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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6월호

인공지능 시대의 장면들 AI 예술, 그 후가 아니라 앞단에서


한 예술가가 로봇 팔과 마주 앉아 그림을 그린다. 작가의 손이 종이 위에 선을 긋자, 로봇 팔이 그 움직임을 읽고 자신의 선으로 응답한다. 기계는 인간 예술가의 제스처를 모방하되 변주를 만들고, 다시 맞춰가며 함께 그림을 그린다. 작가 수그웬 정Sougwen Chung의 <Drawing Operations>는 인공지능AI 시대 예술의 흥미로운 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장면을 볼 때 떠오르는 개념이 바로 비르투오시티virtuosity, 즉 예술가의 탁월한 기교와 숙련이다. 오랫동안 예술에서 비르투오시티는 인간의 손, 몸, 감각이 축적한 능력으로 이해됐다. 피아니스트의 타건, 화가의 붓질, 무용수의 움직임, 조각가의 손끝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예술가가 세계를 통과해온 시간의 증거였다. 그러나 수그웬 정의 작품을 보고 있자면 그 경계가 희미해지는 듯하다. 로봇의 움직임이 인간의 손짓을 모방하면서도 어긋나며 다시 조율되는 순간, 로봇 팔이 종이 위에 붓을 터치하는 순간 예술의 기교란 무엇인지 쉽게 말하기 어려워진다.

AI와 로봇은 바로 이 지점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수십 년의 숙련이 필요한 이미지를 몇 줄의 문장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기교의 가치는 사라지는가. 로봇 팔이 인간 예술가와 함께 그림을 그릴 때, 비르투오시티는 누구의 것인가. 이제 'AI가 예술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보다 중요한 것은, AI가 인간 예술가 옆에서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고 있는 지금 인간의 예술이 무엇을 더 고민해야 하는가다.

AI는 예술의 제작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오랜 훈련을 거쳐야만 시각화할 수 있던 이미지를 이제는 누구나 문장만으로 불러낼 수 있다. 창작의 진입 장벽은 낮아지고, 표현의 속도는 빨라졌으며, 예술은 더 많은 사람에게 열리고 있다. 창작은 더 이상 소수 전문가에게만 허락된 영역이 아니다. 특히 결과물 차원에서는 더욱 그렇다. 최근 공개된 ChatGPT의 이미지 2.0은 AI 이미지 특유의 '불쾌한 골짜기'마저 빠르게 줄여가고 있고, 과거에는 전문 작가나 디자이너에게 의뢰해야 했던 시각적 상상을 이제는 누구나 직접 실험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술의 민주화가 곧바로 예술 소비의 부흥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예술이 넘쳐날수록 그것은 더 빨리 소비되고 잊힌다. 아름다운 이미지는 많아지지만, 오래 살아남는 이미지는 드물다. 그렇다면 어떤 예술이 이 홍수 속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이것이 AI 시대 예술가와 예술계가 고민해야 할 중요한 질문이다. 나는 예술가의 역할은 더 멋진 결과물을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술 속 의미를 조직하는 쪽으로 확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AI 예술의 진짜 변화는 '앞단'에 있다

AI 예술을 이해할 때 흔히 빠지는 함정은 작품의 마지막 장면만 보는 것이다. 그러나 AI 예술의 진짜 변화는 그 결과물을 가능하게 한 조건에서 일어난다. 어떤 AI 모델을 왜 썼는가, 그 모델은 어떤 데이터의 영향을 받았는가, 프롬프트는 어떤 의도로 설계됐는가, 모델 속 가드레일은 무엇인가. 이러한 비인간 행위자들의 구성 조건은 AI 예술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됐다. 예술은 이제 한 명의 작가나 하나의 기술이 만든 결과라기보다, 여러 조건이 얽혀 만들어내는 네트워크적 산물에 가까워지고 있다.

AI가 만들거나 AI와 함께 만든 결과물은 그 자체로 곧바로 '작품'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특정한 기술 환경에서 생성되고, 인간의 선택과 편집을 거치며, 플랫폼의 규칙 안에서 유통되고, 법·제도적 판단을 통해 권리와 책임을 부여받고, 시장과 문화기관의 해석을 통해 가치를 얻게 된다. 이 서사와 맥락이 곧 예술성과 연결된다.

따라서 AI가 약화하는 것은 비르투오시티 자체가 아니라, 비르투오시티를 이해하는 기존 방식일 수도 있다. AI 시대의 비르투오시티는 '잘 그리는 능력'에서 '잘 발견하는 능력'으로 이동한다. 예술가의 탁월함은 더 이상 모든 것을 직접 손으로 구현하는 데만 있지 않다. 어떤 장면을 상상할 것인가, 어떤 데이터를 선택할 것인가, 어떤 스타일을 거부할 것인가, 수많은 결과물 중 무엇을 남기고 버릴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을 통해 관객에게 어떤 감각과 질문을 전달할 것인가가 새로운 숙련의 영역이 된다.

이는 기교의 몰락이 아니라 기교의 재배치다. 과거의 예술가가 붓과 악기와 몸을 다루는 사람이었다면, AI 시대의 예술가는 이미지의 가능성, 알고리즘의 편향, 관객의 해석, 사회적 맥락을 통합적으로 다루는 사람이 된다. 프롬프트를 잘 쓰는 능력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프롬프트 이후의 판단이다. AI가 만들어낸 수많은 이미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눈, 그 이미지가 왜 지금 필요한지 설명하는 언어, 기술의 매혹을 인간의 경험으로 되돌려놓는 감각이야말로 새로운 타입의 비르투오시티다.

예술경영의 역할도 바뀐다

이 변화는 문화예술경영의 관점에서도 중요한 전환을 만들어낸다. 전통적인 문화예술경영은 완성된 작품을 어떻게 전시하고 유통하고 홍보할 것인지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AI 예술에서는 더 앞단의 질문이 중요해진다. 작품이 완성된 뒤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창작을 가능하게 했고, 그 조건을 어떻게 설계하고 관리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예를 들어 AI 예술 전시를 기획한다면, 단순히 'AI로 만든 작품을 보여준다'는 수준에 머물 수 없다. 어떤 모델을 사용할지, 어떤 데이터와 스타일을 참조할지, 작가의 프롬프트와 수정 과정을 어떻게 기록할지, AI가 만든 부분과 인간이 선택·편집한 부분을 어떻게 구분할지, 결과물을 전시하거나 판매하거나 아카이빙할 때 어떤 설명을 붙일지까지 설계해야 한다. 그리하여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내는 일이 예술경영의 역할이 될 것이다. 이제 예술경영자는 결과물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창작 조건을 설계하는 사람이 된다. 어떤 기술을 쓸 것인가, 어떤 기록을 남길 것인가, 어떤 법·윤리적 기준을 마련할 것인가, 어떤 시장·기관의 해석을 붙일 것인가가 모두 경영의 일부가 된다.

과정이 기록될 수 있다는 것은 관리의 가능성이 커진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창작자의 의도와 데이터, 작업의 흔적을 어떻게 존중할 것인지에 관한 책임도 커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AI 시대의 예술가는 새로운 도구를 다루는 사람인 동시에, 그 도구가 어떤 기반 위에 서 있는지 묻는 사람이어야 한다.

음성원 OpenAI 코리아 커뮤니케이션 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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