겨운 노력은, 사랑이라는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손실을 스스로 감수하는 '이타적 선택'의 정점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가장 가치 있는 투자

하지만 비극으로 끝난 부모 세대의 사랑은 자식 세대에서 과거의 관성에 묶이지 않고 새로운 균형을 찾는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과거의 결정이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이라 부르지만, <클래식>의 딸은 이 경로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뒤바꾼다. 딸이 우연히 열어본 엄마의 비밀 상자는 과거의 슬픔을 현재의 축복으로 치환하는 매개체가 된다. 엄마가 그토록 사랑했던 남자의 아들이 바로 딸이 지금 사랑하는 선배라는 사실은, 부모 세대가 흘린 눈물이 자식 세대에서 '긍정적 외부효과Positive Externality'로 작용함을 의미한다. 티셔츠 한 장을 우산 삼아 빗속을 달리는 딸과 선배의 모습은, 부모 세대가 소나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단절의 역사를 치유하는 장면이다.

그리움이 깊을수록 새벽은 쉽게 오고, 진심은 결국 운명의 물줄기를 돌려놓는다. 사랑 앞에 용감하라. 소나기가 온들, 찬바람이 분들 무엇이 두렵겠는가. 경제적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부모의 희생과 사랑은 자식 세대에서 비로소 완성된 가치로 평가받는다. 티셔츠 하나로 비를 가린 채 함께 웃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시장의 변동성에 휘둘리지 않고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증명되는 가장 안전자산 같은 행복일 것이다. 부모의 사연이 자식의 축복으로 승화되는 그 찬란한 순환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배운다. 비록 세대를 건너온 그 사랑의 수익률은 눈에 보이는 수치로 환산할 수 없으나, 훗날 자식들이 맞이할 삶의 비바람을 막아줄 가장 견고하고도 따뜻한 인생의 포트폴리오가 되어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조원경 세종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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