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는 지금
한불 수교 140주년,
변화한 우리 문화의 위상
제79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으로 모습을 드러낸 박찬욱 ⓒFilmAwards.TV
올해 한국을 가장 주목하는 나라는 단연 프랑스다. 세계에서 가장 큰 연극제로 꼽히는 아비뇽 페스티벌(7월 4~25일)이 올해 공식 초청 언어로 '한국어'를 선정했고, 칸 영화제(5월 12~23일)의 심사위원장으로 박찬욱 감독이 임명됐다. 유럽 박물관의 밤(5월 23일)에는 여러 미술관에 한국 관련 퍼포먼스가 올려졌다. 이 외에도 오페라극장과 미술관에서의 행사 등 한국 주간이 마련된다. 올해 들어 한꺼번에 들려오는 기쁜 소식은 올해가 한불 수교 140주년 기념 해라는 양국의 문화 어젠다가 맞물려 가능했다.
칸의 제도권으로 들어간 한국 영화계박찬욱 감독의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 임명은 상징적이다. 영화제의 긴 역사 속에 아시아인 심사위원장은 지금까지 단 두 명?1962년 일본 후루카키 데쓰로Tetsuro Furukaki, 2006년 홍콩 왕자웨이王家衛?뿐이었다. 그리고 20년 만에, 박찬욱 감독이 그 세 번째 자리에 오르게 됐다.
5월 12일 열린 개막식은 감동적이었다. 개막식 사상 최초로 한국어가 스피치 언어로 등장한 것이다. 박찬욱 감독은 심사위원을 대표해 선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경쟁 부문에 오른 작품의 수는 22편에 불과하지만, 이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을 다 합하면 아마 몇천 명은 될 겁니다. 그리고 참여한 사람의 가족까지 합하면 몇만 명도 되겠죠. 그 모든 사람들의 헌신과 갈망을 명심하면서 심사하도록 하겠습니다." 발언 중 카메라는 객석의 봉준호 감독을 비췄다. 생중계 중 두 감독이 번갈아 잡히는 모습에서, 2019년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 영화계가 괄목할 만한 명성을 얻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올해 장편 경쟁 부문에는 나홍진 감독의 <호프>가 올랐다. 이 부문에 한국 영화가 진입한 것은 2022년 <헤어질 결심> 이후 4년 만이다. 이 외에도 감독 주간에 정주리 감독의 신작 <도라>, 이머시브 경쟁에 우박 스튜디오의 <부우우-피이이>, 비경쟁 부문에 연상호 감독의 <군체>가 초청됐다.
지난 몇 년을 지켜본 결과, 올해야말로 한국 영화가 칸의 제도권에 안착한 해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지금껏 한국 영화는 초청 대상이라는 이미지가 강했고, 마케팅 역시 한국 영화계를 알리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이제는 별다른 설명 없이도 한국 영화가 하나의 카테고리로 자리잡았다. 이번 심사위원장 임명도 외국 감독의 예외적인 선발이라기보다 자격을 갖춘 감독이 칸의 깊숙한 내부로 들어간다는 느낌에 가깝다. 박찬욱 감독은 17일, 칸 현지에서 프랑스 문화예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최고 등급인 코망되르를 수훈했다. 한국인으로서 네 번째다.
구자하 연출 <하리보 김치> ⓒBea Borgers
아비뇽 페스티벌은 세계 최대 규모의 연극 축제 중 하나다. 80주년을 맞은 올해는 우리에게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 축제 측이 올해 공식 초청 언어langue invitee로 한국어를 선정했기 때문이다. 아비뇽의 '초청 언어'는 2023년 시작된 제도로, 공식 작품의 일부를 해당 언어 작품에 할애하고 관련된 행사를 기획한다. 올해 공식 작품 47편 중 9편이 한국 작품이다. 프로그램은 아비뇽 페스티벌과 예술경영지원센터·서울국제공연예술제가 공동으로 기획했다.
