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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9월호

예술인 아카이브


남경진
미술/영상·조각·설치
2026 청년예술지원 시각 분야

영상과 조각, 그리고 설치를 기반으로 작업하고 있는 남경진입니다. 신체를 중심으로 하며, 이를 둘러싼 사회와 문화·제도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해가는 모습에 주목합니다. 그 영향이 오가는 사이, 느슨하게 얽힌 미심쩍은 순간들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2025년에는 천만아트포영 해海상과 인기상을 받았습니다.

유의미하게 첫 작업을 완료한 시점을 기준으로 말씀드리자면, 2021년입니다. 당시 진행한 작업은 제사의 구조와 나폴리탄 괴담의 형식을 엮은 <헛제사>라는 영상입니다. 과제나 단발성 프로젝트는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기간이 짧은데, 처음으로 영상의 형식적 구조와 개념적 구조를 전부 고려하면서도 기간 내에 완결성 있게 마무리한 경험이었고, 구상 단계부터 촬영 그리고 후반 작업까지 즐겁게 진행한 작업이라 더 의미가 있었습니다. 원래도 영상 매체에 대한 흥미가 다른 매체에 비해 크기는 했지만, 해당 경험을 통해서 영상 작업을 지속할 동력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아직 자신을 창작자라고 정의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기도 했고, 슬슬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 보고자 하는 시점이기에 그렇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다만,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이따금 흥미로운 것이 떠오르면 이것을 작업의 형태로 만들고 싶다고 느끼는데, 그럴 때 창작자라고 자각하는 것 같습니다.

올해 서울문화재단 청년예술지원에 선정돼 개인전 《망아지 슬리퍼Foal Slippers》(가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작업은 인간의 발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됐습니다. 언제부턴가 두꺼운 굳은살로 덮여 있지만, 태어난 직후의 발은 다른 살결처럼 부드러웠을 겁니다. 보행이 가하는 지속적인 압력이 발을 단단하게 만든 셈이죠. 이동과 발, 단단함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두고 있던 어느 날 '망아지 슬리퍼'를 알게 됐습니다. 태어날 때 어미를 다치게 하지 않도록 망아지의 발굽을 감싸고 있는, 부드럽고 미끄러운 조직입니다. 이건 시간이 지나면 굳고, 걷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자연스럽게 벗겨지면서 단단한 발굽이 드러나게 됩니다. 보행과 함께 단단해지는 인간의 발, 보행과 함께 단단함이 드러나는 망아지의 발굽. 전혀 다르다고 생각한 두 신체가 이동이라는 지점에서 포개지는 데 영감을 얻었습니다.

<망아지 슬리퍼>, 2026,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사실 말과 인간은 이미 오래전부터 겹쳐 있었습니다. 다만 그때는 교통수단과 탑승자의 관계였죠. 탑승자의 편안한 이동을 위해 성립된 그 관계가 신체의 유사성으로 다시 겹치는 지점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도시에서 말은 실체를 잃고 속도와 진보의 상징으로만 남아 지명이나 경마장, 로고와 동상 정도로 떠돕니다. 이동하는 신체이자 교통수단이던 말이 이렇게 이상한 형태로 잔존한다는 데서, 제 관심은 이동과 교통수단, 그리고 그것이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도시로 확장됐습니다. 말이 사라진 자리에서 도시는 이동을 훨씬 더 적극적으로 보조합니다. 촘촘한 대중교통 노선과 환승 시스템, 특정 금액으로 무제한 미끄러질 수 있게 해주는 정액형 교통권, 그리고 대중교통이 닿기 애매한 사각지대를 메우는 공유 모빌리티까지. 도시는 사각지대를 허용하지 않고, 가능한 모든 구간에서 걷지 않도록, 미끄러지도록 합니다. 그렇게 마찰을 잃은 우리의 발은 단단해질 필요가 없고, 망아지 슬리퍼는 끝내 벗겨지지 않을 것처럼 보입니다. 게다가 도시는 사람을 미끄러지게 할 뿐 아니라 그 자체로도 점점 매끄러워집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거라는 선형적인 발전과 개발 신화의 낙관 속에서 철거와 신축이 반복되고, 표면은 계속 포장됩니다. 사람들은 그 순환을 발전이라고 부르지만, 도시의 미래는 늘 '곧 완성될 무언가'로 남죠. 발이 딛지 못하는 도시와 멈추지 못하는 개발, 그 사이의 부드럽고 미끄러운 층위를 들여다보면서, 미끄러운 도시 위에서 우리가 어느새 잃어버린 감각, 바닥을 딛고 보행하는 그 감각은 어떤 것이었는지 묻고자 합니다.

주로 일상에서 우연히 마주친 정보들을 모아둡니다. 길거리를 걷다가,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다가, 일을 하다가, 여가를 보내다가 마주치게 되는 흥미로운 정보를 기록합니다. 또한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통해 소식을 들을 수 있도록 해두면 궁금했던, 혹은 흥미로운 정보와 더 자주 마주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수집하는 정보는 사진부터 영상·텍스트입니다. 수집한 정보 혹은 메모들은 기록 후에 잠시 잊힐 때도 있지만, 어떤 정보들은 계속 신경이 쓰일 때가 있습니다. 수집된 정보를 펼쳐 놓고, 이것들이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지 보면서 작업으로 발전시키는 것 같습니다.

최근은 아니지만 서점극장 라블레에서 주최한 니콜라이 고골의 동명 단편 소설을 바탕으로 한 연극 <외투>가 인상 깊었습니다. 장르는 일종의 블랙코미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애써 많은 돈을 투자해 만든 외투에 이상할 정도로 집착하는 주인공, 그와 외투를 둘러싼 부조리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이상한 지점들에 주목하면서 흐름을 따라갔습니다. 원래 블랙코미디를 좋아하지만, 실험적인 1인극 형식의 연극이라 궁금해하며 관람했습니다. 일인 다역은 기본인 데다, 원작이 러시아 소설이다보니 지명이나 이름 등을 암기하고 발음하는 것이 어려웠을 것 같으나, 1시간가량 배우가 잘 수행해냈다는 점에서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사실상 무대 세트가 없었지만, 최소한의 소품과 조명만으로 짜임새 있게 풀어낸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배우의 상황 묘사와 신체 연기로만 장소나 날짜의 변화를 알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연극은 제가 주로 다루는 영상 매체와 선형적인 시간 안에서 흐른다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퍼포먼스와 같이 신체라는 물성이 강한 매체인 것 같아서 더 흥미로웠습니다.

앞으로는 조각에 대한 연구를 조금 더 하고 싶습니다. 영상은 즉각적인 물성이 상대적으로 희미하다는 느낌을 받곤 하는데, 전시실 내에서 즉각적으로 물성이 드러나는 조각과 상호 보완적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봅니다. 기존에도 조각을 하긴 했지만, 최근에는 작업량을 늘려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형성과 재료에 대한 연구나 실험을 더 많이 하고, 결국 조각이라는 매체가 제 작업에서 어떻게 작동할지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정리 나혜린 서울문화재단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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