예술감독 티아고 로드리게스Tiago Rodrigues는 한국어를 "하나의 역사와 지역에 깊이 뿌리내린 언어"라고 설명하며, 한글이 지닌 문화적 상징성과 비서구적 현대성에 주목했다. 한국어는 앞서 초청된 영어나 스페인어처럼 제국적으로 확장해 거대 언어권을 형성한 언어가 아니다. 문해력을 높이려는 세종의 의지, 곧 지식의 민주화를 위해 탄생했다. 아비뇽은 이 점을 높이 산다. 올해 관객은 한국 작품을 번역 버전으로 접하는 한계를 넘어, 무대 위 직접 발화되는 언어로서 한국어를 발견하게 된다. 예컨대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바탕으로 한 낭독 공연 <새Oiseau>(7월 15~16일)는 배우 이혜영과 이자벨 위페르가 함께 무대에 올라 각자의 언어로 작품을 낭독할 예정이다.
올해 한국 작품은 기후위기, 사회적 고립, 젠더, 집단성 같은 주제를 다루며 기존에 알려진 대중문화적 이미지 너머의 한국을 조명한다. 탈서구와 비영어권 창작에 관심이 많은 현 유럽 예술계에 한국 공연예술의 동시대적 가능성을 보일 기회다.
코메디 프랑세즈에서 열린 2025년 아비뇽 페스티벌 풍경 ⓒChristophe Raynaud de Lage/Festival d’Avignon
'유럽 박물관의 밤'은 매년 5월, 유럽 내 수천 개 박물관·미술관이 밤까지 문을 열고 대중 행사를 여는 날이다. 파리근대미술관Musee d'Art Moderne de Paris은 안은미의 <백만Nuit Blanche des Fauves ? Nuit de Baekman (白蠻)>을 올린다. 일제 강점기 다섯 한국 화가가 결성한 '백만양화회'에서 영감을 얻었다. 공연은 서구 모더니즘을 사유하던 근대기 한국의 역사적 맥락을 오늘로 불러와 서구 미술사의 중심에서 다시 사유하는 상징적 제스처를 지닌다.
파리 빅토르 위고의 집Maisons Victor Hugo에서는 입과손스튜디오의 판소리 레미제라블 <구구선 사람들>이 오른다. '세상은 한 척의 배'라는 설정 안에서, 총 세 편의 토막소리(원작의 팡틴·마리우스·가브로슈 세 인물의 삶)를 엮었다. 원작이 품은 인간 구원과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질문을 동시대적으로 재조명하며, 한국의 구전 전통과 프랑스의 문학을 잇는다. 더욱이 원작자 위고의 집에서 열리는 공연이라 더욱 의미 있다.
5월 30일 몽펠리에 오페라극장에는 프랑스 국립 오페라극장 최초로 판소리 공연이 오른다. <불과 눈물>은 소리꾼 고영열이 '춘향가'의 대목을 뽑아 재해석한 피아노 병창이다. 몽펠리에 오페라 측은 이 공연을 두고 "과거와 현재, 한국과 세계를 연결한다"고 소개한다. 고영열은 "판소리의 서사, 호흡, 시김새 및 감정에 초점을 맞추면서 피아노의 화성과 음색을 활용해 표현의 가능성을 확장한다. 전통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아니라, 오히려 현대적인 언어를 통해 전통의 깊이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현대적인 창작 과정"이라고 밝혔다.
한국 공연예술계의 약진은 단순한 한류 열풍의 결과만이 아니다. 대중문화가 시작을 열었다면, 그것이 상업과 예술을 넘나드는 영화 산업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높아진 한국에 대한 이해도를 기반으로 이제 공연예술계까지 온 것이다. 한불 수교 130주년 당시 종묘제례악과 창극 등으로 '한국의 미'를 알리려 힘쓴 공연예술계는, 이제는 우리의 관점으로 만든 현대 작품을 우선한다. 한국에는 급격한 산업화와 대도시 사회를 배경으로 한 빠른 유행 소비 등을 거치며 쌓은, 민첩하고 혼합된 감각이 있다. 이제, 한국에서도 잘 소비하지 않는 전통 콘텐츠를 '해외 공연이기 때문에'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은 덜 때다. 우리가 실제로 창작·소비하는 작품을 자연스럽게 내보일 때 이곳은 열광한다.
2026년 아비뇽 무대에 오르는 공식 초청 언어(한국어) 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